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재수학원 언어 및 논술강사로부터 시작해서 재수학원 원장까지 20년간의 학원생활. 나는 지금 아이들에게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원장의 눈시울을 적시는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목도하며 지난 20년의 나의 삶에 대한 반추에서 이 글을 시작한다.
우리 아이들의 상황 이해하기
우리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이나 문화는 아이들의 의식을 규정짓는 우물이다. 우물 속에 갇힌 개구리에게 우물의 모양은 세상을 보는 틀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우리 아이들은 학교 교육과정에서 또는 가정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큰 목표 안에서 현재의 당면과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누구도 현재 하는 공부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 준 적이 없다. 아이들은 단지 관성적으로 학교에 가고 학원에 가고 집에 온다. 하루 하루의 일상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볼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한다. 아이들의 삶에 변화는 없다. 일상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고 싶은’ 목표의식은 있을 수 없으며 ‘해야만 하는’ 당위만이 존재하게 된다. 재미없는 당위만으로는 성취감이란 있을 수 없다.
사례1
재수학원 원장이다 보니 아이들과 관련된 이러저러한 조사들을 하고 통계들을 만들어 본다. 부천과 인천지역 고등학교의 재수비율을 조사하다가 가슴이 섬뜩해졌다. 부천·인천지역의 일반고 재수비율 20%~30%, 상위권 학교 40~50%, 서울 목동 소재 고등학교 재수비율 50~60%, 강남 소재 고등학교 재수비율 60~80%, 대한민국 특목고 평균적 재수비율 80%.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현대 대한민국 사회의 병폐 중 하나로 부(富)의 대물림을 말한다. 봉건사회에서나 있을 수 있었던 ‘세습’이다. 나는 위의 지역별, 학교별 재수 비율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부를 대물림받기 이전에 이미 문화를 대물림 받고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본다. 부천과 인천의 아이들은 이미 고등학교를 거치며 더 이상의 큰 꿈도, 자신의 삶에 대한 도전도 잃어버린 채 자신의 현실을 숙명으로 받아들여 버린다. 봉건시대 신분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듯이.
이러한 우리 아이들의 현실을 두고 우리의 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사랑하는 내 아이를 위해 부모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해야만 한다.
성적표 바로 보기
우리 아이들은 많은 시험을 보고 자신이 객관화된 숫자들을 받는다. 요즘 생활기록부에 기재되는 숫자나 모의고사, 최종적으로 수능에서 얻게 되는 숫자(성적)들은 모두 상대적인 수치들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본질이 경쟁이니 성취도도 상대적으로 평가된다.
우리 아이들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이 숫자들의 의미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숫자에 따라 우리 아이는 공부를 못해, 옆집 누구는 공부를 잘해 하는 식의 평가는 잘못된 접근이다. 결과적인 접근일 뿐이다. 원인이 생략된 접근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숫자 속에는 아이들의 지금까지의 삶이 담겨있다. 그들의 삶의 크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적은 한 인간으로서 우리 아이의 지금까지의 삶이 객관화된 징표이다. 성적은 우리 아이의 삶이라는 본질이 외화된 현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좋은 학원과 과외 선생님을 찾기 전에 아이의 삶에 대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학원이나 선생님을 찾는 일은 그 다음의 문제이다.
사례2
만약 우리 아이의 성적표가 [성적표1]과 비슷하다면 먼저 아이를 안고 그간 아이가 힘들어했을 과정을 위로해 주어야만 한다. 탐구 성적을 보면 학생은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하지만 언수외는 학습법에 대해 방향을 못 잡고 힘들어 했을 아이의 삶이 보인다. 누군가의 위로나 안내 없이 그 고통을 고스란히 혼자 감내했을 것이다. 이런 아이들과 상담하다 보면 흐르려는 눈물을 참으려 애써야만 한다. [성적표2]는 학생에게 도래할 삶의 크기를 보여준다. 성적에 보이는 학생의 생활은 보통의 학습시간과 학습량만을 채우고 있다. 경쟁사회를 헤쳐 나갈 집중력과 치열함이 없다. 이는 학원에 보내 학습량을 채우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먼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머리로 이해시키려 하기 전에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삶에 대해 얼마나 알겠는가. 부모님의 삶의 경험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해 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변화는 그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새로운 시작
윽박지르는 아버지, 잔소리하는 어머니는 아이를 변화시킬 수 없다. 아이가 변하지 않는다면 성적도 변하지 않을 것이며 학원도 과외도 모두가 무용지물이다. 부모님의 큰 사랑을 말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할 때 아이는 비로소 변화의 첫 걸음을 디딜 수 있다. 말없이, 사랑으로 꼭 안아주는 부모님의 마음이 백 마디의 말보다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큰 힘이다.
부천청솔학원
재수 종합반
원장 유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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