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교과서여행⑪
담양에서 대숲의 소리를 듣다
출발 때까지 또 비와 함께였다. 이제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다. 다행히 담양에 도착할 때쯤이면 갠다는 정보에 그나마 안도하며 먼 길을 떠났다. 교과서 여행의 초반이 역사 기행이었다면 여정의 끝을 바라보는 요즘은 ‘자연과 인간’에 초점이 맞춰진 여행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도 그다지 감흥이 없는 아이들의 감수성(?)만 아니면 참으로 좋은 곳을 두루 다니는 일정이었다. 아이들에게 바람에 댓잎파리 스치는 소리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갈까. 과연 선조들의 풍류를 조금이라도 이해할까. 무덤덤한 아이들과 함께한 담양은 가을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맑고 깨끗한 동산 소쇄원
담양에 도착해 먼저 찾은 곳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소쇄원’. 맑을 소(瀟), 깨끗할 쇄(灑), 동산 원(園)이라는 소쇄원은 인품이 맑고 깨끗해 속기가 없는 사람들이 사는 동산이라는 뜻이란다. 입구에 들어서자 대숲이 길을 내어 준다. 바람이 불자 숲은 솨아~하는 맑은 소리로 답한다. 댓잎이 서걱이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청량하다.
소쇄원은 양산보가 1530년경에 만든 별서(別墅)원림이다. 별서란 선비들이 세속을 떠나 자연에 귀의하여 은거생활을 하기 위한 곳이고 원림은 교외에서 동산과 숲의 자연스런 상태를 그대로 조경대상으로 삼아 적절한 위치에 인공적인 조경을 삼가면서 더불어 집과 정자를 배치한 것으로 인공적인 멋을 살린 정원과 대비되는 말이다. 멋스러운 이름을 가진 정자와 건축물들이 소쇄원에 들어서 있다. 겨울에도 볕이 잘 들어서 붙여졌다는 ‘애양단’을 시작으로 자그마한 다리를 건너 들어갔다.
제월당은 주인이 살면서 독서하는 곳이었단다. 당호인 제월(霽月)은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라는 낭만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광풍각(光風閣)은 소쇄원의 하단에 있는 별당으로 손님이 머무는 곳이었다. ‘비 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으로 손님을 극진히 모시고자 했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칭호란다. 이름 하나하나에서 선비들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아무래도 스산한 11월이어서인지 봄여름겨울의 풍경에 못 미친다는 평. 사계절 다 제 멋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늦가을의 정취는 아쉬운감이 있다.
한국가사문학관·대나무박물관
가사는 고려 말에 발생하고 조선 초기 사대부계층에 의해 확고한 문학 양식으로 자리 잡아 전해 내려온 문학의 한 갈래다. 형식상 4음보(3·4조)의 율문이며, 내용상 수필적 산문인 가사는 산문과 율문의 중간적 형태로 조선조의 대표적인 문학 형식이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외운 송강 정철이 대표적인 문인이다. 담양군에서는 이 같은 가사문학 관련 문화 유산의 전승·보전과 현대적 계승·발전을 위해 한국가사문학관을 건립했다. 전시품으로는 가사문학 자료를 비롯하여 송순의 면앙집과 정철의 송강집 및 친필 유묵 등 귀중한 유물이 있다.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에는 대나무박물관이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대나무의 성장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대나무의 종류와 담양지역의 대나무 분포 현황, 대나무의 이용 등에 관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에는 옛 선조들이 만들고 썼던 죽제품을 전시하고 있다. 제3전시실에서는 실생활에 주로 쓰였던 죽부인 등 여름용품과 각종 무기류, 장신구 등을 볼 수 있다. 대나무로 만든 다양한 소품들도 눈길을 끌었다. 박물관밖에는 소규모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한가롭게 둘러보기 좋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담양에는 대나무만큼이나 유명한 나무길이 있다. 담양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초록의 싱그러움을 대신해 가을을 머금은 갈색빛으로 물들어있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자동차길이었던 이 곳에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흙길을 조성해놓았다. 그리고 달라진 점은 입장료를 받는다는 사실. 세상에나 가로수를 구경하는데 요금을 내라니. 살짝 민망한 행정이다 싶었지만 어쩌랴. 멋들어진 가로수를 찬찬히 제대로 감상하시라고 벤치를 만들고 오두막을 지어놓았다. 걷다보면 입장료 생각 안날만큼 운치 있는 길이기는 하다. 가을의 애잔함이 절로 느껴지기도 했고. “나무가 많아 상쾌했다”는 아이의 한 줄 평을 듣기도 했고.
대나무 향기 그윽한 죽녹원
6년 만에 찾은 죽녹원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빼곡하게 들어선 대나무숲 사이로 걸었다. 죽림욕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는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철학자의 길 등 8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조용히 명상하듯 걷다보면 몸과 마음이 깨끗하게 치유될 듯도 했으나 아이들은 여지없이 뛰어다니고 엄마들은 언제나 그랬듯 수다로 걸음걸음을 채웠다.
스산한 11월의 가운데서도 초록빛을 잃지 않는 대나무. 바람이 불 때마다 댓잎이 사각거리는 소리는 걷는 내내 마음을 간지럽혔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산책하듯 돌아본 담양은 힐링의 도시였다.
info.
담양에 가면 ‘관방제림’에도 들러보자. 담양읍을 감돌아 흐르는 담양천 북쪽 제방에 조성되어 있다. 푸조나무, 팽나무, 벚나무, 갈참나무 등 420여 그루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어 호젓한 시골길의 정취를 맘껏 즐길 수 있다. 인근에 들어서 있는 국수집도 맛집으로 이름나있다.
이수정 리포터 cccc09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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