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법(秘法)은 없다’ 필자는 전국의 가장 우수한 수험생집단이 모인다는 한 재수종합학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전교에서 1등만 했다는 아이들을 비롯해 공부의 세계는 알만큼 안다는 아이들이라 입시 실패에 대한 좌절과 상처도 크고 깊다. 그럴듯한 비법을 내놓지 않으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딴 공부를 하거나 쓰러져 자버릴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과의 첫 시간. 나는 언제나 칠판에 커다란 글씨로 ‘수능 국어를 정복하는 비법=없다’라고 쓴 다음 ‘인생에도, 수험생활에도, 물론 국어를 공부하는 데에도 비법은 없다’라고 잘라 말해준다. 신기한 것은 비법이 넘쳐나는 교육 시장에서 자라난 아이들과 나의 교감이 바로 그 순간 지체 없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직한 노력 없이 얄팍한 기술과 잔머리를 굴리는 훈련에 의존한 그간의 임기응변식 학습이 본인들을 땅에 넘어지게 했다는 것을….
공부의 시작은 겸손(謙遜)이다.
다음으로 나는 ‘땅에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한다’는 이문재 시인의 글귀를 아이들에게 적어주며 묻는다. ‘땅에 넘어진 사람이 그 땅을 짚고 일어서기 위해 제일 먼저 할 일은?’ 아이들은 다양한 대답을 내놓고 아주 가끔은 정답이 나오기도 한다. 정답은 ‘땅에 넘어진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이다. 누구든 흔들림 없는 만점이 나오기 전이라면, ‘내가 아직 부족하구나’하고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실력은 충분한데, 늘 실수를 하기 때문에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겸손하지 못한 말이다. 자신이 땅에 넘어진 사실조차 인정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 진흙탕에서 두 발의 힘으로 걸어 나올 수 있겠는가.
철저하게 자신을 분석해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굳건히 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제 진정한 공부가 시작될 수 있다. 공부의 첫걸음은 ‘자기를 아는’ 것이다. 최근 5 ~7 개년의 기출을 진지하게 풀며 자신이 부족한 지점을 철저하게 가려내야 한다. 글에 대한 독해력 자체가 문제인지, 특정 유형의 문제 유형에 약한 것인지, 낯선 작품에 접근할 수 있는 전략이 없는 것인지, 교과서 상의 기본 개념에 대한 정리와 학습이 부족한 것인지. 기출은 자신을 분석할 수 있는 기준이며 틀이다. 사람마다 짚고 일어서야 할 땅의 모양과 상태가 다 다르다. 자기가 넘어져 있는 땅을 짚어야만 일어설 수 있는 것이지, 엉뚱한 땅을 짚으려 한다면 백날 노력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먼저 도끼날을 갈아야 한다.
부족한 지점을 극복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많은 양의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무딘 도끼날로 나무를 베겠다고 종일 노력하는 나무꾼과 다를 것이 없는 태도다. 일단, 모든 공을 들여 푸르고 날렵한 도끼날을 만들어내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지문 패턴과 문제 유형의 진화 양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수능에 최적화된 각자의 도끼날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한다. 수업시간은 도끼날을 가는 시간이다. 깊고, 정확하고, 명료하게 시험을 이해하고 당사자와 소통하며 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선생님의 수업을 만나야 한다.
오답을 통해 성장하라.
도끼가 훌륭해도 나무를 잘 벨 수 있는 몸의 근육을 키우고 자기에게 맞는 효과적인 몸놀림을 훈련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매일 일정량과 시간을 정해놓고 공부해야 하며, 특히 오답을 소중히 처리해야 한다. 베어지지 않는 나무라고 쉽게 포기하거나 대강 도끼만 대어놓고 마무리를 하지 않은 채 넘어가면 안 된다. 쉽게 베어지는 나무만을 공략한다면, 끝없이 아는 것만 확인하며 안심하는 스타일의 나무꾼인 것이다. ‘모르는 것을 넘어서는 공부’를 해야 한다. 집요하고 철저하게 오답을 낸 이유를 들여다보고, 넘어서야 할 지점을 찾고, 그리고 극복해낼 때, 놓치고 있던 점수들이 내 것이 된다. 이 작업은 상위권일수록 해내기 어렵다. ‘넘어서야 할 지점’이 분명히 있으나, 쉽게 찾아지지는 않는 것이 상위권 학생들의 고충인 법. 매일의 인내 성실함 그리고 집요함의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비법(秘法)’은 있다
비법을 말해준다는 제목에 혹했으나, 비법다운 비법은 하나도 없는 글에 혹시 허무를 느끼실 분도 있지 않을까. 말하려 하지 않았던 ‘진정한 비법’을 공개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첫째, 매일 열심히 하기(천재도 매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다) 둘째, 제대로 하기(대강대강 넘어가지 말기. 집요하게 묻고 철저하게 이해하기) 셋째, 깊은 물처럼 고요해지기(담담하게 집중된 마음만이 자신의 부족한 지점을 발견하고 넘어서게 해준다)
박상희 국어강사
정면돌파학원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
서울대 대학원
현) 강남대성학원
강의 만족도 평가 3년 연속 최우수강사
현) EBSi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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