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가 - 송파 휴(休)카페

365일 즐거운 동네 사랑방

지역내일 2012-12-11

이웃 간에 높이높이 쌓았던 벽을 조금씩 허물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기며 도심 속에서도 공동육아,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함께 사는 즐거움’을 맛보기 시작했다. 이 같은 ‘마을 만들기’에 서울시가 발 벗고 나서며 청소년들이 올곧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휴(休)카페가 동네마다 생겨나고 있다. 송파, 강동에서도 청소년들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던 ‘아름다운 어른들’이 개성 있는 아지트를 속속 선보이고 있다. 


“천정에 조명 좀 달아.”, “바닥이 지저분해. 청소기 좀 돌려” 송파구 문정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즐거운가’는 토요일 오전부터 시끌벅적하다. 이날은 마침 청소년 밴드부의 정기공연이 있는 날. 열댓 명의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지하1층의 60여 평 공간은 북카페, 미니 공연장, 다락방, 방음시설을 갖춘 음악연습실,  주방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졌다. 찬찬히 둘러보다 수북이 쌓여있는 라면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365일 도심 속 오픈하우스
“우리는 오픈 주방이라 학생들이 출출할 때는 언제든지 들러 라면을 끓여먹을 수 있어요. 규칙은 단 한 가지. 먹은 뒤에는 말끔하게 설거지만 해 놓으면 되요.” 복실이라는 별명처럼 동그란 얼굴의 꽁지머리가 인상적인 주인장 이윤복(46세)씨가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청소년들 누구에게나 문턱 없는 공짜 밥상을 선물하고 어른, 아이 모두 참새방앗간처럼 심심할 때 놀다갈 수 있는 도심 한복판의 오픈 하우스가 바로 ‘즐거운가’다. 2010년 10월에 문 열었으니 햇수로 2년째.
각종 기타, 키보드, 드럼 등 악기를 비롯해 마이크, 오디오 콘솔 등 음향시설까지 알차게 갖추고 있어 청소년은 물론 직장인, 동네 아줌마들까지 이 일대 밴드 동호인들의 아지트로 자리 잡았다. 재야의 기타리스트인 젊은 간사가 ‘음악 선생’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밴드, 요리 등 10여 가지 취미 강좌 운영
널찍한 주방에서는 청소년, 성인을 대상으로 제과제빵, 요리 동아리가 운영 중이다. 이밖에 댄스, 노래, 천연비누, 영화, 만화, 발도로프 인형 만들기, 목공예반 등 10여 가지 미니강좌가 수시로 열린다. 단골 회원은 약 200명, 매일 늦은 밤까지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꾸리며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내고 이웃 간의 도타운 정을 쌓는다. 
서울시가 최근 공들여 추진하고 있는 ‘도심 속 마을 만들기’가 이곳에서는 일찌감치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 이윤복, 엄미경 부부가 있다.
공대 출신의 윤복씨는 운동권, 회사원, 주식투자자 등 롤러코스트 인생을 살았다. “젊은 시절 돈의 단맛과 쓴맛, 주식 투자를 하며 한방의 허망함까지 두루 맛본 덕분에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찌감치 깨달았어요.”
그는 아들이 예닐곱 살 무렵 다섯 명이 뭉쳐 ‘품앗이 아빠’를 시작했다. 아빠들 마다 스포츠전문가, 요리전문가, 놀이전문가 등 맘에 드는 타이틀을 걸고 주말마다 교대로 아이들과 뛰놀았다. 놀이 담당이었던 그는 딱지 접고, 비석 치기하며 다섯 명의 꼬마 악동들과 뒹굴었다.
주식으로 큰돈을 날리고 삶의 갈피를 못 잡는 그에게 아내는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며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품앗이 아빠 시절, 아이들과 재미나게 놀며 에너지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그는 ‘자본 친화적 삶’을 내려놓는 대신 즐거운 일상을 얻을 수 있었다.
2004년 문정동 비닐하우스촌에 있는 지역아동센터의 청소년부를 맡으면서 대학시절 흠뻑 취해 살았던 노래와 밴드를 동네아이들과 함께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문정동 주택가로 둥지를 옮길 수 있었다. 


십시일반으로 완성된 보금자리
“돈에 발목 잡힐 때마다 이웃의 ‘십시일반’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웠어요.” 그는 싱긋 웃는다. 한 기업체에서 수천만 원을 선뜻 기부했고 건물주는 임대료를 깎아주었다. 세탁소 안주인은 쌈짓돈을 털어 건넸고 해외 유학파 건축가의 재능기부로 공간 설계를 공짜로 했다. 인테리어 업자는 돈 생기면 갚으라며 실내 공사비를 무기한 유예해 주었다. 에어컨, 김치냉장고, 식탁 등 세간살이 마다 기증자의 고마운 이름이 적힌 조그마한 초록 잎사귀가 붙어있다.
한쪽 벽면에는 재능기부자, 후원자의 캐리커처, 그림을 담은 액자들이 빼곡히 붙어있다. ‘함께 만든 공간’이라는 끈끈한 유대감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고 디자이너, 공예가 등 예술가들의 참여가 늘면서 강좌는 더욱 풍성해졌다.
특히 이곳의 동아리는 단순한 친목 활동에만 그치지 않는다. 마을 잔치를 열어 어르신들에게 국수를 대접하고 요리 동아리 회원들은 장애아동 보호시설을 찾아 요리 솜씨를 뽐내는 등 ‘나눔’도 꾸준히 실천하는 중이다.
최근에는 서울시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의 하나로 공모한 ‘청소년 휴카페’에 즐거운가가 선정되면서 활동에 탄력을 받고 있다. “즐거운가에서 ‘가’의 의미는 노래하고 춤추다(歌), 더하다(加), 아름답다(嘉), 거리(街) 등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름처럼 근사한 동네 사랑방으로 튼실하게 자리 잡기 위해서 현재 진행 중인 각종 프로그램과 동아리 활동을 체계화, 안정화 시키는데 전력투구하고 있습니다.” 터전 지킴이 이윤복씨의 설명이다.
인문학, 미디어 강좌 등 이곳에서는 알찬 프로그램이 수시로 진행되므로 온라인카페(cafe.daum.net/jollyhouse02)를 살펴보거나 가끔씩 전화로 문의해 보는 것이 좋다.


문의 : 070-4192-1318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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