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법정 기념일로 정한 날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장애를 극복한 사람들의 인터뷰가 나오곤 한다. 이런 내용은 1년에 한번 만이라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장벽을 넘어 함께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올해도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하나로 합창단’을 만났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화음으로 하나되는 ‘하나로합창단’ 이들에게 음악은 함께 나누는 것. 그 외 다른 것은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다. 창단한지 21년, 최고의 하모니로 듣는 이들을 감동시키는 그들의 음악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
제자를 위해, 지휘봉을 잡고 합창단을 창단하다
매주 화요일 저녁 7시30분, 장애인생산품판매시설인 ‘목동 행복플러스카페’ 3층에서 하나로합창단의 연습이 시작된다. 연습시간이 가까워지자 직장을 마치고 멀리서 허겁지겁 쫓아오는 회원들. 이들을 위해 김밥을 준비하고 커피와 음료를 마련해놓으면 간단히 요기를 한 후 연습이 시작된다.
하나로 합창단은 4부 혼성합창단으로 45명 정도 활동하고 있다.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가하고 있고 3분의 1가량이 장애인이다. 이 가운데 음악 전공자들은 30% 정도. 시작부터 종교를 제한한 건 아니지만 배영준 지휘자(전 동덕여대 음대 교수)와 부인 이미경 반주자, 손영찬 단장 외 많은 회원들이 교회를 다니고 있어 지금은 자연스럽게 기독교인으로 구성됐다.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하나 되어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하나로 합창단의 시작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합창단 창단부터 지금까지 지휘봉을 잡고 있는 배영준 교수가 서원대학교 강사시절, 제자였던 정호영 씨가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간지 6개월 만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시 바로 돌아오지 못하고 척추치료를 하고 1급 장애인이 돼 한국으로 돌아온 제자를 만난 배영준 지휘자. 몸은 비록 휠체어에 의존하지만 목소리만은 예전 그대로인 제자를 위해 합창단을 창단한 것을 제안했다.
배 교수는 신입 단원 모집 공고를 내고 장애인들 가운데 노래할 수 있는 이들을 모집해 오디션을 거쳤다. 스승과 제자가 선발한 장애인은 소아마비 유상훈씨, 왜소증 임영미, 약시가 심한 임정숙씨 등 음악에 대한 열정은 있지만 장애인이어서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이었다. 오디션이 끝나고 배 교수의 후배들이 뜻을 같이하고자 하나둘씩 참여하게 되면서 장애인 단원과 비장애인 단원들이 하나로 간다는 의미로 ‘하나로 합창단’이라 이름 짓고 92년 10월 창단식을 가졌다. 그리고 하나로합창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 손영찬 회원이 참여하면서 하나로합창단은 명실 공히 합창단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6개월 연습 끝에 선 첫 무대는 서울의 한 작은 교회였다. 청중이라곤 신도 수십 명뿐인 작은 공간이었지만 공연이 끝난 후 단원과 관객 모두 울음을 터뜨린 감동의 무대였다. 그리고 93년 10월 서울 여의도 KBS홀에서 첫 유료공연을 했다. 수익금 164만원은 서울대병원에 장애인 수술기금으로 기탁했다. 매년 1차례 여는 정기 공연은 국민일보 빌딩 영산아트홀에서 공연한다. 합창단 살림은 월 만원씩 회비를 걷어 꾸려나가고 공연수익금은 고스란히 장애인 수술기금마련이나 장애인 단체 등에 기부한다.
그 결과 지난 2004년에는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가 주관하는 장애인 먼저 실천상 시상식에서 ‘국민일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를 부르다
‘하나로 합창단’은 전공자보다 비전공자가 더 많은 아마추어 합창단이지만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답게 연주하되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그런 노래를 하겠다는 각오다. 실제로 ‘하나로 합창단’의 공연에 본 사람들이라면 한결같이 이들의 노래를 듣고 ‘감동’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이는 관객 뿐 아니라 합창단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배영준 지휘자 역시 “연주하는 단원들의 모습에서 더 감명을 받는다”고 하고 손영찬 단장 역시 “서로 섬기고 베풀어주는 모습에 더 감동 받는다”고 한다.
하나로 합창단의 음색이 아름다운 이유는 같은 목소리라도 그들의 삶이 전해주는 애환이 그대로 묻어나기 때문이다. 감전으로 80%이상 화상입은 이, 교통사고로 휠체어에 온 몸을 의지하는 이, 왜소증 환자, 소아마비 장애인, 뇌의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식물인간이 됐다가 회복된 이, 시각 장애인 등 각자 사연을 가지고 있기에 목소리에 감동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들은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 퇴근하자마자 노래를 부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면서 모였기에 열심을 낼 수밖에 없다. 몸이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 모인 이들의 연습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시간이다. 게다가 돈을 주고도 배우기 힘든 성악에 대한 이론과 발성법, 호흡법 등 배영준 지휘자가 평생 배우고 익힌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회원들의 열정이 노래에 배어나온다.
그렇다고 이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97년 제1회 ROI 주최 전국 성가경연대회 대상 수상하는가 하면 98년 난파탄생 100주년 기념 전국 합창경연대회 일반부에서 최우수상을 타는 등 각종 대회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배영준 지휘자의 합창단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사실 배영준 지휘자의 스펙을 보면 제자나 후배들만 모아도 화려한 합창단 여러 개는 창단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마다하고 보수도 받지 않고 전공도 하지 않아 노래도 제대로 되지 않는 회원들을 모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합창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 번도 연습시간에 빠지지 않고 21년째 하나로 합창단을 이끌고 있다. 아내 이미경씨는 남편 배영준 지휘자의 뜻을 따라 하나로 합창단 반주자로 자리를 지키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열정이 합창단을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했다”고 전한다.
노래가 있어 행복한 사람들, 그리고 함께 있어 희망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이것이 ‘하나로 합창단’이 만들어 가는 세상이다. 단원들은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합창단과 함께 했으면 한다. 노래를 부르고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된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합창단에 지원해줄 것”을 권했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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