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거쳐 또 하나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스승의 날이다.
학부모들은 스승의 날을 일컬어 ‘눈치 보이는 날’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감사의 선물을 드리자니 내 아이를 잘 봐달라는 것 같아 다른 엄마들 눈치가 보이고, 아무것도 안 하고 넘어가자니 선생님 눈치가 보인다는 이야기다. 그건 교사의 입장도 마찬가지다.
고마움을 표하고, 그 마음을 고이 받으면 좋을 하루. 하지만 스승의 날을 앞두고 아이도 교사도 학부모도 전전긍긍이다. 스승의 날을 바라보는 교사 학생 학부모의 솔직한 심정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세상이 되기를…
지금 당장 내 아이의 담임에게 스승의 날 꽃다발과 선물을 안기기보다는 한 학년이 끝날 즈음 지금까지의 수고에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3월 이후 겨우 두 달 지난 시점에서 스승의 날을 챙기는 건 내 아이 잘 봐달라는 뇌물과 다름없다. 그러려면 사회적인 분위기가 전환돼 학년을 마칠 때쯤으로 스승의 날을 옮겨야 할 것이다.
우리가 예전에 그랬듯 아이들은 지금 교육현장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인생에 어떻게 작용할 지 예측하지 못한다. 가르칠 당시는 몰랐어도 세월이 흐르고 세상을 살면서 하나둘씩 비로소 알게 된다.
스승의 날의 참다운 의미는 졸업생들이 자신을 가르쳤던 스승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고 찾아가는 것이라고 본다. 졸업한 제자들이 잊지 않고 찾는 건 진짜 행복한 거다. 진정한 스승이 되도록 노력할 때 아이들은 그 스승을 잊지 않고 다시 찾을 테니까. - 김영호(가명 남 46세 천안시 두정동)
“이해심 없는 선생님은 싫어요”
스승의 날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중학생이 되니까 수업시간도 길어지고 해야 할 공부도 많고 지켜야 할 규율도 많아졌다.
선생님은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시는데 스승의 날을 반드시 챙겨야 하나? 많은 애들이 아무 생각 없다.
선생님이 아무것도 안한다는 게 아니고, 우리를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주셨으면 좋겠다. 툭하면 “이건 지켜라, 안하면 벌점이다”로 압박하신다. 학교생활에 문제가 없고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으면 우리도 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야단부터 치지 말고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이유를 듣고 마음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 마음을 잘 이해해주시는 선생님이 좋다. 그런 선생님께는 감사드리고 싶고 스승의 날을 챙겨드리고 싶다. - 이진석(가명 남 중1학년 아산시 배방읍)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는 선생님, 감사해요”
스승의 날에는 1인당 1000원 정도를 걷어 작은 케이크를 사고 반 친구들 모두 손 글씨로 짧은 편지를 써 선생님께 드리는데 그때 마음이 참 좋다. 크게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감사를 표시할 수 있어서 좋고 선생님들도 우리들의 진심을 받아주시는 것 같아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는다.
최근 진로상담을 할 때 부모님이 챙겨주기 힘든 것을 선생님께서 세세히 챙겨주셔서 참 고마웠다. 때로는 부모님과 진로 관련해서 마찰이 있을 때도 선생님이 부모님과는 다른 시각으로 조정해 주시기 때문에 큰 힘이 됐다.
평상시에는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 주다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는 엄격하게 바로잡아주는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반 학생이 아니더라도 어떤 요청이 있을 때 친절하게 응해 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쉬운 점도 있다. 고3이라고 선생님들이 너무 몰아붙인다. 시험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쉬는 시간에, 심지어 우리가 그렇게 해이해진 것도 아닌데 공부하라고 다그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 같다.
이상적인 선생님상이 있다면 학생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선생님. 때로는 내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필요하다. 또 체벌과 훈계를 적절히 하시는 선생님이 좋다. 무조건 체벌로 해결하는 것도 문제고 그렇다고 훈계만 하면 반의 분위기가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 쌍용고 3학년 장한솔
학부형도 원칙과 질서를 지켰으면…
선생님이 된 건 아이들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학부형을 상대하는 일이 쉽지 않다.
아직까지 아이들은 순수하고 착하다. 학부형들도 아이들처럼 원칙과 질서를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교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고 협조해 달라는 일은 협조해 주면 큰 도움이 되겠다.
어느 해인가는 “선물을 주시면 받겠다. 하지만 선물 때문에 그 학생을 편애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고 학부형 앞에서 공언한 적도 있다. 그해에도 선물을 들이밀던 학부형은 자기 아이가 상장을 적게 받아왔다며 끝내 뒷말을 냈다.
우리 반 학부형 중에는 교사보다 더 높은 학식의 교육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학교에 아이를 맡겼다면 교사에게 권위를 주고 교사의 지도를 믿고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태도대로 선생님을 대하는 경우가 많다.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때로는 곤혹스러운 일도 있지만, 내가 내 은사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떠올리듯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일은 건강한 일 아닌가? 한동안 논의가 되었던 것처럼 스승의 날을 학년말로 옮기는 것에 적극 찬성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서로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면 헤어질 수 있다면 진짜 감동적일 것 같다. - 모 초등학교 경력 15년 교사
선생님을 신뢰한다는 감사 선물이 최고 아닌가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엄마들은 선물을 해야 하나, 하면 어느 정도를 해야 하나 등 신경을 쓴다. ‘어느 반 선생님은 스승의 날이 다가오며 수업시간에 어떤 브랜드를 좋아한다고 아이들에게 말했다더라’ ‘아이가 자꾸 벌을 서고 선생님에게 지적을 받으면 엄마를 오라는 소리라더라’는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나도 첫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몇 해는 스승의 날이 돌아올 때마다 머리가 아팠다.
그런데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걱정 전에 학교에 가까워지라고 권하고 싶다. 평소 학교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하고, 선생님과 아이에 대해 많이 상담하다 보면 정말 고마운 선생님도 많다.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엄마가 아이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학급 일에 협조적이면 그걸 가장 고마워하더라. 그리고 엄마가 신경 쓰는 만큼 더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저절로 감사의 선물을 보내고 싶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은근히 무언가를 바라는 선생님도 없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럴 때일수록 엄마들의 중심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바라고 오가는 선물은 의미가 없다. 선생님을 정말 신뢰하고 따른다는 믿음이 가장 큰 감사선물이다. 그렇게 믿는다. - 김지선(가명 49 천안시 쌍용동)
천안아산내일신문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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