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 소장이 꼽은 올해의 핫트렌드 ‘거품청년’

중년들 ‘청년이라는 거죽’ 뒤집어쓰고 고군분투하다

지역내일 2013-01-15 (수정 2013-01-15 오후 2:29:57)

아내가 사다주는 대로 옷을 입었던 이인근(가명 48세 잠실동)씨는 40대 중반이 넘어서면서 까다롭게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펑퍼짐한 아저씨 스타일’은 질색한다. “외모가 명함인 시대죠. 은연중에 나이 들어 보이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얼굴 주름살, 옷차림에 자꾸 신경이 쓰입니다.”
고교생, 초등생 두 자녀를 둔 문영철(가명 47세 가양동)씨는 스트레스를 캠핑으로 푼다. “40대 후반에게 직장은 전쟁터죠. 집이라고 편한 공간도 아니에요. 아이 시험 기간 중엔 아빠가 집에 없는 게 도와주는 거라네요. 2년 전부터 취미 삼아 시작한 캠핑은 나를 추스르는 버팀목입니다.”  
‘대한민국 중산층의 기준은? 부채 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월 급여 500만 원 이상, 자가용은 2000cc급 중형차, 예금액 잔고 1억 원 이상, 해외여행 1년에 한차례 이상 다닐 것’ 한동안 SNS에서 화제를 모았던 글이다. 모두 ‘돈’과 연관된 씁쓸한 기준들이다.


‘꽃중년’으로 품격을 높여라
불안과 모색의 시대인 2013년. 특히 ‘아파도 울지 못하니까 중년이다’고 자조하는 40~50대 남자들의 내상이 꽤 깊다. 이런 가운데 한국트렌드연구소는 올해의 핫트렌드로 중장년층 남성들의 불안 심리를 포착해 ‘거품 청년’이란 키워드를 발표했다. 청년이라는 거죽을 뒤집어쓰려는 중년 남성들의 분투기를 익살스럽게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거품 청년은 40대 중반 이후 갱년기를 지난 사람들과 60대까지의 남성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체력도 떨어지고 심리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중이다. 하지만 ‘꽃중년’의 품격 있는 동안 외모를 갖고 싶어한다.  
 “90년대 이후 권력 중심이 생산자에서 소비자에게 넘어왔습니다. 쇼핑과 뮤지컬, 전시 등 문화시장은 물론 자동차, 집 계약 같은 가정 경제의 중요 결정권까지 여성이 좌지우지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동안 돈 버는 데만 몰두했던 중장년층 남성들이 소비시장의 신흥 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경기 불황이라지만 아직까지 지갑이 가장 두툼한 세대니까요.”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 소장의 설명이다.
세계 남성 스킨케어 시장에서 한국은 매출 규모 1위(2010년 기준. 유로모니터 집계)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화장품 브랜드마다 남성용 제품군을 스킨, 로션에서 에센스 같은 기능성 제품으로 확대하는 추세다.
이처럼 거품청년들은 소비시장에서 여성에 비해 경시되어왔던 존재감의 틀을 벗고 안티에이징, 남성 갱년기 전문병원 등 의료 부문과 노후를 염두에 둔 취미?레저 시장에서 ‘소비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 이면에는 ‘외형적인 젊음’ 뿐만 아니라 도전을 즐기는 ‘청년 정신의 삶’을 지향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


‘거품청년’ 삶의 모델 1위 최민수, 2위 이경규
한국트렌드연구소는 지난 12월 30~60대 남성 500명을 대상으로 삶의 모델이 되는 연예인을 리서치했다. 조사 결과 배우 최민수가 1위(17%), 이경규가 2위(16%)에 선정되었다. 배우 김갑수, 가수 이승환이 공동 3위(15%)를 차지했다. 최민수는 검도, 바이크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모습이, 이경규는 50대인데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현역 이미지’가 중장년 남성들의 호응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디지털화 ? 고령화 시대 중장년층의 고초
반면에 베이비붐 세대로 891만 명이라는 가장 많은 인구층을 구성하고 있는 45세~60세 남성들은 디지털?고령화 시대에 돌입하면서 ‘피로감’을 가장 많이 느끼는 세대이기도 하다.
“고용 없는 성장의 원인이 디지털화입니다. 산업혁명 시절 당시 수공업 노동자들의 쇼크를 지금 중장년층이 똑같이 느끼고 있는 셈이죠. 전문직종인 의사 세계에서 조차 외과수술에 로봇의 영역이 넓어지는 등 디지털화가 노동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테크놀로지가 노동시장을 바꿔 사람들은 일자리에서 밀려나는데 수명은 늘고 있죠.” 김 소장이 덧붙인다.
돈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인 40~50대에 경제적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절박한 가장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개개인이 해법을 찾기 쉽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도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도입 등 부분적인 처방 외에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민이 크다.
이런 가운데 김 소장은 거품청년 세대들의 연대를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각자의 재능을 모아 서로 코치가 되어주며 집단지성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남성들이 생겨날 것이라 봅니다. 지금까지의 관 주도는 한계에 부딪혔고 자발적인 지역 커뮤니티의 활동이 어떤 식으로든 커지지 않을까요.”
 <한국인 트렌드>, <트렌드 워칭> 등의 책을 펴낸 김 소장은 20년간 대한민국의 트렌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이 분야 전문가로 매년 ‘세상을 바꿀 핫트렌드 10’을 선정, 발표하고 있다. “올해 한국 사회는 저성장, 빈부격차, 세대갈등 등 아슬아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죠. 그래도 이런 불안 속에 기회는 분명 있습니다. 세상을 세밀하게 스캐닝하며 팩트(fact)에서 팩터(factor)를 찾아내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나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할 줄 알면 그 기회가 보이겠죠.” 그는 덧붙인다.

한국트렌드연구소가 뽑은 2013 핫트렌드 10 
거품청년 _ 청년의 삶으로 돌아가려는 중장년층의 고초
스마트 에이전트 _ 쇼핑시간, 공간, 절차를 스마트하게 줄여라
하이사이클링 _ 재활용, 리폼, DIY 시장의 무한변신
이미지 라이징 _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보듯 비주얼 커뮤니케이션으로 권력 탄생
지능형 아카이브 _ 빅데이터, GPS, 스마트폰어플로 제2의 백과사전 시대를 열다
프리 크라임 _ 범죄와 사고를 미리 예방하는 안전망 시스템
클린 리워드 _ 착한 일을 할수록 보상도 커진다.
가격 아닌 가격 _ 누구에게나 오픈된 정보, 소비자에게 가격 권력이 넘어가다
시민참여도시 _ 국가가 아닌 도시 경쟁의 시대에 시민이 도시 발전을 주도한다.
핫아시안 _ 가장 핫한 미래 소비 세대. 아시아의 10대들을 주목하라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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