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단어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면 ‘그리스어의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하며, 필로는 ''사랑하다'' ''좋아하다''라는 뜻의 접두사이고 소피아는 ''지혜''라는 뜻이며, 필로소피아는 지(知)를 사랑하는 것, 즉 애지(愛知)의 학문을 말한다’고 정의한다. 경제학이라고 하면 경제현상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고, 물리학이라고 하면 물리현상에 관해서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이나 물리학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것이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철학의 경우는 그 이름만 듣고는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지식을 사랑하는 학문이란 것 밖에….
제 19회 철학올림피아드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은 명덕외고 김채은 학생을 만났다. ‘철학’이 무엇이냐는 리포터의 우둔한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듯 골방철학이 아니라 존 듀이의 언급처럼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해주는 학문”이라 명쾌하게 정의를 내린다. 채은양이 소개하는 철학,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철학,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해주는 학문
제 19회 철학올림피아드대회는 지난 1월 13일 성균관대학교 다산경제관에서 열렸다. 올해 제시된 주제는 ‘시’ 한편. 인류의 역사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발전방향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자기가 생각하는 발전방향은 무엇인지에 관해 이 시를 근거로 자기 생각을 서술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발전 방향에는 찬성한다. 사람이 자연과 같이 공존하거나 이기주의 개인주의적으로 가는 것은 안 된다’는 내용으로 중심을 잡았고 올해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다른 학생들처럼 학원에 다니며 대회를 준비한 것도 미리 유형을 분석하며 글쓰기 연습을 한 것도 아닌 채은양이 첫 대회에서 상을 받은 이유는 단 하나. 평소 생활화된 책읽기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렇다면 철학소녀 채은양이 주로 읽는 책은 어떤 것일까? 채은양은 철학 문학 역사 경제 예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두루 섭렵하고 있다. 이런 책읽기 습관은 초등학교 때부터 형성이 됐는데 그 어린 나이에도 ‘죄와 벌’이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나’ 등의 두껍고 철학적인 내용을 좋아했다고. 그리고 책을 읽고 나면 드는 의문 ‘내가 목표를 잡고 살아야 하나? 목표를 생각해야 하나?’를 두고 고민했고 ‘도전해보자. 현실에 안주하지 말자’로 결론을 내렸다.
철학올림피아드 대회를 참가하기 위해서는 철학자나 철학이론에 대해 정리를 해보라는 조언을 많이 한다. 하지만 채은양은 중학교 때 관심있게 읽었던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읽고 ‘철학VS철학( 강신주)’이나 ‘정의론(존 롤즈)’을 펼쳐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정도로 마무리했다고 한다.
또 하나 채은양이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있는 저력은 ‘토론’과 ‘글쓰기’다.
채은양은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간 적이 있다. 거기서 동아리 활동으로 ‘철학클럽’에 참여했는데 학교 대표를 뽑기 위한 교내 토론대회에서 원어민 학생을 모두 제치고 학교대표로 갈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영어 실력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정리해 전달할 수 있는 능력에 있었다. “반 친구들이 왜 채은이는 되고 나는 안 되느냐는 질문에 선생님께서 영어를 못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채은이의 주장에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며 아이들 앞에서 칭찬을 해 주었고 그 결과 대회에서 우승하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명덕외고에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교내토론대회에서도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1학년인 채은양 팀이 1등을 하기도 했다. 그 외 모의UN이나 모의국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토론대회에 이은 교내 백일장은 나갈 때마다 상을 타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고 교육청대회나 시 대회까지 참여하기도 했다.
내 꿈은 영화감독
채은양의 꿈은 ‘영화감독’이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채은양은 철학을 전공한 후 아카데미에서 영화를 배우고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계획이다.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채은양이 연극영화과나 영화관련 학과를 택하지 않고 왜 철학을 전공하고 싶어 할까? 이유는 간단하다. 채은양이 좋아하는 영화 JSA의 박찬욱 감독은 서강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봉준호 감독은 연세대에서 사회학과를 전공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이 되려면 테크닉보다 머릿속에 풍부한 사람에 대한 분석과 본질이나 심리에 관심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이유를 전한다.
채은양의 영화사랑은 명덕외고에서 일본어과를 선택하는데도 영향을 주었다. 일본어과를 택한 이유도 일본영화를 보면서 일본문화가 궁금했기 때문. 입학원서를 쓸 때도 자기계발계획서 중 독서 관련 활동에 ‘정의란 무엇인가’와 김지운 영화에세이 ‘김지운의 숏컷’을 기록했다. 마침 면접관이 김지운 감독의 팬이어서 대화가 더 잘 통했던 기억도 생생하기만 하다.
교내 동아리 활동도 사진을 찍어 슬라이드 영화를 만드는 ‘시선’에 참여하고 있을 만큼 온통 영화와 관련된 내용뿐이다.
영화사랑은 봉사활동에도 이어진다. 방학 때면 부모님의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내레이션 봉사활동을 했다. 시각장애인들은 영화를 보고 싶어도 배우의 목소리만 듣게 된다. 그런데 영화는 다양한 장면을 보면서 느낌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화면이 바뀔 때마다 화면 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목소리로만 연출하는 것이 필요하다. 채은양은 화면에 나오는 장면을 자세하게 설명하기 위해 미리 영화를 훑어보고 필요 없는 설명을 길게 하다보면 정작 중요한 핵심을 놓치고 가기 때문에 줄거리를 살리면서 주변 정리까지 눈에 보이는 것처럼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화면이 바뀔 때마다 주인공이 하는 행동과 배경을 마치 직접 보는 것처럼 설명하면서 내가 더 영화에 몰입하게 됨을 느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나니 관람객들이 와서 ‘영화 잘 봤다. 너무 수고했다’며 등을 토닥여주기도 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채은양은 영화에 더 빠져들고 있었다.
“내가 감독이 된다면 박찬욱이나 봉준호 감독처럼 사람들의 심리나 본질과 같은 것에 집중해서 겉으로 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도 캐릭터 내면을 보여주면서 이 사람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암시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며 “이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 우리 삶의 가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철학을 더 열심히 공부해 내년에도 철학올림피아드에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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