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혈의 사전적 의미는 ‘피가 몸 안의 일정한 곳에 머물러서 생긴 병증으로 외부적 손상, 경폐(經閉), 한사(寒邪)로 기(氣)가 몰리거나 혈열(血熱) 등으로 인해 생긴다.’라고 되어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외적인 충격 즉, 교통사고, 폭행, 산업재해, 낙상, 운동 중 부상 등에 의해 흔히 발생한다.
무엇이든 자기 자리에 있어야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으며 자리를 이탈하면 문제가 되듯이, 혈액도 생리적으로 마땅히 있어야할 위치를 벗어나 존재하면 병리적 산물이 되어 병증을 일으키며 의학적 처리의 대상이 된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을 예로 들자면 피하출혈 즉, 멍과 혈종 등을 들 수 있다.
어혈은 발생 즉시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호전정도도 좋은 편이나, 반대로 방치하면 고질이 되기 쉬운 질환이다. 타박이나 근육 손상에 의해 생기는 혈종은 혈액이 혈관 밖으로 새어나와 종괴를 이루는 질환인데, 이 역시 적극적으로 치료하면 완화 소실되기 쉬운데 방치하면 종괴의 형태로 남아 이후엔 치료하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기까지 한다.
처방 중에 당귀수산(當歸鬚散)이라는 처방이 있다. 타박 등에 의한 질환에 사용한 처방인데, 예전의 태형 즉, 곤장으로 인한 후유증에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혈약(血藥)의 대표인 당귀(當歸)가 처방됨은 물론, 근래에도 어혈 치료에 필수 약인 도인(桃仁), 홍화(紅花) 등이 함께 처방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약을 달일 때 주수상반전(酒水相半煎)이라고 하여 물과 술을 절반씩 넣고 달이도록 되어있어 약의 기운을 더욱 빠르게 이동시키고 효능을 강화한 것을 알 수 있다. 술은 그 기운이 빠르다고 되어있어 약효가 신속히 나타나도록 할 뿐 아니라, 약을 끓일 때 유효성분이 더 많이 용출되도록 하는 효능도 있다. 물에 용출되는 성분과 알코올에 용출되는 성분이 다르기 때문에, 물로만 끓일 때와 약효 면에서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만큼 응급 어혈엔 보통 처방과 차이를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어혈은 2차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통증이나 질병의 원인 중에 통하지 않는 것과 영양이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한의학에서는 ‘불통즉통(不通則痛) 불영즉통(不營則痛)’이라 하였다. 어혈로 인해 막히면 막힌 지점의 후방은 통하지 않으니, 고여서 문제가 되고 막힌 지점 이후는 영양이 전달되지 않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교통흐름에서 사고로 인해 후방은 차가 막혀서 고생이지만, 전방은 차량이 도착하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명유지의 필수요소인 혈(血)도 결국 자기자리를 벗어나 기능을 잃게 되면 그 어떤 독보다도 세균보다도 무서운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사소한 충돌이나 사고로 인한 통증도 무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글 : 정경용 원장 (청주시한의사협회 홍보위원, 정경용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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