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만난 사람 풍납 2동 박현숙 향온주장

향온주 전통 계속 이어질 것

지역내일 2013-03-19 (수정 2013-03-19 오후 2:32:26)

지난 6일 풍납2동 주민센터 앞마당에서는 동네잔치가 열렸다. 박현숙 향온주장이 주축이 되어 장 담그기 행사가 열린 것이다. 박현숙 향온주장은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9호로 왕이 마시고 신하에게 하사했던 술인 향온주의 맥을 이어 오고 있다.
사물놀이패의 신나는 연주가 마당 가득 울려 퍼지는 가운데 메주로 고추장도 담그고 간장도 담그는 날이었다. 


향온주장에서 장 담그기 전도사로 
“여자들이 유학도 가고 우주도 가고 대통령도 되는 시대지만 정작 우리 식생활의 기본인 장 담그는 법을 딸들에게 알려주는 집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친정엄마 역할을 하자는 의미에서 이번 행사를 열게 되었습니다.”
다소 상기된 표정의 박현숙 향온주장의 말이다. 장 담그기는 발효 음식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술을 빚으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것으로 아파트에서도 썩지 않는 방법을 이미 수년전에 개발 했다고 한다. 
“아파트에서 장이 썩는 이유는 첫째 대부분 시골에서 어머니가 만든 불완전하게 발효된 메주를 가져다 쓰기 때문이었어요. 둘째는 소금염도가 안 맞아 어느 해는 너무 짜고 또 어느 해는 싱겁다보니 점점 된장이건 고추장이건 간장도 사다먹게 됐죠. 저는 염도계를 써서 일정한 염도를 맞추고 메주를 쑬 때, 쓸 콩을 수매하면서 생산자 이력까지 따집니다.” 
박선생은 이런 노력의 결과를 주민들과 나누려 했다. 풍납 2동 주민 센터에서 장 담그기 강좌를 열어 누구나 와서 배울 수 있게끔 한 것이다.  
강좌를 담당했던 풍납2동 주민센터 김영선 주임은 오랜 시간 박선생을 옆에서 보면서 엄마 같은 푸근함을 느꼈다고 한다,
“박현숙 선생님께서 열과 성을 다해 가르쳐 주시니까 회원들이 잘 따라요. 장 담그기 외에도 장아찌라든가 강좌 듣는 회원들에게  끊임없이 퍼주시니 사람이 안 따를 수가 없죠. 전통 장류 담그기 특강에는 입소문타고 점점 사람도 늘고 지금도 문하생이나 수제자처럼 배웠던 분들이 계속 도움을 주고 계세요. 오늘 행사도 그분들의 도움으로 이뤄졌고요.”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다’
향온주는 박 선생의 외가인 하동 정씨 가문에서 인현왕후 때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술이다. 향온주는 녹두누룩을 써서 향기롭고 부드러운 술로 숙취가 거의 없다고 한다. 
“향온주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커요. 일본의 사케, 프랑스의 코냑처럼 어느 나라든 대표하는 술이 있기 마련이죠. 우리나라는 소주밖에 없어요. 그러나 소주는 일반적인 술이고 우리나라 대표 술의 역할을 향온주가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며  “향온주장으로 살아서 제 본업은 술을 빚는 것이지만 사업쪽으로 확장은 어려운 것이 현실적인 문제예요. 제대로 된 향온주를 담아서 제대로 마시는 시스템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지요. 그러나 개인이 하기에는 힘에 벅차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한 소설가는 “술이라는 건 그게 어떤 술이든 산지(産地)에서 마셔야 제 맛이 나는 것 같다.산지에서 멀어질수록 그 술을 구성하고 있는 무언가가 조금씩 바래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흔히 말하듯이‘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는 법’이다”라고 했다.
박현숙 향온주장이 풍납 2동에서 자리 잡고 있는 한은 적어도 향온주에 대해서만은 전통이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다. 좋은 술은 여행을 하지 않지만 좋은 술을 찾는 사람들의 여행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 담그기로 나누는 마음 실천
“이 마을에 살면서 나이 든 사람으로 모두 건강하게 함께 잘 살자는 의미로 장 담그기는 전수할 겁니다. 장 담그기로 나누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강생들이 잘 배워서 다른 지역에 가서 교육을 확산시켜 최소한 서울에서라도 봄이 되면 이집 저집 장 담그는 소리가 들렸으면 좋겠어요. 외국에 가면 그런 동네가 있더라고요.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려도 비슷한 맛을 내는. 우리 풍납동 어느 집이라도 문을 두드리면 장을 사다 먹을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박현숙 선생은 장 담그기를 가르치면서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엿기름이나 메줏가루를 아예 몰라 헤매는 수강생들을 보면 놀랐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떻게 이렇게 모를 수가 있나 했지만 수업이 진행될수록 하나둘 배워 나중에는 자신만큼 잘 만드는 수강생들을 보면서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고.
향온주라는 향기로운 술만큼이나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자 하는 향기로운 그의 마음이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오현희 oioi33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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