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외에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학교 장기자랑 때 기죽지 않는다는 이웃 엄마의 조언대로 초등 1학년 딸에게 플루트를 시켰어요. 그런데 어려서 폐활량이 적다보니 ‘삑’ 소리만 날 뿐 제소리를 내지 못한 채 1년간 끙끙대다 관뒀어요. 딸은 지금도 플루트만 보면 고개를 저어요.”, “체르니는 기본이라기에 유치원 때부터 피아노를 가르쳤어요. 레슨 때마다 도망 다니는 아들을 혼내고 달래가며 목표 진도를 겨우 마쳤어요.” 집집마다 악기를 둘러싼 자녀와의 ‘씨름담’은 다양하다.
음악 학원 숫자 세계 최대 하지만 클래식 인구 1%
세계에서 음악 학원이 제일 많은 나라, 그런데 클래식 인구는 고작 1%인 대한민국의 아이러니를 꼬집으며 ‘돈 들여 음악 싫어하게 만드는’ 세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음악인이 있다. 주인공은 김이곤 포니정홀 예술감독. 최근엔 <사랑한다면 음악공부 절대 시키지 마라>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펴냈다.
그는 중3 올라가는 아들과 대화하다 깜짝 놀랐다고 한다. “학교에 음악 시간이 없다고 하더군요. 집중이수제로 인해 예체능을 몰아 배우고 중3 때는 ‘주요 과목’ 위주로 수업한데요. 성장기 아이들에게 예술적 감수성이 필요하다는 건 구호일 뿐이죠. 세상이 미쳐가는구나 싶었죠.”
누구나 자기 자녀를 창의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로 키우겠다고 욕심내지만 예술을 이해하고 즐기는 감성의 토대 없이 ‘잡스형 인간’은 출현할 수 없다고 김 감독은 잘라 말한다. “악기 연주는 급하지 않아요. 먼저 ‘좋은 귀’부터 만들어 주어야죠.”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를 피아노학원에 보내는 시기는 6세~ 초등3학년 무렵. 학원에 가면 일단 손가락 연습부터 시킨다. 음악의 첫 단추인 ‘감상’은 빠져있다. 기계적인 손가락 연습에 싫증난 상당수 아이들은 ‘음악의 귀’가 뚫리기도 전에 클래식은 지루하다고 단정 짓는다.
바로크음악 좌뇌, 낭만주의음악 우뇌 발달 김 감독이 설파하는 음악 교육의 핵심은 ‘뮤직샤워’. 콩나물에 물 주듯 아이들에게도 늘 음악을 들려주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음악 감상은 뇌 발달에 좋아요. 바흐, 헨델 같은 바로크, 고전 음악은 박자와 멜로디가 정확하고 단순, 반복적인 패턴을 사용하기 때문에 좌뇌의 논리성을 키워줘요. 쇼팽, 리스트 등 낭만주의 음악은 우뇌의 감성을 자극하죠.” 충분히 음악을 ‘섭취’한 다음 아이가 좋아하는 악기를 가르치라고 조언한다.
“어린아이일수록 라이브 음악회에서 명연주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김 감독의 지론이다. 음정, 리듬, 박자, 화성 등 음감이 어른보다 아이가 뛰어나기 때문에 이 시기에 접한 좋은 음악회는 살아있는 음악 교과서가 된다. 그러면서 2002년 한 유치원의 콘서트에서 받은 감동을 들려준다.
“유아, 학부모 대상 살롱음악회였어요. 성악가 오현명 선생 등 쟁쟁한 음악인들을 초청해 야외무대에서 편안히 감상할 수 있도록 꾸몄죠. 아이들을 위해 한쪽에다 블록 쌓기 등 놀이터도 마련했죠. 결과는 대성공이었어요. 연주 솜씨가 뛰어나니까 객석이 몰입했고 꼬맹이들도 놀이터에서 놀면서도 귀 기울이더군요.”
이후 김 감독은 어린이콘서트를 꾸준히 열고 있다. 수준급 음악인을 공들여 섭외하고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그림자연극 등 재미 요소를 가미한다. 7세 이하는 예술의전당 등지의 음악회 출입이 원천 봉쇄되는 척박한 음악환경 속에서 돈키호테처럼 다양한 어린이음악회를 시도했다. 경제적으로 큰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어야 한다는 소신은 꺾기지 않았다.
라이브음악회는 살아있는 음악교과서
“2년 넘게 카페콘서트를 매달 열고 있는데 6살 여자아이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와요. 언제부터인가 삐뚤빼뚤한 글씨로 ‘슬프다’, ‘목소리가 좋다’라며 감상평을 쓰더니 회가 거듭될수록 ‘즐겁게 춤추다 웃는 느낌’, ‘앵콜곡을 연주할 때 콘서트에 있던 사람들이 마치 물방울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같은 기막힌 표현으로 발전하더군요. 이 아이에게 음악은 창작의 동기가 되고 있는 셈이죠.”라며 그는 뿌듯해한다.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내 포니정홀 예술 감독인 그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 진행자, 클래식 강연가로도 활동 중이다. 키 186cm, 준수함까지 겸비한 서울대 성악과 출신의 그는 외모와 달리 곡절 많은 음악인생을 살아왔다.
시골출신으로 음악과 동떨어진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고3을 앞두고 “뭘 하며 살면 행복할지 생각해 봤니? 내가 보기엔 넌 목소리가 참 좋아”라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쿵’ 내려 않았다고 한다. 부모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 음악선생님께 ‘읍소’하며 성악을 배웠고 원하던 서울대에 합격했다. 졸업 후 롤러코스터 인생을 살다 결국 ‘마음의 고향’인 음악으로 돌아왔고 지금 이 순간 “음악 덕분에 행복하다”고 담담히 말한다.
“명곡을 콕 짚어 달라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음악 감상을 공부처럼 하면 안돼요. 클래식 마다 작곡가가 꼭 들려주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어요. 그걸 아이와 함께 찾아보세요.” 인터뷰 내내 그는 ‘자유로운 듣기’를 강조했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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