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Show)를 하라! 내 수업의 철칙입니다.” 잠신고 김명식 음악교사가 웃으며 말한다. 고교생들의 ‘공공의 적’ 스마트폰. 하지만 그에게는 휴대폰도 수업을 도와줄 좋은 도구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곳은 어디일까?”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학생들은 재빨리 스마트폰을 검색하더니 여기저기서 정답이 튀어나온다.
이처럼 김 교사의 수업에는 컴퓨터 음악, UCC 동영상, 스마트폰 등 온갖 IT 도구들이 총출동한다. 오디오편집, 동영상 편집, 그래픽 작업 등 능수능란하게 컴퓨터를 다를 줄 아는 그는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영상 자료로 수업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수업의 달인’ 김 교사는 학생 지도 뿐 아니라 ‘선생님을 위한 선생님’ 역할까지 하는 수석교사다.
“여러 학교 선생님들 수업 컨설팅을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이야기할 때가 많아요. 대다수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 모습을 볼 때마다 자괴감을 느끼고 상처 받는다고 털어놓습니다. 그럴 때마다 깨우기 전에 재우지 말라 당부하며 내 경험담을 들려줍니다.”
컴퓨터 음악 가르치며 수업 롤모델로 꼽혀
2000년대 초 그는 특성화고인 선린인터넷고로 발령받게 되면서 컴퓨터음악을 만나게 된다. “작곡을 전공했던 터라 관심은 있었지만 이 분야의 기기나 소프트웨어를 다룰 줄 몰랐어요. 작심하고 6개월 동안 학교 끝난 뒤 매일 음악학원으로 직행해 디지털 사운드편집부터 녹음 등 필요한 툴을 하나씩 배웠지요.”
키보드와 연결된 컴퓨터를 직접 만지며 음악 수업을 진행하자 호기심이 발동한 학생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이 난 김 교사는 컴퓨터 음악 교과서까지 집필할 만큼 전문성을 쌓아나갔다. 덕분에 그의 음악수업은 선린인터넷고의 자랑거리로 손꼽히며 전국은 물론 외국에서 온 교사들의 필수 답사 코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7년간 컴퓨터 음악교육에 빠져 신바람 난 교사 생활을 했던 그는 서울의 한 공업고등학교로 전근가면서 슬럼프를 겪게 된다.
‘수업 포기한 불행한 교사 되지 말자’
공부에는 흥미가 없고 편부편모 결손 가정에서 자라나 사회에 대한 반항심만 키어온 학생들은 도통 음악시간에 관심이 없었다.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들을 보며 회의가 몰려왔죠. 하지만 수업을 포기한 불행한 교사는 되기 싫었습니다. ‘주어진 위치에서 늘 최선을 다하자’란 인생 모토를 되새기며 동료 교사들을 살폈습니다. 희한하게도 내 수업 때 자던 아이들이 유독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이 있더군요. 체면 불구하고 열 살 후배인 그 교사를 붙들고 자문을 구하며 내 수업방식을 바꿔나갔습니다”
그 뒤 본격적으로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교수법 개발에 매달렸다. 각종 교사 연수를 자청해 받으며 창의적 수업 모델을 연구했다. 현재 유용하게 써먹는 동영상 학습자료 제작 기술, 협동학습과 프로젝트 수업 모형도 모두 그때 배웠다.
“노래든, 악기든 음악을 잘하게 만들려 했던 옛 방식을 버리고 ‘느끼는 음악’으로 수업을 바꿨어요. ‘예능교육’에서 ‘예술교육’으로 궤도 수정을 하니까 아이들이 집중하더군요.”
수업의 달인, ‘선생님 위한 선생님’ 되다
2012년 수석교사가 된 그는 자신의 수업을 365일 늘 동료 교사들에게 개방하며 수업 컨설팅에 힘을 쏟고 있다. “대다수 교사들은 교육학 이론을 배우기는 했지만 막상 교실에 들어가면 옛날 자신들이 배웠던 방식대로 가르치려 해요. 때문에 교사들의 수업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여주면서 코치합니다. 가령 ‘이 시점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어떨까요?’ ‘이 타임에는 자료를 나눠주며 아이들이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게 좋겠네요.’ 이런 식으로 수업의 흐름을 재정비해 해주죠.” 이처럼 김 교사는 ‘교사들의 수업 코치’로서 자신의 수업이 롤모델이 되어야 하는 만큼 늘 긴장하며 치밀하게 준비한다.
지난해 잠신고로 부임한 후에는 뮤지컬 수업을 도입해 호응을 얻었다. 아이들은 대본 짜기, 음악 선곡, 연기, 연출, 분장 등 뮤지컬 제작의 전 과정을 모둠별로 준비하면서 부쩍 자랐다.
“처음엔 입시 준비에 바쁜 고2 학생들이 시간 뺏긴다며 불만이 많았어요. 그래도 차근차근 준비시켰죠. 원래 이 수업은 창의력 개발을 염두에 두고 진행했는데 결과적으로 인성교육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어요.” 그가 내민 수업평가서에는 뮤지컬을 만들면서 배려심, 협동심, 약속 지키기 같은 ‘삶의 기본기’를 배울 수 있었다는 학생들의 소감문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어버이날 즈음해 아이들에게 스마트폰 꺼내 ‘어머니 마음’ 노래 부른 후 엄마에게 딱 한마디씩 메시지를 전하라 했더니 다들 ‘사랑해요’, ‘죄송해요’ 같은 속마음을 말하며 교실이 온통 눈물바다가 됐어요. 이처럼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는 수업을 늘 하고 싶습니다.” 메마른 학생들 가슴에 감동을 심어주기 위해 늘 촉을 세우며 수업 아이디어를 짜내는 노교사는 행복해 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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