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샘] 손인수 잠일고 교사

진로코치로 교사인생 2막 열다

지역내일 2013-01-22

대여섯 명만 수업을 들고 나머지는 엎드려 자든가 아예 딴 짓을 하는 교실 풍경. 대한민국 고등학교의 현주소다. “벽을 보고 수업하는 느낌이라고 할까. 참 공허해요. 나뿐 아니라 많은 교사들이 상처받죠. ‘내가 아이들한테 도움이 못되는 구나’ 자책하면서요. 교사 인생의 돌파구가 필요했던 셈입니다.” 20여 년간 수학을 가르쳤던 손인수교사는 고심 끝에 2년 전 진로교사로 새 출발을 했다.


‘진로교사’로 변신한 수학교사
 “고3 문과 교실에 들어가면 아예 수학을 덮은 ‘수포자’가 수두룩해요. 학생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더 이상 ‘수학 지식’을 통해서가는 아니라 판단했죠. 공부 보다 좀 더 근원적인 아이들의 ‘인생 설계’부터 돕고 싶었어요.” 손 교사는 담백하게 설명한다.
 600시간 연수를 받고 진로교사로 변신한 그는 교직경력 21년차의 ‘신참내기 진로교사’다. 커리어 코치로서 중요한 덕목은 세상의 흐름을 포착할 줄 아는 안목. 학교 울타리 속에서만 지내다 보니 ‘세상을 읽는 촉’이 어느새 뭉툭해졌다. 이 때문에 그는 방학만 되면 금융, 경제, 문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수를 찾아다니며 ‘세상 공부’하느라 바쁘다.
 요즘엔 현대문학 공부에 흠뻑 빠져 지낸다. 수학과 출신이라 인문학에 늘 갈증을 느꼈던 터라 소설, 시, 평론 같은 새로운 분야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진로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학생들은 각양각색입니다. 현명한 가이드가 되려면 교사인 나부터 공부해야죠.”
 그의 책상 한켠에는 논어 한 구절이 붙어있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지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 공부가 게을러질 때마다 속으로 되뇌며 마음을 다잡는다.
 “내 마음수련을 위해 붙인 경구가 의외의 효과를 발휘하기도 해요. 우리 반 아이들, 상담 받으러 온 학생들이 관심 있게 보며 속뜻을 물어봐요. 교실에서 말하면 잔소리고 흘려들었을 텐데 교무실이란 공간에 붙여놓으니 아이들이 귀담아 듣더군요.”


진로특강, 방과후 프로그램 다양하게 시도 
 잠실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위치한 잠일고는 2012년 문을 연 신설학교로 송파구 유일의 혁신고교다. 1학년 학생들 밖에 없어 전교생이 210여명 남짓이라 가족 같은 분위기다.  “학생, 학부모 모두 진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반면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뭔지 장래 직업으로 뭘 택하면 좋을지 잘 모르는 학생들이 대다수죠. 고1은 상대적으로 입시 부담이 덜하기 때문에 지난 1년 동안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었어요.”
 진로?적성 검사지 해석부터 자기소개서 쓰기, 에듀팟 활용법, 논술 준비 노하우, 입학사정관제 준비법 등을 그동안 차근차근 진행해 왔다. “자기소개서를 고3 입시를 코앞에 두고 준비하면 마음만 급할 뿐 잘 표현이 안돼요. 1학년 때부터 작성법을 알려준 뒤 직접 써보도록 유도하죠. 외부 전문 강사를 초빙해 특강을 열고 잘 쓴 학생들은 따로 시상도 해요. 여러 번 반복 훈련을 통해 아이들이 ‘감’을 잡을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분당에 있는 직업체험 교육장인 잡월드를 견학할 때는 별도의 특강을 마련했다. “학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강사를 고심하며 찾다 켄트김을 발견했죠. 부모 이혼, 가난 등 불우한 환경을 극복, 하버드를 졸업했고 지금도 자신의 삶을 계속 개척해 나가는 젊은이죠. 게다가 잠실에서 고교를 다녔어요. 어렵게 섭외했는데 학생들의 호응이 좋았어요. 켄트김의 빼어난 강의 솜씨와 랩 공연까지 곁들여지니까 아이들이 몰입하더군요. 흡족했죠.”
 자신감이 붙은 손 교사는 올해도 다양한 진로 특강을 기획중이다. 학생들의 진로 결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 ‘1일 직업 체험’도 열 계획이다. “철학이 담긴 진로교육을 꿈꾸고 있습니다. 신설 학교인 탓에 시행착오는 있지만 진로 교육의 기본 틀을 내 손을 만들어 나간다는 보람이 커요.”


‘철학 담긴 진로 교육’ 꿈꾸다
 개인 상담을 자주 하면서 학생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깊어졌다. “요즘 아이들 자기주장이 강하죠.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표현이 서툴며 배려심도 부족하죠. 반면에 일대일로 만나 조근조근 이야기 나눠보면 그냥 아이일 뿐이에요. 어투, 행동거지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되고 아이가 말하고자 하는 속뜻을 세심하게 살펴야 해요.”
 미래의 진로 때문에 미로 속을 헤매는 아이들을 위해 그가 할 일은 함께 고민해 주는 것. “말을 많이 들어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대화하는 과정 속에서 아이 머릿속에 엉클어져 있는 생각이 정리되고 자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겨요. 그런 다음에는 커리어넷 사이트에서 관심 분야 직업들을 검색하는 것을 도와주죠.” 이런 과정을 통해 문제아 소리 듣던 말썽꾸러기 한 남학생은 ‘셰프’란 꿈을 갖게 되었고 현재 요리학원에 등록,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게다가 영어공부까지 새롭게 시작했다.
 “수학교사 시절보다 지금이 훨씬 재미있어요. 그 원동력은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내가 도울 수 있다는 점 때문이죠. 교육은 점점 티칭이 아닌 코칭으로 바뀌고 있어요. 유능한 코치가 되기 위해 나 스스로 늘 노력해야겠죠.”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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