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왕들은 의식주를 포함해서 최고의 극진한 건강관리를 받았음에도 대부분 질병으로 고생했습니다. 실제 과다한 영양 섭취에 비해 운동이 부족한 왕들은 소위 성인병에 해당되는 질병을 끊임없이 앓았습니다. 현대인의 삶은 조선시대 왕들의 생활과 놀랄 만큼 유사합니다.
‘왕조실록’을 보면, 태조가 항상 구갈(口渴)증에 시달리다가 포도를 먹고 병이 회복됐다는 기록이 나온다. 포도는 마음의 번거로움이나 속열을 제거하고 갈증을 해소시키는 작용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태조는 진액이 부족하고 화열(火熱)이 많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급기야 74세가 되던 해 임종을 맞았는데, 임종 시기에 소합향원(蘇合香元)과 ‘청심원’을 들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청심원’은 일반 소화제만큼이나 사람들에게 흔히 알려져 있는 처방이다. 그러나 원래 청심원은 그렇게 가볍게 쓰면 위험한 약이기 때문에 가려서 써야 한다. 만약 정식으로 한의원에서 처방받은 청심원이라면, 중풍인 경우에 써야 한다.
중풍을 일으키는 기전은 참으로 다양하다. 현대의학에서는 뇌혈관이 터져서 생기는 <뇌출혈>과 뇌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뇌경색증>을 아울러서 <뇌졸중>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중풍의 범주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임상적으로는 순환장애와 뇌압의 상승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체질적으로 몸에 열이 많든지 스트레스가 쌓여 울화가 되든지 술을 많이 마시든지 해서 이 열(熱)이 제대로 방출되지 않아 몸속에 쌓이게 되면 급기야 위로 상승해 머릿속에서 폭발하는 것이다.
중풍환자들의 응급치료 시 손가락, 발가락을 따서 피를 내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마치 강물이 제방을 범람할 때 어느 한 곳에서 미리 터져 주면 다른 부분이 피해를 당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그 효과는 여러 논문에서 입증됐다.
몇 년 전에 특이한 환자 한 분이 진료실에 온 적이 있다. 이 분은 코피를 자주 흘렸는데, 종합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에게 계속 진료를 받아왔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코피가 터졌는데 잘 멈추지 않자, 모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고 한다. 응급실에 있던 레지던트는 지혈(止血)이 잘 되지 않자 아예 레이저로 코를 지져버렸다고 한다.
이후 그 환자는 원래 다니던 종합병원의 신경외과 과장에게 그 얘기를 하고 혼이 났다고 한다. 그 신경외과 과장은 그 환자가 뇌혈관이 터져 중풍이 일어날 위험에 처해 있었지만 다행히 계속 뇌의 아래에 있는 코에서 미리 코피가 터져 줘서 중풍이 일어나지 않은 거였는데, 이렇게 코를 지져놓으면 어떡하느냐고 혀를 찼다고 한다. 이 환자는 결국 그 다음에 실제 중풍으로 쓰러졌다. 이는 오히려 한의학적인 개념인데, 그 신경외과 과장은 수십 년간의 진료 끝에 체험적으로 그 연관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글 : 정경용 원장 (청주시한의사협회 홍보위원, 정경용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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