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옆에 꽃나무가 우거져 있는 것은 보기 좋으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에요. 꽃나무 포자가 장이 맛있게 익는 것을 돕습니다. 송화 가루도 같은 역할을 하지요. 그래서 소나무가 많이 있는 지역에서 숙성된 장맛이 좋아 유명세를 타기도 합니다.”
감잎과 녹찻잎을 섞어서 우려낸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듣는 음식 얘기는 재미난 옛날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다가 졸졸졸 시냇물 소리처럼 편안하고 정감 있게 이어진다.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점점 더 곰삭은 맛을 낸다.
내가 먹는 것이 3대까지 간다=
양진제(50·천안시 광덕면)씨는 사찰요리연구가다. 우리지역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 및 청주, 광주지역에서 요리수업을 하고 있다. 토요일에는 광덕산환경교육센터에서 ‘자연요리특강’도 진행한다. 우리나라에 사찰요리를 소개하고 대중화시킨 선재스님에게 사사했다.
양진제씨는 처음에 다도를 배워 평생의 업으로 삼고 싶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가장 큰 어려움이 외로움이지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내 곁으로 모일까 생각하다 다도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식성이 바뀌었다. 평상시 즐겨먹던 고기 등의 음식을 몸이 받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됐다. “사 먹지 못하니 음식을 해 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떤 인연의 권유로 사찰음식을 배우게 됐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사찰음식에 끌리더군요. 차는 안 마셔도 되지만, 음식은 죽는 날까지 먹어야 하니까요.”
양진제씨는 여러 사람을 가르치기도 하지만, 아직도 음식이나 장 김치 등을 배우기 위해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닌다. 아이를 갖기 위해 몸을 만드는 젊은 새댁이나 먹거리에 관심을 갖는 젊은 수강생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사찰음식은 궁중요리와 닮아 있어요. 사찰음식은 종교적 색채를 띈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전통의 지혜가 담긴 음식이라 할 수 있어요.”
양진제씨는 사계절에 적합한 음식이 따로 있다고 했다. “봄에는 뜨겁고 매운 것, 여름에는 미끈미끈하고 뜨거운 것, 가을에는 차고 단 뿌리식품, 겨울에는 시고 떫고 미끈미끈하고 단 것을 먹으라고 합니다. 봄에는 참나물 머위 등 봄나물을, 여름에는 보리밥이나 밀을, 가을에는 우엉 당근 연근을, 겨울에는 3계절의 묵나물을 권해요. 그것이 결국 제철음식입니다.”
* 양진제씨는 "광덕산에서 난 표고버섯은 식감과 풍미가 뛰어나 고기보다 맛나다"고 말한다.
잘 먹는 것이 잘 사는 일=
사찰음식에서는 오신채, 즉 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를 금한다. 오신채를 생으로 먹으면 성이 나며 익혀서 먹으면 음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나 주로 앉아서 공부하는 학생은 오신채를 적게 먹는 것이 도움이 된다. 반대로 힘든 일을 하거나 원기를 보충하는 데 오신채를 섭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정제된 설탕을 많이 섭취하면 성질이 뻗친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극적인 맛을 내는 인스턴트 음식이나 식품첨가물 투성이인 가공식품을 삼가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되도록 자연적인 단맛을 취해야 합니다. 설탕보다는 정제를 거치지 않은 원당을 사용해야지요. 제철에 나는 지역의 생산물을 사용해 담백한 맛의 음식을 먹는 것이 몸과 마음에 도움이 됩니다. 자극적인 첫맛을 추구하지 말고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려는 노력도 필요해요.”
광덕면에 자리를 잡은 양진제씨는 집 부근 밭과 산에 채소와 버섯과 산나물을 재배하고 있다. 요리교실을 열고 장을 담고 김치를 담을 작업장을 만들 구상도 하고 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다른 사람들에게 자연요리를 선보이고 산과 들에 지천인 산나물 등 먹거리에 대해 알리고 나누는 일에 평생을 걸고 싶다고도 했다.
움직임이 가뿐하고 미소가 편안한 양진제씨는 “식성이 바뀌니 성격도 바뀌더라”며 “먹는 것에 대한 생각을 바꿔 맑고 깨끗한 것을 먹어야지 혀끝 맛에만 의존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한마디 한마디의 진심 어린 말끝마다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숭고함이 묻어났다.
남궁윤선 리포터 akoong@haanmail.net
Tip. 양진제 요리선생님이 권하는 요즘 먹으면 좋은 간단 요리
초봄에는 땅에서 나는 쑥 머위 냉이 등을 먹었다면 요즘 5월초는 나무에서 나는 순이 한창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엄나무순 전을 소개한다. 된장에 찍어 먹으면 느끼하지 않은 개운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잘 먹는다.
■ 엄나무순 전
- 엄나무순을 데친다.
- 밀가루 1컵을 동량의 물과 섞고 소금 반작은술 넣는다.
- 엄나무순을 밀가루물에 적셔서 손으로 훑은 후 부친다.
- 된장에 매실액 효소 등을 넣어 묽게 만든 후 찍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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