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cm, 62kg 아담하지만 날렵한 몸을 가진 임재성(문과)군. 스포츠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빛난다. “이탈리아의 싸네티는 내가 최고로 꼽는 축구선수예요. 왼쪽 수비수인 나랑 포지션까지 같아요. 하지만 다혈질에 욱하는 성질의 나와는 달리 그라운드 위에서 절대 흥분하지 않으며 페어플레이가 트레이드 마크인 선수죠.”
고1 슬럼프 축구로 극복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4강 신화를 이루었을 때 그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축구에 꽂힌 그때부터 운동장은 ‘유년시절의 절친’이 되었다. 유도선수였던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덕분에 운동신경이 탁월했던 그는 축구공만 잡으면 펄펄 날았다. 뭔가에 빠지면 성에 찰 때까지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인지라 발톱이 부러지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달리고 또 달렸다.
중학생이 된 후에는 농구에 매료되었다. 학교 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준우승을 하기도 했다. 그동안 전학을 여러 번 다녔지만 ‘만능 스포츠맨’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또래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전교회장을 비롯해 중학교 시절 내내 임원을 도맡아 했고 성적도 우수했다. 하지만 고교 입학한 뒤로 심한 ‘사춘기앓이’를 했다. “외고 입시에 떨어진 후폭풍이 컸어요. 필사적으로 매달려 준비했던 터라 실패의 상처가 깊었죠. 더군다나 아버지 사업도 어려워졌고 아는 친구 하나 없는 잠실로 전학을 온 뒤로 모든 게 다 낯설기만 했어요.”
고교 첫 시험 성적을 받아들고는 충격에 빠졌다.“기막힌 수학 점수를 받아들고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그 뒤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은 더 떨어지더군요. 좌절감이 몰려왔지요.” 중학교 때까지 ‘공부 잘하는 아이’였던 임군은 낯선 환경, 사춘기 방황, 성적 고민이 뒤섞여 힘든 고1을 보냈다.
지독한 슬럼프를 겪던 그에게 축구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학교 축구 동아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합류하게 됐어요. 처음엔 벤치만 지키는 후보 선수였지요. 오기가 발동하더군요. 우직하게 연습했고 경기가 있을 때마다 악착같이 쫓아다니니까 기회가 오더군요. 갑자기 다리에 쥐가 난 선수, 체력이 바닥나 못 뛰는 선수가 나올 때마다 대타로 뛰었죠. 그 후 주전으로 발탁돼 학교 대표 선수까지 했어요. 내 18년 인생 통틀어 100% 내 의지로 끈질기게 매달려 성취감을 맛본 첫 경험이었지요.”
‘오늘 일 내일로 미루지 말자’ 철칙
축구 덕분에 바닥까지 추락했던 자신감,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시험 때마다 늘 그의 발목을 잡았던 수학도 정공법으로 부딪혀 나갔다. “중학교 때처럼 무조건 문제만 많이 풀며 양으로 승부하는 ‘꼼수식’ 공부 대신 한 문제, 한 문제 완벽하게 소화할 때까지 끈질기게 잡고 늘어졌어요. 학원도 모두 끊고 독서실에서 수학과 지독하게 씨름했지요. 시간과 노력이 쌓이니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더군요.”
임군의 좌우명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공부에 싫증날 때마다 주문처럼 되뇌인다고. 고2 때 그의 반은 늘 시끌벅적한 꼴찌반이었다. 단합도 잘 되지 않는데다 공부에 열의도 없었다. 2학기 반장으로 뽑힌 그는 반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때마침 교내 축구대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축구를 통해 삶의 에너지를 얻었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축구로 반을 똘똘 뭉치게 만들고 싶었다. 감독 겸 선수를 자청한 그는 반 친구들과 전략을 짜고 포지션을 정한 뒤 틈날 때마다 연습했다. 부상을 당해도 운동장을 휘저으며 ‘잘해보자’고 외치는 그를 보며 시큰둥해 하던 아이들이 조금씩 변했다. 결국 다 함께 힘을 보탠 덕분에 ‘우승’까지 할 수 있었다.
“남학생들이다 보니 스포츠로 금방 하나가 될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협동의 미덕을 절절하게 배웠지요. 그 뒤 우리 반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마다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내심 뿌듯했어요.” 축구대회 이후 그는 장래 목표를 스포츠 마케터로 정했다.
꿈 이루기 위해 운동과 공부 병행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해 경영학을 복수 전공할 생각입니다. 처음 부모님께 내 결정을 말씀드리자 운동선수였던 아버지가 반대하셨어요. 공부 보다 운동이 죽을 만큼 힘들다는 것, 체대생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으니까요. 하지만 내 장래 꿈을 차근차근 설명 드리며 설득했죠.”
척박한 국내의 스포츠 에이전트와 달리 미국, 유럽은 이미 큰 시장이 형성되었고 중국, 러시아의 성장세 역시 두드러진다며 그는 외국에서 경험을 쌓고 싶다고 말한다. “류현진 선수를 성공적으로 미국 메이저리그에 데뷔시킨 스캇 보라슨이 내 우상입니다. 선수의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뚝심과 노련한 협상력을 배우고 싶습니다.”
장래 목표를 분명히 정한 고3인 지금, 그는 한결 안정감 있고 의젓했다. “서울대가 목표예요. 체대는 실기와 수능시험 둘 다 중요하기 때문에 주중에는 공부, 주말에는 체력 훈련을 강도 높게 해요.” 시간을 쪼개 사는 그에게는 꿈을 향한 의지가 엿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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