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딘 성장그래프가 안겨준 성찰
둘째인 용근이는 또래보다 성장 속도가 더뎠다.
태어나 두 돌까지 눈에 띄게 자란다는 시기에도 오히려 눈에 띄게 작았다.
사실 선천성 요로협착으로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던 터라 키 문제는 뒷전이던 때였다.
그런데 큰 산을 두 번이나 넘고서 한숨을 돌리고 나니 비로소 또래보다 작은 키가 산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던 것.
성장그래프 평균 3% 대에서 들락날락. 만 8세가 된 지금까지 아이는 여전히 저속(?) 성장 중이다. 키가 작은 아이의 엄마로 사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또래보다 작아 보이니 2~3살 어린 동생들도 용근이를 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아이를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 엄마의 표본이라도 되는 양, 질책 어린 시선으로 키 크는 묘약(?)을 권하던 사람들. 여기에 온갖 성장 관련 정보들이 차고 넘쳐 오히려 마음을 어지럽게 해준 것도 한몫을 더해 주었다.
하지만 정작 아이 키에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건 유전적인 한계를 실감할 때였다.
아무리 잘 먹이면 큰다는 세상이지만 170과 160cm가 못되는 부모 키에 열패감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성장그래프 3% 경계에 있는 아이
아이는 3년 째 성장그래프 추적 관찰 중이다.
아이 키가 드디어 1m 가 되던 만 5살 무렵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소아과에서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의사선생님의 소견을 받아들면서 부터다.
소견서를 들고 분당 서울대병원 소아 성장 전문의인 김혜림 교수님께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진료실 앞은 전국에서 모인 키 작은 아이들로 늘 인산인해였다.
“우리 아이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하는 안도보다는 “이 아이들 부모는 얼마나 속이 탈까” 공감이 되면서 매번 안타까움이 드는 곳이다. 그렇게 김혜림 교수님과 6개월에 한번 씩 만나기를 3년.
추적 검사를 받고 있는 아이는 성장 호르몬 치료를 하기엔 다소 애매한 그래프 3~4%를 오르내리며 지켜보는 리포터의 마음에 늘 묵직한 체증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만 8살 생일을 갓 넘긴 지난 1월 22일. 골 연령 만 6세에 7개월 동안 단 1cm가 자란 아이를 보며 김 교수님도 이번엔 표정이 좋지 않으셨다.
그동안 성장호르몬 치료를 적극 권하지 않았던 분이라 심란한 마음은 더 없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리포터.
성장호르몬 결핍을 진단받기 위해서는 먼저 2박 3일간 입원해 호르몬의 이상 유무를 확인 한 후에야 확진을 받을 수 있다.
아직 아이는 입원 검사까지는 받지 않은 상태. 확진검사를 받을 수 있는 수치인 3%를 아슬아슬하게 웃돌고 있던 상태였던 것. 하지만 4개월 후에도 성장에 지체를 보이면 입원 검사를 받아보자는 말씀에 이번엔 덜컥 겁이 났던 게 사실이었다.
성장호르몬 치료와 갈등
성장호르몬 결핍이라는 확진이 나오면 보험적용을 받을 수 있어 매일 맞아야 하는 호르몬 주사 비용의 부담을 덜 수는 있다. 하지만 호르몬 결핍이 아닌 일반 저성장일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보험적용이 안되기 때문에 4~5% 경계에 있는 저성장 자녀의 부모들은 갈등이 시작된다. 적게는 한 달에 50~60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대의 비용. 여기에 한번 시작하면 성장이 멈추는 시점까지 꾸준히 맞아야 하는 터라 적어도 5년 이상의 지난한 인내가 필요하다. 성장호르몬 주사 약값 때문에 대출받고, 이혼 위기에 몰렸다는 어느 집 이야기가 결코 남 얘기만이 아닌 현실이 되는 것. 게다가 아이와 엄마의 결의와 대단한 합심이 있지 않고서는 중간에 흐지부지 되기도 십상. 이렇게 되면 아니한 만 못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니 결코 쉽게 시작할 일이 아니다. 덧붙여 우리나라에 성장호르몬 치료가 본격 도입된 것이 오래되지 않아 부모 입장에선 부작용이나 후유증 걱정에서도 자유로울 순 없다.
이런 과정을 잘 알고 있다 보니 선뜻 호르몬주사 치료를 시작하겠노라 의지를 다지지 못한 리포터. 또다시 4개월의 시간을 기다리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숙제를 안게 된 셈이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이와 조심스럽게 얘기를 나눠보았다.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하고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맞아야 할지도 몰라.”
아이는 주사라는 얘기에 얼굴이 금방 어두워졌다. 하지만 일반주사처럼 많이 뾰족하지 않고 도장처럼 찍는 주사라 너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다소나마 안도하는 눈치였다.
4개월 동안 부지런히 커서 5%대가 되면 주사를 맞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는 금방 얼굴빛을 바꾸며 대답했다.
“엄마, 이제부터 밥이랑 반찬도 골고루 먹고, 키 크는 운동도 열심히 할게요.”
아이와 키 크기 다짐(?)을 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지만 키만 키우기 위해 지금의 행복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아 아이와 하루하루 행복해지려 마음을 다잡아 보았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