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학교를 떠난 안산지역 학생들은 600명이 넘었다. 의무 교육 대상자인 중학생 중 학업을 중단한 학생들은 포함하지 않은 수치다. 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를 고민하는 학생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자퇴생은 곧 낙오자’라는 우려 때문에 자녀와 갈등을 겪는 부모들이 적지 않다. 과연 그럴까? 학교를 떠난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학교 밖에서 꿈을 찾는 다양한 아이들을 만났다.
스타일리스트. 나만의 길을 간다
지난해 A고등학교 2학년이던 지은(가명)이는 학교를 그만뒀다. 친구 관계가 지은이의 학교생활을 힘들게 했다.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 더 이상 학교생활을 계속할 자신이 없어 어머니와 자퇴를 상의했는데 다행히 엄마가 제 마음을 잘 이해해 줬다”는 지은이. 학교를 그만 둔 후 지은이의 고민은 깊어졌다. 스스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라고 믿어준 엄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급했다.
지은이가 고민 끝에 선택한 직업은 스타일리스트가 되는 것. 지은이는 요즘 스타일리스트학과 진학을 위해 메이크업과 헤어디자이너 자격시험을 준비 중이다. 오전에는 검정고시 준비를 위해 학원을 다닌다. “주변에서는 자퇴했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전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거라 생각해요. 모두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라는 지은이. 지은이의 학교 밖 생활은 ‘남들과는 다른 길’이다.
일하며 찾은 꿈 ‘호텔리어’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 끝난 후 오랜 방황 끝에 학교를 그만 둔 태성이(가명). 태성이가 학교를 그만 둔 이유는 중학교와 달리 강압적인 학교분위기 때문이었다. 야간자율학습은 물론이거니와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서열이 학교 생활을 숨 막히게 했다. 태성이는 결국 여름방학이 끝나고 하루 이틀 무단결석이 이어지더니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그러나 ‘자퇴는 절대 안 된다’는 아버지에게 맞고 가출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어쩔 수 없이 태성이의 부모는 반 포기상태로 자퇴를 받아들였다. 자퇴 후 태성이는 밤이면 게임하고 점심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일어났다. 아르바이트도 손에 닿는 데로 했다. 뷔페식당 서빙이며 주유소 알바, 전단지 돌리기 등 시간이 날 때면 용돈을 벌기 위해 일해야 했다. 자퇴 후 사이가 나빠진 부모님이 쓰고 싶을 만큼 용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퇴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해 봤는데 서빙하는 일이 저한테 잘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호텔경영학과에 가볼까 해요. 대학에 가려면 공부해야 하니까 지난해 11월부터 학원에 등록한 후 공부하고 있어요”라는 태성이. 태성이에게 학교 밖 생활은 ‘자유롭게 찾은 꿈’이다.
마음의 병은 치료가 먼저
학교 폭력으로 마음의 병을 얻은 보라(가명)는 자퇴 후 정신보건센터가 운영하는 청소년 집단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그를 엄마가 ‘꿈꾸는 교실’ 프로그램에 참여시킨 것이다. 꿈꾸는 교실에서는 매주 채소재배와 미술요법, 운동요법으로 심리치료가 이뤄진다. 토요일이면 검정고시 준비하는 친구들과 함께 스터디 활동도 한다. 현재 꿈꾸는 교실에는 보라와 같이 학업을 중단한 학생 1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활동을 진행하다보니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보라. 보라에게 학교 밖 생활은 ‘치료’다
학교 밖 또 다른 학교 ‘해밀학교’
지난해 학교를 그만 둔 예은(가명)이는 오는 3월부터 청소년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해밀학교에 등록했다. 점심시간부터 시작하는 해밀학교는 학교보다 느슨하고 학교보다 재미있는 교육이 진행된다. 인터넷 강의로 교과수업도 진행하지만 리본공예와 클레이, 텃밭 가꾸기등 다양한 체험거리도 많다. 예은이는 아직 무엇이 될지 정하지 못했다. 학교는 그냥 가기가 싫어 그만뒀다. 학교를 그만 뒀지만 관심을 갖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학교 그만 두고 친구따라 청소년 지원센터에 왔는데 여기서는 선생님이 제 말을 들어주더라구요. 이곳에 오면 맘이 편하다”는 예은이. 그래서 3월부터 시작하는 해밀학교에 등록했다. 예은이에게 학교 밖 생활은 ‘새로운 시작’이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전문가 인터뷰
안산청소년지원센터 이춘화 소장
자퇴=낙오자란 인식은 위험
“자퇴한 학생은 곧 낙오자라는 인식은 정말 위험합니다. 아이들은 예전에 비해 자유로운 생각과 생활방식을 가졌는데 학교는 변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해마다 많은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싶어하죠. 그들이 정말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라도록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안산 청소년 지원센터 이춘화 소장.
이 소장은 자녀가 학업 중단을 원할 때 강압적인 태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아이가 왜 학교를 안 다니겠다고 하는지 마음을 열고 대화해야 한다. 물론 충동적인 생각으로 자퇴를 선택한다면 말려야 하지만 ‘절대 안돼’라는 생각은 접어두고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오히려 학교를 떠난 아이들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더 빠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학교 밖 아이들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청소년 쉼터와 위기 구조 시스템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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