학창시절, 그 때는 뭐가 그리도 배가 고픈지 2교시 마치고 도시락 까먹고 점심시간이면 발 디딜 틈 없이 분비는 매점으로 달려가 빵을 사 먹은 기억들이 70~80 세대에선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지금 우리의 아이들도 그 때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룻밤 자고나면 어느새 쑥쑥 커져버린 아이들에게 매점은 학교에서 점심 한 끼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들이 먹는 식품의 재료다.
영림중학교(교장 박수찬) 학부모회에서는 매점의 실태를 모니터링을 한 결과 우리 아이들이 학교 내에서 저질 식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들에게 바른 먹거리를 제공하고 협동하는 마음을 가르치고자 건강매점을 열게 된 것이다. 이 건강매점이 사회적 협동조합을 표방한 친환경 학교매점 1호 영림중학교 ‘여물점’이다.
학교에 친환경 매점이 활짝
여유롭고 물 좋은 매점 ‘여물점’은 파스텔 톤의 나무로 지어진 모습이다. 대부분의 매점이 알루미늄 샤시로 만들어진 것에 비하면 이곳은 정말 동화에서나 볼 수 있는 듯 한 모습이다. 이 건물의 인테리어는 학부모들의 재능기부로 여물점의 이름은 공모로 지어졌다.
‘여물점’은 매점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만이 쌓이면서 시작됐다. 학부모 학교 활동의 활성화로 학교 모니터링을 실시하게 됐는데 매점도 예외가 아니었다. 매점 모니터링을 3차례 실시한 결과 화학조미료와 강한 맛의 소스로 만든 질 낮은 제품을 우리 자녀들이 먹고 있음을 확인됐다. 학부모회에서는 현재보다 더 나은 물품으로 개선하자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이런 결정을 하고 보니 그럼 매점에 어떤 제품을 가져다 놓아야 하는지 의견이 분분했다. ‘마트에서 파는 대기업의 제품을 가져다 놓자’는 둥, ‘친환경 생협제품을 가져다 놓자’는 둥 의견이 갈렸다. 친환경 제품을 가져다 놓는다 해도 가격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과연 아이들은 이런 제품을 사 먹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리고 매점은 누가 책임을 지고 운영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 때 학부모 이사회에서 나섰다. 학교 측과 지역사회에서 십시일반 돈을 모아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을 위해 327만원의 출자금을 마련했다. 영림중학교 사회적 협동조합 김윤희 이사장은 “우리아이들에게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먹이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체험과 교육을 제공한다”며 “학교 구성원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모두 매점의 주인이 되어 학교문화가 소통하는 매점을 만들어 지역 사회에 도움을 주는 학교 매점이 되자는 목적 아래 학교와 학부모, 학생이 하나로 힘을 합쳤다”고 소개한다.
학부모회에서는 친환경매점을 전환을 결정했고 운영위원회에 보고 심의를 거쳐 매점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위원회가 책임지고 학부모회 사업으로 운영키로 했다. 이를 위해 학부모 전체 설문 조사 결과 90% 찬성이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곧 매점추진위원회가 구성되고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친환경 매점을 탐방하고 자료조사를 하고 지역 생협과 논의를 거쳐 성남 학교매점준비팀과 간담회, 식품안전교육, 시음회를 실시했다.
하지만 학교의 매점 임대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수의 계약이 아닌 공개 입찰을 통해 매점을 운영해야하는 규정에 걸렸다. 공개입찰로 최고가를 써낸 사업자에게 공공수익시설인 매점을 임대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처음엔 다른 기업에서 운영권을 따냈다. 이 때, 학교 측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친환경 제품이 판매 물품의 80%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주어 두 차례의 유찰 끝에 임대료 600만원에 학부모회에서 매점운영 수의계약을 맺었고, 드디어 입찰과 낙찰을 거쳐 학부모들이 바라던 친환경매점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현재 사회적 협동조합 인가를 추진 중에 있다.
여물점은 이사장 1명, 운영위원 9명과 조합원 37명, 활동가 2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니터링은 학부모회에서 맡아서 한다. 여물점은 아이들이 등교하는 아침 8시30분부터 문을 열어 아이들이 하교하는 오후 4시에 문을 닫는다. 주로 판매하는 것은 학생들의 기호에 적응하기 위해 친환경제품 80%, 그 외 20%로 구성한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매점에 몰려드는 학생들이 사 먹는 과자와 빵, 음료수들은 대부분 유기농 제품들이다. 콜라와 사이다 같은 탄산음료 대신 사과주스와 식혜를 판매한다. 아침식사를 하지 못하고 출근하는 교사들도 여물점을 찾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고.
매점 운영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인스턴트식품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밋밋한 맛은 매력이 없었는지 매점을 찾는 횟수가 많이 줄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노력과 정성이 아이들에게 전해지면서 여물점은 이제 학교의 자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연 여물점의 하루 매출액은 얼마나 될까? 물론 계절과 날씨에 영향을 받긴 하겠지만 월 20일 운영하면 30~40만 원 정도 수익이 생긴다. 여물점에서 기본 운영비를 제외한 모든 이익금은 학생복지에 사용하기로 했다.
산교육의 현장으로 거듭난 ‘여물점’
하루 300여명의 학생들이 때로는 줄을 길게 늘어서 기다리는 잘나가는 매점이 됐다. 여물점을 학부모회에서 운영하다 보니 대부분 자녀의 친구거나 같은 동네 살고 있다. 매점에 들어서면 어른들과 자연스럽게 따뜻한 인사를 주고받고 주문을 하고 맛있고 몸에 좋은 과자를 맘껏 먹는다. 그 결과 매점 앞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을 이 학교에서는 볼 수 없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아이들의 먹거리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지고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맘을 놓을 수가 있단다.
3학년2반 박영서 학생은 “여물점에서 음식을 먹고 나서부터 내가 순해지는 거 같다”고 밝힌다. 3학년 3반 조연수 학생은 “첨에는 밋밋했는데 지금은 맛있게 먹어요. 몸에도 좋구요”라고 대답한다. 2학년 6반 한윤지 학생은 “새우짱, 곰돌이는 맛있다”며 “애들은 뭐니 뭐니 해도 맛있게 좋죠. 하지만 몸에도 좋은 거 같아요”라고 덧붙인다. 몇몇 학생들은 백화점에 같은 음식인데 더 비싸게 판다고 귀띔해주기도 한다.
또 한 가지, 여물점은 더 나은 교육활동을 위해 매점 적립금이 지원된다. 김윤희 이사장은 “학교 근처의 지역아동센터에 조금이나마 간식도 지원하고 지역 아트센터와 여름캠프도 준비하고 있다”며 “이런 모든 것이 바로 산교육의 현장”이라 갈무리한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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