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산책 - 바람이 순하던 날, 가덕도를 걷다

지역내일 2013-01-25 (수정 2013-01-25 오전 9:39:58)

가덕도 산책
바람이 순하던 날, 가덕도를 걷다


아무런 특색 없이 평범한 여름 방학이었다. 무료한 오후 나절이었을 게다. 같은 과 친구가 보내온 한 통의 편지. ‘아무 데도 당신은 없었습니다’로 시작하는 시가 쓰여 있었다. ‘가덕도에서’라는 제목이었다. 유명한 시도 아니었다. 모르는 시인이었다. 그런데 그 시는 지금도 가슴에 남아 늘 맴돈다.
아무렇지도 않은 여름날, 그 때부터 가덕도는 동경의 섬이 되었다. 그 날 이후로 실지로 가보지는 못했다. 거가대교만 지나갔을 뿐. 과 선배가 가덕도에 가자고 했을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 시였다. 그리고 날이 많이 풀린 주말, 시를 적어 보내줬던 친구를 포함해 여섯 명이 산책을 떠났다.


일본의 전초기지, 외항포에 가다



일본의 전초기지였던 외항포 진지

가덕도는 유인도인 가덕도와 눌차도 연안의 11개 무인도로 이루어져있다. 동선, 성북, 눌차, 천성, 대항 등 5개의 동과 10개의 마을이 있다. 부산시 섬 중 최남단이자 최대의 섬으로 크기가 영도의 1.6배다.
약속 장소에서 출발해 40여 분정도 걸려 가덕도에 도착했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해물정식으로 유명한 식당이었다. 무조건 4인분이 기본이라는 이 집은 14년 만에 가격을 올렸다고 했다. 예약이 아니면 맛보기 힘들다는 이 집의 정식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8000원이라는 가격으로 도무지 계산되기 힘든 음식들이 차려졌고 우리 일행은 놀람 반, 기쁨 반으로 깨끗이 그릇을 비워나갔다. 



가덕도에는 길고양이들이 많았는데 생선이 풍부해서일까, 고양이들의 배가 땅에 끌릴 만큼 포동포동 살이 쪄 있었다. 갈매기들도 어찌나 통통한지 날 수 있을까 의심할 정도였다.
배를 두둑하게 채웠으니 이제 슬슬 산책에 나설 차례였다. 힘들지 않은 곳으로 의견을 모았다. 대항마을 인근 외항포. 언덕을 하나 넘어가야 했다. 외항포는 러일전쟁 때 일본이 전초기지로 사용했던 마을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외항포에 도착했으나 진지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이래서 요새로 활용했나보다. 대략 짐작으로 찾아가니 입구에 ‘사령부발상지지’라는 비가 세워져있다. 외항포 진지에는 당시 사령관이 사용했던 막사와 화약고, 무기고로 사용했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진지 위에는 대나무를 심어 위장해놓았다. 마을에는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우물터도 볼 수 있었다. 일본식 기와로 지은 집도 군데군데 보였다. 마을은 아직 군 소속이라 대충 고쳐서 산다고 한다. 한적한 시골 마을처럼 보였지만 알고 보면 일제시대 이후로도 그리 변한 것 없는 곳이었다.


봄이면 숭어잡이 축제 펼쳐져



숭어잡이로 유명한 대항마을

가덕도를 많이 찾는 이들은 산악회 회원들이다. 대부분 높이 459.4m의 연대봉에 오른다. 정상에 오르면 남해의 섬들과 거제 해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천천히 오르더라도 4시간 정도면 종주할 수 있어 가족이 함께 산행하기에 적당하다.
가덕도 등대 또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가덕도 등대는 근대 서구 건축의 양식·건축재료·의장수법 등이 최초로 사용되었던 건물 중의 하나로 당시에 건립된 여러 등대들이 대부분 원형이 크게 훼손된 데 비해 가덕도 등대는 상당 부분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건축사적으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군사지역이라 사전 견학 신청을 해야 방문할 수 있다.
가덕도는 육지와 연결되면서 축제와 체험활동으로 분주한 섬이 되었다. 특히 봄에 펼쳐지는 대항마을의 숭어잡이 축제는 가장 큰 행사다. 대항마을은 160여 년간 이어져 내려온 전통 어로방식인 ''가덕도 숭어들이''로 유명한 어촌이다.
20여 년 동안 동경의 섬으로 남아있던 가덕도. 다른 섬과 비교해서 그리 새로울 것 없는 풍경이었다. 한적한 어촌, 유유자적 나는 갈매기. 그래도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시’ 때문이다. 평범한 풍경도 이야기가 입혀지면 새롭게 태어난다. 그렇게 그 섬을 걸었다.




이수정 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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