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어렵지 않아요, 그냥 마음이 생길 때 잠깐 이곳에 들르세요
지난 4월 27일 토요일. 연초록의 새순이 부서지는 화사한 봄볕에 눈이 부시게 빛나고 있는 분당 중앙공원. 저 멀리 야외음악당에서 들려오는 흥겨운 사물놀이패의 장단이 어깨를 들썩이게 하자 어느새 하나둘씩 모여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오늘은 (사)효사랑운동봉사회에서 진행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오전10시30분부터 시작된 이날 공연은 아직 식전 행사임에도 스탠드에는 소풍나온 아이들처럼 들뜬 어르신들로 발디딜틈 없이 꽉 채워진 상태. 흥겨운 가락에 간간히 박수도 치고 진행자의 우스개 소리에 큰 소리로 웃기도 하며 그들만의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중심을 온통 젊은이들에게 빼앗겨 버린 채 뒷방 노인이 되어버린 것 같은 소외감을 오늘만큼은 날려버렸음직하다. 이런 어르신들의 환한 미소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행사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람이 바로 (사)효사랑운동봉사회의 김맹임이사장이다. 고운 한복을 입은 김이사장은 영락없는 맏며느리의 모습 그대로다. 분주히 행사를 준비하고 혹시 조금이라도 어르신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어김없이 1000여 명이 넘게 모이는 어르신들을 위한 큰 잔치를 열고 있는 김 이사장을 만나 효사랑운동봉사회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봉사가 천직인 이유?
어르신 돌보는 그 마음이 나에겐 명약
새벽에 눈이 떠지면 달려가는 곳은 그녀의 작은 일터 도촌동 무료급식소. 도촌동에서 무료급식을 시작한 것이 올해로 5년째. 지금의 이곳에 터를 잡은지는 3년이 되어간다. 매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새벽부터 나와 손수 음식을 준비하고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6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무료로 급식을 하는 것이 그녀의 일과다. 또한 틈틈이 독거노인을 위한 도시락배달도 한다. 그녀의 이런 무료급식 봉사는 벌써 20년이 넘었다. 처음엔 개인적으로 이런저런 봉사에 참여하다 에이스침대 회장이 시작한 에이스경로회관 관장으로 일하게 되며 봉사가 직업이 되어 버렸다. 이북에 부모님을 두고 넘어온 에이스회장의 뜻으로 시작된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사업은 그녀가 효사랑운동봉사회를 만들게 된 좋은 모델이 되었다. 10년 동안 이일을 누구보다 정직하게 열심히 해온 그녀였기에 퇴직을 하려 했을 때는 회사에서 무려 3번이나 사표를 반려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이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했지만 아직은 젊었을 때라 그랬는지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고향이 전라도 보성인 그녀는 엄마의 타고난 남도의 음식 솜씨를 물려받아 전통음식을 만드는 일에도 관심이 있었고 손맛도 제법 있었다. 한식조리사 자격증도 있던 터라 내친김에 식품영양학을 전공하여 전통음식을 재현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봉사를 해왔던 이들의 제안으로 다시 은행동 시유지 터에 퇴직금을 몽땅 털어 넣어 무료급식시설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 살던 우리 동네에 ‘또개’라고 불리는 남루한 모습의 허드렛일만 골라하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늘 동네 사람들조차 무시하는 그분을 불러 꼭 한 밥상에서 함께 밥을 먹곤 하셨어요. 어린 눈엔 그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지금의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된 건 아마도 아버지께서 보여주셨던 소외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던 모습이 내게 자연스럽게 교육되어진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은행동에서 시작된 무료급식소를 함께 하자고 제안했던 어느 목사의 욕심에 시설과 집기를 모두 빼앗기고 나서도 이 일을 그만두지 못했던 것은 바로 아버지의 이런 모습 때문이 아니었을까? “평상시 늘 몸이 이유 없이 자주 아픈 편인데 봉사활동을 하면 이상하리만치 아픈 곳도 없고,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봉사활동은 김 이사장에겐 그 어떤 약보다 좋은 명약인 셈이다.
봉사에도 나만의 원칙이 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하지는 못하는 일 ‘봉사’. 20년 가까이 우리 지역 어려운 노인들의 한 끼 식사를 손수 준비하고 있는 김맹임 이사장에게는 ‘봉사’란 말이 그리 특별할 것이 없다. 그저 공기처럼 편하고 자연스러운 사람의 도리를 행하는 일 일뿐. 그러나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정치적 색깔을 가지고 네 편 내 편을 가르거나, 종교적으로 어느 한쪽을 강요하려는 곳 등 유혹과 간섭이 자주 있게 된다. 그러나 봉사에도 그만의 원칙이 있다. “봉사는 그 자체로 순수한 마음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간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이력 때문에 선거 때만 되면 시의원을 해보라는 권유도 끊이지 않았지만 애초에 관심이 없었던 일이라 한눈 한번 팔지 않았다. 또한 누구에게 기부하라거나 봉사해달라고 아쉬운 소리도 잘 못한다. 운영비가 모자라면 모자라는 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형편에 맞게 운영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부든 봉사든 본인의 역량에 맞게 스스로 마음을 내어 다가오는 것이 중요해요. 억지로 할 일이 아닙니다. 봉사를 해본 분들은 모두 알겁니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일이 내게 얼마나 큰 엔돌핀을 돌게 하는지.” 이런 그녀만의 봉사에 대한 원칙이 있어서인지 주변엔 그녀를 한결같이 묵묵히 도와주는 든든한 후원군들이 있다. “효사랑운동봉사회의 21명의 이사진들이 바로 그분들입니다. 그리고 좋은 식자재를 늘 기부해주는 많은 곳들이 봉사회를 이끌고 지켜준 분들인거죠”라며 겸손해 한다.
봉사를 하면서 잃은것은 욕심, 얻은것은 든든한 봉사자들과 가족의 화목
그간 봉사활동을 이어오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퇴직금도 잃고,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운영비가 늘 부족해 허덕이는 등 어려운 일도 많았다. “봉사하는 분들도 개인 사정에 따라 나오기도 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가 봉사하기도 하거든요. 처음엔 그런 일들이 걱정도 되고 섭섭하게 느껴지기도 하더군요. 그러나 지금은 오직 감사한 마음만 들어요. 오늘 봉사하러 나오다 내일 안보여도 서운한 생각보다는 그동안 너무 고마웠었다는 마음만 남게 되더라구요.” 인력도 돈도 있으면 있는 만큼 없으면 내가 좀 보태서 하면 된다는 생각 때문에 걱정하는 마음도 욕심을 내는 마음도 없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애꿎게 가족들이 그 어려움을 감당하기도 한다. 고향에선 부모님들이 농사지으신 농산물을 올려보내기도 하고 봉사자가 부족한 날은 남편과 아이들이 동원(?)되기도 한다. “아들이 어느 날 그러더군요. ‘엄마 이제 새벽같이 나가 음식 만들고 설거지물에 손 담그는 거 그만하시면 안 돼요?’라고 말이죠. 제딴에는 엄마가 고생하는 거 같아 안쓰러웠던 모양이더라구요.” 엄마가 봉사활동 한다고 바쁘게 지내는 동안 아이들은 속 한번 안 썩이고 학비조차 스스로 해결할 정도로 의젓하게 자라주었다. 부모의 삶의 모습이 곧 교과서가 되고 사람의 도리를 익히는 학습의 장이 된 셈이다.
김 이사장에게 앞으로의 활동 목표나 방향에 대해 물어보니 “큰 욕심이 없어요. 지금처럼 역량에 맞게 꾸준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효사랑운동봉사회의 원래 취지에 맞게 우리가 점점 잃어가고 있는 ‘효’의 가치를 각 세대에 맞게 알리고 세우는 운동을 전개하고 싶습니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봉사’라는 단어를 오염시키지 않고 잘 이어온 김 이사장의 순수한 마음이 주변사람들에게도 널리 전염되길 기대해본다.
서희영 리포터 tjgmldud8082@naver.com
(사)효사랑운동봉사회는?
▶어디에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 171-3번지 효사랑경로식당
▶문의 031-756-2110
▶참여방법 월 1만원 이상의 후원금 기부
오전 11시 30분부터 시작되는 무료급식소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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