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 ‘수원 여성’을 만나다-풍미식품 대표 유정임

‘세상을 평정하는 유정임 표 김치’, 그것이 나의 인생

지역내일 2013-02-21 (수정 2013-02-21 오후 1:50:53)

1986년 세류시장 15평 남짓한 가게, 하루 매출 5~10만원. 2004년 오목천동 2000여 평 규모의 현대식 사옥으로 이전, 연매출 100억. 포기김치 제조가공 분야의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38호 지정, 신지식농업인상, 여성발명기업인상 수상. 풍미식품 유정임 대표는 어릴 적부터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안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수많은 타이틀로 불리는 현재, 사람들은 그를 ‘성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한다. 언제나 첫 마음으로 품는 김치사랑, 유 대표의 과거, 현재, 미래까지 담겨 한껏 맛이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성공의 키포인트_ 어머니의 손맛과 타고난 미각*후각*감각 
‘난 성공할 거야’, ‘우리 아이들은 절대 가난하게 살게 하지 않을 거야.’ 어릴 적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장이 된 어머니의 일을 돕는 건 맏딸 유정임 대표의 몫이었다.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챙기며, 때론 돈을 빌리러 다니기도 했다. 가난이 지긋지긋하게 싫었다.   
“살림을 맡다보니 자연스레 요리도 익히게 됐죠. 어머니 솜씨가 정말 좋으셨어요. 제겐 요리사 선생님이나 다름없었죠. 반찬가게를 하면서 김치도 만들어 팔았는데, 그런 어머니의 손맛을 물려받았는지, 남들보다 미각, 후각이 발달했더라고요.” 야무진 손맛은 결혼해서도 가만있지 못했다. 종가집 맏며느리로 할 도리 다해가면서 레이스에 조끼를 떠가며 억척스레 부업을 했다. 형편이 어려웠던 것도 아닌데, 마치 습관처럼 일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매탄동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즈음, 방 두 칸짜리 아파트로 이사했어요. 그리고 우연히 시장에서 한 청년을 만났는데, 느닷없이 방 하나를 세놓으라는 거예요. 알고 보니 건설회사 직원이더라고요. 그게 인연이 돼서 건설현장 근로자들 밥을 해주게 되고, 돈도 제법 벌었죠. 일을 즐겁게 하니까 능률도 팍팍 오르더라고요.” 근처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선생님들까지 대놓고 점심식사를 하러 올만큼, 유 대표 손맛은 소문이 자자했다. 그리고 그 청년은 유 대표의 제부가 됐으니, 인생에 무엇 하나 허투루 흘려보낼 만남은 없는 모양이다.


성공의 키포인트_ 메모하는 습관, 치밀한 전략으로 풍미식품을 일구다 
“자랑 같지만, 사업수완도 있었지 싶어요. 우유 배달도 했었는데, 당시에 제일 잘 나가던 서울우유 고객 대부분을 매일우유 고객으로 바꿨거든요. 수금하러 가면서 우유 하나 더 얹어주는 등 나름 고객서비스 전략을 폈던 것 같아요.” 항상 메모하는 습관도 주효했다. 고객리스트를 작성해 집안의 대소사, 특징 등을 꼼꼼히 정리했다. 그 집의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 계란이 떨어졌는지 안 떨어졌는지 훤히 알 정도였다. 그 ‘때’를 알고 그 집에 계란을 챙겨주던 남다름, 그걸 알아본 누군가가 유 대표에게 문 닫은 김치공장을 소개해줬다. 아줌마가 하면 딱 맞을 거라면서. 그게 세류시장 속 풍미식품의 시작이었다.
“남편의 반대가 심했죠. 월급 넉넉히 가져다주는데, 왜 굳이 그런 일을 하냐는 거예요. 그냥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겁도 없이 운전면허 딴 지 3일 만에 강원도에 배추하러 간 적도 있고, 한번은 가락시장에서 사온 배추에 싹이 올라와서 전부 버린 적도 있어요. 그때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는데…” 그래도 김치를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이 선택한 일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는 ‘이게 다 지금을 있게 한 특별한 수업료’라고 했다.
갠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고, 슬픈 날이 있으면 좋은 날도 있듯이 인생도 이런 일기예보와 같지 않겠는가, 유 대표에게 인생은 그래도 기대해봄직한 햇빛 쨍쨍한 날이었다. 


성공의 키포인트_ 여성기업인은 한 사회가 만들고 가꿔주는 것
그의 집무실엔 드레스룸이 있다. 비즈니스 대상에 따라 하루 5~6벌의 옷을 갈아입는다.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예의’라는 유 대표에게서 ‘뼛속까지 기업인’이란 문구가 떠올랐다.  
“풍미식품을 막 시작하면서 참 감사하게 경기도향토음식연구회 회장직도 맡겨주고, 그렇게 수원시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2000년엔가는 김치공장이 정말 힘들고 어려워서 외도할 생각에 농업기술원의 장 교육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만난 농수산대학교 교수님을 통해 중소기업청 지원의 현장애로지도 연구 사업을 받고, 시장의 김치공장에 연구전담부서를 만들게 됐죠.” 김치에도 연구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후 쇠퇴위기에 놓였던 풍미식품은 급성장을 맞았다. 2002년 경기유망중소기업 선정, 2003년 기술혁신(INNO-BIZ)형 기업 선정, 2004년엔 대통령 산업포장수훈을 받았다. 이곳저곳으로 김치강의를 하러다니면서 새 사옥에 대한 밑그림도 그릴 수 있게 됐다. “전통식품문화관과 박물관, 연구소가 있는 김치공장은 여기밖에 없을 것”이라며 유 대표가 자랑스레 말한다. 
전통식품문화관엔 김치의 역사부터 발효숙성과정, 김치제조도구, 한과류, 병과류, 엿류와 콩가공식품인 두부 등이 전시되어 있고, 김치담그기, 두부, 장류 만들기 체험프로그램도 운영돼 전통식품에 관한 좋은 교육의 현장이 되고 있다. 스스로 찾아다니는 노력이 전제돼야 하늘의 뜻과 맞물려 결정체가 만들어지는 법, 그렇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도왔다.  


성공의 키포인트-인생을 건 변치 않는 성실한 노력
유 대표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다. 상공회의소 주최의 조찬강의를 듣고, 공장 구석구석을 살피고, 때론 수원시 여성친화창업자문단 자문위원으로 식품 분야 창업을 준비하는 여성들과 만난다. 대내외적으로 바쁜 중에도 그의 연구소에선 끊임없는 신제품개발이 이뤄진다. 그는 딸기 고추장을 비롯해 칼슘김치, 오미자김치, 연근김치 등 30여 건이 넘는 특허를 가지고 있다. 이젠 외국에 우리 전통식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김치전도사가 되고 싶다. 김치에 파묻혀 있다 보면 퇴근시간은 밤11시, 12시. 집으로 들어와 세탁기를 돌리고 밀린 집안일을 한다. 여성기업인으로 산다는 것, 1인 5~6역을 해야 하니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문을 두드리면 도움을 줄 곳은 정말 많다. 그는 “수원은 기업하기 좋은 곳이다. 겁내지 말고 자신 있게 도전하라”고 조언한다. 모든 것이 자기가 할 탓이라면서 말이다.
‘초심을 잃지 말자.’ 지금보다 더 노력하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김치는 나의 인생’이라고 말하는 유 대표는 이전보다 더 열심히 강의를 하고, 수출을 늘려가야 할 시작점에 놓여있다. 다행히도 그 길엔 이전보다 더 많이 자신을 응원해주고 아껴주는 가족이 있다.
“남편이 명예퇴직하고 풍미식품의 든든한 셔터맨이 됐어요.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지..., 요즘 제가 호강하고 삽니다.”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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