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인] 영동일고 3학년 황호현

내 재능은 국영수가 아닌 발명

지역내일 2012-12-18

“내게 주어진 7분간의 면접에 모든 걸 걸었죠. 두 명의 면접관 앞에서 내 발명품의 원리, 실용화 가능성을 조목조목 이야기하며 대화를 리드해 갔어요.” 입학사정관제 전형으로 한양대 기계공학과에 합격한 황호현군. 올해 영동일고 고3 교실에 파란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독학하며 발명, 입학사정관제로 합격
반 친구, 교사들조차 그가 발명에 빠져 밤새 수능 공부 보다 연구에 몰두하는 ‘이중 생활’을 한다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때문에 그의 합격 소식에 의아해 했다. 하지만 황군은 고2 때 ‘자성을 이용한 발전장치’를 고안해 특허출원을 하고 고3 여름에 대한민국학생발명전시회에서 금상을 받은 숨은 실력자다.
모든 연구는 독학으로 연구 자료를 찾아보거나 아이디어를 짜내 도면 그리며 ‘나 홀로’ 진행했다. “발명 아이디어는 일상생활 속에서 나와요. 세심한 관찰은 필수죠. 세상에 없는 것을 내 손으로 만들어 낸다는 그 사실이 무척 짜릿하거든요.”
그의 발명 스토리는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로켓 대회에 참가하며 과학에 재미를 붙였고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발견하면 꼭 실험을 해 봐야 직성이 풀렸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과학 잡지, 완구를 수시로 사다주며 든든한 우군이 되었다.
“옷에 붙이는 필통을 고안해 전국대회 은상을 받았고 폭죽 풍선을 만들어 실용신안을 내기도 했어요. 특허청, 한국과학문화재단 등 전국 규모의 발명대회에서 상을 많이 탔어요. 내 인생의 황금기였던 셈이죠.” 또래들 사이에서는 발명왕으로 통했다. 통솔력도 있어 학급 회장을 연거푸 맡으며 ‘주목 받는 엄친아’였다.


초등 발명영재, 중학교 때 ‘노는 아이’
하지만 중학교 입학한 뒤로 사정이 달라졌다. 획일화된 수업은 공부의 흥미를 잃게 했고 똑같이 입어야 하는 교복은 영 답답하기만 했다. 사춘기 반항까지 겹치면서 발명과는 담을 쌓았고 그의 중학시절은 암흑기였다.
보다 못한 부모님은 중3 무렵 아버지 고향이며 큰아버지가 계시는 경남 하동으로 ‘유배 전학’을 보냈다. “시골 생활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어요. 동네가 좁다보니 친구도 빨리 사귀었고 무엇보다 원 없이 책을 봤어요. 교사이신 큰아버지께서 읽고 싶은 책은 무한정 공급해주신 덕분에.”
황군은 하동에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어린 시절 ‘세상을 이끄는 리더’가 되고 싶은 마음 속 깊이 감춰둔 열망도 다시 꺼냈다. 마음을 다잡고 시작한 서울에서의 고교 생활. “1학년 입학 후 학급 회장으로 뽑혔고 첫 중간고사 성적도 비교적 잘나왔어요. 하지만 범생이 생활이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죠. 또 다시 ‘노는 재미’에 빠졌거든요.” 학교에서 황군은 점점 존재감이 없어졌다. 혼자 과학책, 판타지 소설을 뒤적이거나 공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1학년 겨울. 가족들과 바다여행을 떠났다가 항만청에 근무하는 아버지 지인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생겼다. “바닷가에 둥둥 떠 있는 부표가 인상적이어서 이것저것 질문을 드렸어요. 부표는 배터리를 일일이 교체해 주어야 하는데 비용이 많이 들고 사고 위험도 높다는 말을 듣는 순간 뭔가가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치더군요.” 초등학교 시절의 ‘발명 본능’이 되살아 났다.
“어릴 때부터 클린 에너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러던 차에 부표의 배터리를 육지에서 끌어다 쓸 것이 아니라 파도의 힘을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끈질기게 연구에 매달렸다. 1년 넘는 시행착오 끝에 자석을 활용한 발전기 원리를 고안해 냈다.


특허 출원한 기술, 현재 시제품 개발 중
특허까지 낸 황군의 기술은 현재 기업체에서 정부지원을 받아 실용화를 위한 추가 연구 중에 있다. “시제품이 완성돼 발전기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면 해군 탐지기나 양식장 등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어요.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기술인 셈이죠.”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현실적으로 고3이 학교 공부는 뒷전인 채 발명에 매달리기는 쉽지 않은 법. 부모님과 갈등이 많았다. “입학사정관제에 합격하지 못하면 재수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아예 수능시험 응시원서조차 쓰지 않았어요. 그간의 연구 내용, 발명을 향한 열정을 제대로 보여주자고 다짐하고 공들여 자기소개서 쓰고 면접을 준비했어요.”
지난 8월에는 한국발명진흥회로부터 우수 인재로 뽑혀 대만, 홍콩 일대 과학 단지를 둘러보고 왔다. “해외 탐방단 중 유일한 고3이었죠(웃음). 하지만 다른 나라의 거대한 연구 단지를 내 눈으로 직접 보니 꼭 이 분야에서 일해야겠다는 자극을 받았습니다.”
중하위권 내신 성적에 수능조차 보지 않고 가뿐히 대학에 합격한 황군을 보고 주위에서는  수근거렸고 이 때문에 맘고생을 꽤 많이 했다고 고백한다. “내 재능은 국영수 공부가 아니라 발명이었어요.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무수히 밤을 새가며 끈질기게 매달린 덕분에 원하는 결과를 얻은 거지요.”
요즘 그는 영어 공부에 몰두하고 물리, 수학책도 차근차근 다시 보고 있다. “다음 목표는 유학입니다. 클린 에너지 기술을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요.” 지향점이 또렷한 황군은 행복해 보였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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