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쪼들려 사는 여성들 속마음은…

대선후보에 묻는다 … “여성이 행복한 세상 가능한가?”

현실은 ‘화병 유발하는 세상’ … 이제는 정책으로 고민할 때

지역내일 2012-11-30 (수정 2012-11-30 오후 4:54:10)

두부 한 모도 아껴 먹었다. 자식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행복이라 여겼다. 사회에서 인정받으려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앞만 보고 달렸다. 남한테 피해 안주고 열심히 살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믿음을 안고 살았다.
죄다 헛된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통장 잔고는 줄어갔다. 그나마 은행 빚이라도 없으면 다행이었다.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성실하게 사는 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에게도 털어놓고 말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속마음을 들어봤다.

전업주부 - 서은경(30대 후반·아산시 도고면)씨
“남편과 함께 하는 저녁이 그렇게 큰 꿈인가요?”

토요일 오전, 자는 남편을 두고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진료를 다 받고 나오는데 울컥했다. 무작정 고속도로를 타고 친정으로 내달렸다.
결혼해 두 아이를 낳고 전업 주부로 산 지 10년. 나름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사는 게 행복하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행복 속에 남편은 없었다.
주중에 아이들은 거의 남편의 얼굴을 못 보고 잠이 든다. 남편은 토요일이나 일요일 하루는 출근을 한다. 그나마 출근 안 하고 같이 있는 하루도 남편은 쉬어야 한다며 소파에 앉아 자다 깨다 하며 TV리모컨을 끼고 있기 일쑤다. 주말에 아이가 아파도 혼자 병원에 데려가곤 했고 남편은 그걸 당연히 여겨왔다. 생각해보면 결혼 후 10년 동안 늘 남편에게 휴식을 양보했다. 
내 바람은 작고 소박하다. 평일 저녁 남편이 집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가족들과 시간을 나누는 것. 출근시간이 정해져 있듯 퇴근시간도 합리적으로 사회 분위기로 정착되었으면 한다. 직장이나 사회 제도로 뒷받침 할 것이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정치는 잘 모르겠다. 그저 집이 남편의 일방적 쉼터가 아니라 가족이 함께 힘을 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할 뿐이다. 어느 정치인의 ‘저녁이 있는 삶’이란 구호가 가슴 찡하게 와 닿았다. 

프리랜서 - 김영아(40대 초반·아산시 배방읍)씨
“일을 계속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늘 고민”

아홉 살 네 살 두 아이의 엄마로 프리랜서로 일한다. 정시에 출·퇴근하는 직장맘들에 비하면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빠듯하게 돌아가는 일상이다 보니 일하랴 살림하랴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남편이 소파에 앉아 스마트 폰을 만지작거리며 쉴 때는 같이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하던 일이 마무리 되지 않을 때는 아이들을 TV 앞으로 몰아놓고 죄의식을 느낀다.
육아에 전념하며 10년 가까이 일을 쉬는 동안 보수는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남편 월급과는 비교도 안 되는 돈벌이를 하면서 남편한테 당당하게 가사일이나 육아를 분담하자고 말할 형편이 아니다. 일은 일대로 해야 하고 집은 제대로 정리 안 돼 있고 아이들은 징징거릴 때 ‘내가 지금 뭐하나,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을 수십 번도 더 하게 된다.
‘아이가 좀 더 크면 다시 일을 시작할까’ 생각도 하지만 그게 언제인지 누구도 정답을 말해주지 않는다. 다시 사회로 나가려고 할 때 받아줄까도 자신이 없다.
‘워킹맘’이라는 단어는 있지만 ‘워킹대디’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엄마는 일을 해도 엄마의 역할을 다 해내야 한다는 사회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엄마로써의 역할을 잘 하면서 일도 잘 할 수 있는, 그런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가능할까. 모두에게 묻고 싶다. 

여성장애인 - 박혜경(39·천안시 입장면)씨
“여섯 살 아이가 동생 업고 뛰어야 하는 세상”

5년 전 한밤중이었다. 작은 아이가 고열에 시달리며 경기를 일으켰다.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가야 하는데, 나도 남편도 장애인이라 아이를 업을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여섯 살 큰 애가 네 살 동생을 업고 응급실로 뛰었다. 깔딱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아이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여성장애인은 아이 목욕도 제대로 시킬 수 없다. 비장애 여성들도 처음 아이를 대할 때 어렵다. 장애가 있는 엄마들은 몸이 자유롭지 못하니 더욱 심하다.
출산을 하면 등급에 따라 100~120만원을 지원받는다. 그 비용으로 산후도우미를 요청하라고 하지만 여성장애인은 출산 때 대부분 수술을 한다. 동네병원에서는 받기를 꺼려 대학병원에 가기 때문에 보조금은 모두 병원비로 사용한다.
요즘은 아이의 사춘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걱정이다. 아이에게 엄마의 상황을 늘 이야기하고 아이도 이해하지만, 잘 극복할지 모르겠다. 부모의 장애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비장애 가정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많은 장애인 가정의 자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나 학교에 엄마가 가야 할 때 도움을 받고, 형 또는 친구들과 상시 교류한다면 아이가 사춘기도 작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엄마로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더불어 여성장애인의 건강을 책임질 전문병원을 적어도 도에 하나씩은 마련할 것을 바란다. 

노인 - 김정자(가명·69세)
“내 손으로 자식 셋 다 키웠는데…”

4세, 2세 외손주들 봐주느라 맞벌이하는 딸 내외와 산다. 남편은 고향집에서 농사를 짓고 있어 두 집 살림을 한다. 딸이 연구원이라 그만 두게 하기 아까워 육아를 자청했다.
첫째 손주는 올해부터 어린이집에 다닌다. 아침에 갓난쟁이 데리고 큰놈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것부터 전쟁이다. 눈물바람인 큰놈 떼놓고 잠깐 살림 좀 살고 나면 금방 오후시간이다. 큰놈 어린이집서 돌아오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내가 애들 봐준다고 했지만 너무 힘에 부쳐 더는 못할 것 같다. 그나마 딸 내외가 바짝 벌어야할 때라 눌러 앉아있는 상황이다. 나는 내 손으로 자식 셋을 키웠는데, 요즘은 여자도 벌어야 애를 키울 수 있다니 요지경 속이다.
아파트생활 못하겠다며 고향집에 남은 남편이 한 번씩 병원나들이라도 할라치면 그것도 내 몫이다. 서울 사는 아들네도 제 생활이 있는데 내가 딸네 애들 봐주면서 ‘아버지 병원 좀 모시고 다녀와라’ 할 수 없지 않나. 토요일에 내가 영감 모시고 병원 다닌다. 나도 허리고 무릎이고 성한 데가 없는데 말이다.
아직 큰 병 걸려 돈 걱정하지 않으니 다행이다. 친구들 셋에 하나는 암으로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데 아주 못할 짓이더라. 나라에 바라는 것? 그런 것 없다. 애들 어릴 때 어미가 애 키우고 애들 다 키우고 나서는 허리 좀 뻗고 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미혼 - 이서연(가명·26세)
“여성용 기숙사 아파트 있으면…”

직장생활 2년차 미혼이다. 직장 근처에서 자취한다. 대학졸업반 때 진로를 결정했고 사회복지관련 직장을 잡았다. 관심 분야 일이라 성취감도 있고 만족하는 편이다. 급여가 적은 게 흠이지만 알고 시작한 일이라 문제되지 않는다.
친구들은 여전히 취업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친구들도 정규직 자리를 향해 딴 맘 품는 것이 다반사다. 대학등록금 대출도 다 갚지 못한 처지들이라 처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나마 부모님 덕에 빚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최근 직장 선배 하나가 육아 때문에 사표를 내더라. 결혼이 여자의 일에 큰 변화 요건이란 걸 체감했다. 학교에서 남자들과 동등하게 경쟁했지만 사회생활은 시작점부터 차이가 있다. 남자와 여자 고유의 다른 점을 인정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쉽다. 군대가산점처럼 출산가산점 제도라도 도입해 모성과 가정을 보호하며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기 바란다.
오랜 자취생활이 익숙하지만, 요즘 흉흉한 뉴스를 들으면 무섭다. 혼자 사는 여성을 위한 여경이나 여소방관 호출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 위급한 일에 도움을 청하면 바로 달려올 믿을 만한 사람을 연결, 관리해 주는 것이다. 또 직장이나 학교에서 간단한 호신술이나 가스총 사용법 등을 가르쳐 주면 마음이라도 든든하겠다. 아니면 지역마다 여성용 기숙사 아파트를 지정해 적은 임대료로 안전하게 지내고 그 안에서 식사도 해결하면 좋겠다. 

싱글맘 - 정지영(가명·40세)씨
“싱글맘에게 주홍글씨 새기지 마라”

바람을 피우고 생활비도 주지 않고 툭하면 주사를 일삼는 남편 밑에서 10년을 참고 살았다. 양육권도 남자가 우선이었다. 아이들을 안 줄까봐 먼저 이혼하자는 말도 하지 못했다. 이혼할 때 양육비는커녕 위자료도 받지 못했다.
싱글맘들은 혼자서 보육과 생계를 다 책임져야 한다. 아이가 어릴 땐 맘 놓고 맡길 보육시설이 없어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아이가 크면 한국의 무서운 교육비는 가난한 싱글맘들을 노래방으로 내몰기 충분하다.
약간의 국가 지원을 받기 위해 떼야 할 서류가 정말 많다. 학교에서 우리 가정형편을 다 알아야 하고 우리 아이의 생활은 다 까발려져야 한다. 전액 지원해주지도 않는 몇 만원을 받기 위해 아이의 자존심은 무너진다. 내 아이를 담보로 한 지원은 차라리 포기하는 게 나았다.
싱글맘 미혼모들을 위해 자비를 털어 어렵게 나눔방 같은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라에서 그런 기관을 더 만들거나 지원을 늘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가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프랑스처럼 나라에서 양육비를 주거나 국가가 보육시스템을 책임지는 형태로 바꿔야 한다.
대선후보들이 유행처럼 약자들을 이용하지 않기를 당부한다. 진심이 없다면 우리의 처우를 개선시키겠다는 말은 헛구호에 불과하다.
남자가 잘못해서 이혼해도 여자의 잘못으로 옮아가는 게 한국이다. 싱글맘에게 주홍글씨를 새기지 마라. 싱글맘은 죄인이 아니다. 

김나영 남궁윤선 노준희 지남주 리포터 biskette@naver.com

-. 고1 중3 초2 엄마다. 교육비 때문에 일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아이들 커가는 게 예쁘고 행복하지만 스스로에 대한 투자가 너무 없어 불안할 때가 있다.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기특하지만 원하는 영어 수학 과외 두 과목만 35만원이다. 사교육 문제 해결해야 한다. - 김윤주(40대 중반·아산시 배방읍)

-. 요즘은 아이를 출산하는데도 많은 돈이 들어간다. 출산비용 지급과 함께 산후조리비용도 보험혜택을 줘야 한다. 아이 봐 줄 사람 없어 안 낳은 현실이다. 특히 도시에만 병원이 집중돼 있어 외곽지역에 사는 이들은 병원 한번 가기도 힘들다. - 이정인(37·아산시 송악면)

-. 아이를 보면 엄마로써 행복하다. 하지만 가정과 일의 양립은 역시 힘들다. 대기업 퇴직 후 3년 만에 다시 직장 생활을 하는데 당시 직장보육시설이 잘 되어있었다면 일을 그만 뒀을까. 여성이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인식이 많이 변화해야 한다. - 안영희(30대 초반·아산시 용화동)

-. 초6 초2 엄마다. 이번 여름 태풍 때문에 학교가 휴업했을 때 난감했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에게는 방학도 숙제다. 안식월이나 육아 휴직 개념으로 아이들이 쉴 때 엄마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취업시 군대처럼 출산 육아에도 가산점을 부과하면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을까. - 구미영(40대 중반·아산시 송악면)

-.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 향상이 필요하다. 보육문제 부모봉양을 국가사회가 같이해야 한다. 아직도 보육과 부모봉양을 여자만 해야 할 일로 인식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비난의 화살을 여자에게 돌린다. 효부상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효자상을 주는 게 맞다. - 이혜상(45·아산시 용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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