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의 매력을 설명하는 늘푸른마을노인요양원 정택근 원장(51)의 얼굴에 함박꽃이 피었다. 그가 야생화와 사랑에 빠진 지 벌써 10년째. 40대 초반 누구나 있을 법한, 그러나 만만치 않은 인생의 고비가 찾아왔다. 그는 힘들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산과 들의 꽃 앞에 가서 앉았다.
“꽃을 보고 있노라면 네댓 시간이 그냥 흘러가요. 꽃 앞에서 평온을 찾았지요. 그 후부터 봄만 되면 가장 먼저 피는 야생화를 보러 전국을 헤집고 다녔어요. 그러다 2년 전부터 우리 지역 꽃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아산은 같은 위도선 상 다른 지역보다 꽃이 늦게 핀다. 따라서 비교적 야생화가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다. 광덕산은 겨우내 쌓인 낙엽 위로 방긋 내민 야생화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특히, 사는 곳이 한정적인 만주바람꽃이 곳곳에 숨어 피어 인근의 사진작가들이 촉을 세우고 달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정 원장은 “가까운 광덕산 자락에서 보기 드문 만주바람꽃을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신이 난 듯 말했다. 지난주에는 멸종위기 식물인 변산바람꽃이 피고 졌다며 아쉬워했다.
꿩의바람꽃, 노루귀, 앵초, 잔털제비꽃, 피나물 등 광덕산은 야생화의 보고다. 요즘 한창 피어 예쁘기 그지없는 야생화들이다. 그는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광덕산에 들어가 산다.
그는 바람에 떨리는 여린 꽃잎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낙엽위에 엎드린 채 숨을 죽이며 수없이 셔터를 눌렀다. 그는 사진에 항상 꽃 주변의 생태를 같이 담는다. 꽃을 확대한 듯한 사진보다 주변 환경과 조화로운 사진을 찍는 것이 그가 즐기는 사진작업이다.
“어디가 예쁠까 보면서 꽃을 이해하며 교감하려고 해요. 그러면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꽃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요.”
“오늘 카메라에 담은 꽃이 영정사진이 되지 않기를” =
야생화는 대부분 꽃이 작다. 정 원장은 “그 작은 꽃송이 안에 완벽한 아름다움이 숨어있다”며 감탄했다. 그러나 이내 안타까운 기색을 드러냈다.
“산을 집으로 가져가면 산이 없어져요. 사람들은 예쁘다며 그 조그만 꽃을 캐내가서 다시는 볼 수 없게 만들어요.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자연은 관리하지 않아도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잘 유지하는데 말이죠.”
흰색과 연한 노란색이 고운 토종민들레도 서양 진노랑 민들레에 눌려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우리가 무심한 사이 환경오염이 강하다는 이유로 들여온 서양민들레가 우리나라 민들레의 95% 이상을 차지해버렸다.
그는 신정호도 영인산도 아쉽다. “하고많은 꽃 중에 다른 지역에서 이미 특화된 연꽃을 심어놓은 신정호, 영산홍만 덕지덕지 발라놓은 듯한 영인산, 경제논리와 연결시켜도 아산만의 독창적인 무언가를 만들었으면 좋지 않았을까요?”
우리나라 고유의 꽃인 구절초를 상품화시켜 성공시킨 정읍 구절초 공원은 독창적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야생화공원으로 성공시킨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그런 선례를 보면서도 아산의 특징을 잘 살리지 못한 산과 공원이 아쉽기만 하다.
“천안 아산의 야생화를 담은 사진전을 열고 싶어요. 우리 지역에 이처럼 예쁜 야생화가 있으며, 얼마나 소중한 자연인지 우리가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만주바람꽃. 서식지가 일부 지역에 제한돼 있는 만주바람꽃. 이름처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며 다소곳한 새색시 같은 자태로 야생화사진작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꽃이다. 다른 곳보다 꽃이 늦게 피는 광덕산에서 4월 중순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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