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와 소외된 이웃 이어주는 ‘허그월드’

은둔형 외톨이 음악으로 포근히 안아드려요

지역내일 2013-04-23 (수정 2013-04-23 오후 3:00:08)

벚꽃이 탐스럽게 핀 석촌호수 수변 무대. 검은색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성악가 4인조그룹이 우렁차면서 감미로운 노래에 재치 있는 퍼포먼스가 곁들이자 박수갈채가 쏟아진다. 석촌호수 벚꽃축제 기간 중이라 많은 인파가 무대를 빙 둘러싼 채 앵콜곡을 요청하며 호응을 보이자 연주자들은 한껏 상기된 표정들이다.
“우리 공연 어땠어요. 날씨가 쌀쌀해 관객이 없을까봐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이에요. 어떤 노래를 부를 때 반응이 제일 좋았나요?”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앳된 얼굴의 변동민, 심요셉 씨가 연신 객석의 반응을 묻는다.


 
끼 있는 젊은 음악인들 모여라!
 카톨릭대 성악과 4학년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음악 봉사단체 허그월드에서 활동하는 젊은 음악가로 지난해 가을부터 재능기부 연주를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이날 공연은 벚꽃축제 기간 중 주민을 위한 클래식 콘서트를 열어달라는 송파구청의 부탁을 받아 열리게 되었다.
 “대학시절 내내 여러 곳에서 연주 경험을 쌓았어요. 적은 액수지만 연주료 받고 무대에 서는 유료 공연이 대부분이었죠. 그런데 회가 거듭될수록 ‘갑과 을’의 관계인 음악회 주최 측과 연주자 사이의 삭막함이 느껴지더군요. 게다가 클래식 음악회 특유의 정형화된 틀도 갑갑하고 공허했어요. 그러던 차에 허그월드 회장님을 만나게 됐지요.” 테너 변동민씨가 그간의 사연을 들려준다. 
 허그월드 서성원 회장은 방이동에서 치과를 운영중인 원장. 대학시절 그룹사운드까지 만들만큼 음악에 빠져 살았던 그는 젊은 시절부터 음악가들과 마당발 인맥을 쌓아왔다. 게다가 꽃동네 무료 치과 진료를 삼십 년째 계속할 만큼 ‘실천하는 봉사’에도 평소 관심이 많았다.
 열정 넘치는 젊은 음악인들과 친분을 쌓을수록 그네들의 순탄치 않은 음악 인생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우리 사회에는 대학을 갓 졸업한 뮤지션들이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드물기 때문에 힘들게 공부하고도 음악가의 길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안타까움을 느낀 서 회장은 영 뮤지션들을 모아 소외된 이웃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기로 마음먹었다. 한편으로는 이들을 후원할 문화계, 재계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한데 모아 지난해 8월 ‘허그월드’를 만들었다. ‘우리 사회의 외톨이를 따뜻하게 안아주자’라는 취지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뭉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찾아가는 클래식음악회가 선물한 감동
 그동안 경기도 양주의 보육원, 가평 꽃동네 등지를 돌며 ‘문턱 없는 클래식 콘서트’를 열었던 변동민, 심요셉씨는 음악가로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대본까지 써서 연출한 창작 뮤지컬을 보육원 청소년들에게 선보였는데 깔깔 웃으며 박수치고 호응이 최고였어요. 무대에 선 우리도 흥이 나서 즉석 애드리브를 선보이며 신나게 노래 불렀어요. ‘소통하는 음악회’를 직접 경험해 보니 내 음악 세계가 한결 폭넓어지네요. 음악가로 살아갈 나 자신에게 격려가 많이 됐어요.” 테너를 맡고 있는 심씨가 속내를 털어놓는다.
 특히 그는 중학교 시절 우울증 때문에 집 안에만 틀어박혀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하며 외톨이로 지낸 경험이 있다. “그 당시 나를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도와준 게 바로 음악이에요. 친구 하나 없는 내가 악기를 배워 여럿이 함께 연주를 하면서 친구를 사귀게 되었지요. 그때 맛본 음악의 기쁨이 나를 성악가의 길로 이끌었어요.”
 현재 허그월드에는 성악가 뿐 아니라 피아노, 클라리넷, 바이올린, 플루트, 하프 연주자 10여명이 활동 중이며 연주회가 거듭될수록 음악인들의 재능기부도 계속 늘고 있다.
 특히 젊은 뮤지션들은 음악 봉사 활동을 하며 음악회 기획, 연출 등 다양한 분야의 현장 경험도 쌓는다. “수십 년 경력의 베테랑 음악감독님도 재능기부를 하세요. 그분과 함께 음악회 준비하며 레퍼토리 구성, 무대 연출, 홍보 등을 밀도 있게 배우죠. 현장에서 배운 노하우는 우리가 직접 소규모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바로 써먹지요. 음악가인 내게 허그월드는 ‘정신적인 스승’입니다.” 변씨가 힘주어 말한다.


음악 통해 함께 만드는 ‘행복’
 허그월드에 참여하고 있는 후원가들은 130여명. 음대교수, 방송인, 기업인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동참하고 있다. “각자 가진 재능을 여럿이 나누며 다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서 회장이 신념을 담아 말한다. 음악가들의 재능기부가 입소문 나면서 허그월드로 송파구청을 비롯해 음악회 요청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올림픽공원 내 경륜장에서는 매달 한 번씩 음악회를 열 수 있도록 공간을 선뜻 내주었다.  “송파구내 장애인복지관 분들을 초대해 노래를 들려드렸어요. 흥얼거리며 노래 따라하고 박수치는 그 모습이 무척 뿌듯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분들의 닫힌 마음을 여는 게 마음처럼 쉽지는 않지만 그 실마리를 차근차근 찾아가는 중입니다. 음악이 가진 치유의 힘을 믿습니다.” 심씨가 진지하게 덧붙인다.
허그월드 cafe.naver.com/hugworld12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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