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과 죄의식에 기반해서 행동을 배우고 세상을 배우게 되면, 아이들은 감정을 억누르게 되고, 그것은 부적절하게 발산될 것이며, 결국 이들이 자라서 가정을 이루게 되면 그 자식들도 똑같은 과정을 겪게 되는 대물림을 하게 된다. 즉, 문제는 이들이 배우자나 애인을 찾을 때에도 그들의 부모와 완전히 똑같은 성향의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점이다. 이것은 완전히 무의식적인 것이다. 즉, "이번에는 인정을 받고야 말겠어"라는 잠재의식의 발로인 것이다.
예를 들면, 여성의 경우를 들어보자.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고 자란 여성의 경우에는, 남성과의 교제 관계에서도 학대를 받기 쉽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이제는 건전한 남자와 건전한 관계를 맺고 싶기는 하지만(표면의식), 잠재의식은 그렇지 않다. 나를 학대했던 아빠나 엄마와 비슷한 남자를 만나 엄마나 아빠가 해주지 못했던 것을 그 사람에게 인정을 받음으로써 어렸을 때 충족되지 않았던 것을 충족시켜 그 부분을 성숙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학대자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또한 어렸을 때 받은 인상은, ‘사랑’ 이란 곧 ‘학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표면의식은, 이제 건강한 관계를 원하고 추구하지만, 잠재의식은 ‘학대자’를 찾아서 사랑을 받고자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고 싶은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성인이 이를 극복해야 한다. 부모가 학대를 하는 경향이 있다면 스스로 그 악순환을 벗어나 스스로를 성장시켜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와 쌓여있던 분노 등을 처리하여 이것을 방출해야 한다. 그것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맞닥뜨려 맞서야 한다. 그래야만 건강한 성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하여 악순환의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어렵게 극복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하는 갸륵한 이들에게 닥치는 또 다른 시련은 survival guilt(생존의 죄책감)라는 것이다. 자신만이 건강한 삶으로 구출되었다는 그런 죄책감 같은 것이다.
기능장애가 있는 가족의 특징 중 하나는 ‘누구도 달라질 권한이 없다’라는 것이다. 즉 누구도 더 잘나서는 안되고, 누구도 기능장애가 없을 권리가 없다는 것이 그 분위기이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이러한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가족을 용서하고 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분노를 먼저 풀고 그 다음 용서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감정, 그런 느낌을 갖는 것에 대해서 학습할 수 있고,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최면이 도움을 줄 수가 있다)
요즘 매스컴에 아이들의 문제가 모두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법 때문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이 나온다. 이것은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부모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를 다니는 등 2차 집단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또 다른 영향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치유에는 언제나 가족의 영향이 크다. 가족에 의해 엄청난 시너지가 있기도 하고, 다된 밥에 재를 뿌리기도 한다. 가족을 비롯하여 모든 조직과 시스템은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긍정적으로 변한다면,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라 하더라도 가족 시스템 항상성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항이 따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가족이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을 축하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긍정적인 변화 속에 저항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것을 협조하여 잘 극복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게 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당사자와 가족 모두가 고통의 삶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쏘울최면 부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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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여성의 경우를 들어보자.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고 자란 여성의 경우에는, 남성과의 교제 관계에서도 학대를 받기 쉽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이제는 건전한 남자와 건전한 관계를 맺고 싶기는 하지만(표면의식), 잠재의식은 그렇지 않다. 나를 학대했던 아빠나 엄마와 비슷한 남자를 만나 엄마나 아빠가 해주지 못했던 것을 그 사람에게 인정을 받음으로써 어렸을 때 충족되지 않았던 것을 충족시켜 그 부분을 성숙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학대자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또한 어렸을 때 받은 인상은, ‘사랑’ 이란 곧 ‘학대’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표면의식은, 이제 건강한 관계를 원하고 추구하지만, 잠재의식은 ‘학대자’를 찾아서 사랑을 받고자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해보고 싶은 것이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결혼하지 않은 젊은 성인이 이를 극복해야 한다. 부모가 학대를 하는 경향이 있다면 스스로 그 악순환을 벗어나 스스로를 성장시켜야 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분노와 쌓여있던 분노 등을 처리하여 이것을 방출해야 한다. 그것을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감정에 직접적으로 맞닥뜨려 맞서야 한다. 그래야만 건강한 성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하여 악순환의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의지가 강한 사람들은 어렵게 극복해 나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노력을 하는 갸륵한 이들에게 닥치는 또 다른 시련은 survival guilt(생존의 죄책감)라는 것이다. 자신만이 건강한 삶으로 구출되었다는 그런 죄책감 같은 것이다.
기능장애가 있는 가족의 특징 중 하나는 ‘누구도 달라질 권한이 없다’라는 것이다. 즉 누구도 더 잘나서는 안되고, 누구도 기능장애가 없을 권리가 없다는 것이 그 분위기이다. 따라서 본능적으로 이러한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가족을 용서하고 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분노를 먼저 풀고 그 다음 용서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감정, 그런 느낌을 갖는 것에 대해서 학습할 수 있고,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최면이 도움을 줄 수가 있다)
요즘 매스컴에 아이들의 문제가 모두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법 때문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이 나온다. 이것은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부모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를 다니는 등 2차 집단을 경험하는 아이들은 또 다른 영향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치유에는 언제나 가족의 영향이 크다. 가족에 의해 엄청난 시너지가 있기도 하고, 다된 밥에 재를 뿌리기도 한다. 가족을 비롯하여 모든 조직과 시스템은 기존 시스템을 유지하려는 항상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긍정적으로 변한다면,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라 하더라도 가족 시스템 항상성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항이 따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가족이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을 축하해 주어야 한다. 아이가 긍정적인 변화 속에 저항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그것을 협조하여 잘 극복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게 되는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당사자와 가족 모두가 고통의 삶을 이어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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