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not?'' 장보문양(문과 2학년)은 긍정의 에너지로 똘똘 뭉쳐있다.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하는 동아리 선배의 모습에 반해 선거 출마를 결심했다는 장양. “학생들에게 내 뜻을 어떻게 어필할까 선거운동 내내 설레었어요. 내가 출마한다고 하니까 친구들은 발 벗고 나서서 포스터 제작부터 선거 유세까지 온갖 아이디어 내며 물불 안 가리고 몸으로 뛰어주었지요. 정말 신명나는 경험이었어요.” 극성맞게 선거 운동을 펼친 덕분에 그는 무난히 당선되었다.
현장에서 배운 리더십과 봉사
잠실여고 총학생회장으로 보낸 1년은 소중한 배움의 시간이었다. 벌점제 개선, 학교축제 활성화, 효율적인 학생 지도를 위한 옐로우 카드제 도입추진 등 학교 안팎의 여러 사안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학생들의 생각, 선생님들의 의견이 많이 달랐고 자주 부딪혔어요. 그 틈바구니 속에 내가 있었지요. 의견차를 좁히고 합리적인 대안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심사숙고한 뒤 내 소신을 밝혀야 했어요.”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장양의 마음 씀씀이, 생각의 깊이는 부쩍 자랐다.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리더는 옆 사람들의 지혜로 조직을 이끈다는 의미를 절감했죠.” 일단 저지르고 보는 급한 성질도 조금씩 가다듬어 졌다.
“보문이는 성장이 기대되는 학생입니다. 주관이 뚜렷하고 학교 축제 기획이든 봉사든 맡은 일을 좀 더 잘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며 애쓰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장양을 곁에서 지켜본 잠실여고 소병찰 교사가 칭찬을 덧붙인다.
장양은 리더십, 봉사에 관심이 많다. 초등학교 시절 만난 담임교사 덕분에 ‘실천하는 봉사’에 일찍 눈떴다. 10명 남짓한 또래 친구들과 평소 봉사에 관심 많았던 부모님들까지 가세해 동아리를 만들어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다.
“장애우들이 모여 사는 ‘가브리엘집’에 정기적으로 방문했어요. 앞이 안보여 누군가 손을 붙잡아 주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는 아이, 여러 번 만났어도 지적장애가 있어 사람을 분간하지 못하는 어른,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며 장애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죠.”
고교 입학 후에는 마천동 일대 혼자 사는 어르신을 찾아가 청소를 돕고 함께 동네 산책을 하며 말벗 겸 손녀 역할까지 한다. “80대 노인이 혼자 밥 챙겨 드시고 다리가 불편하니까 외출도 꺼린 채 하루 종일 TV만 쳐다보며 외롭게 사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그러면서도 부모 버리고 떠난 자식을 원망하기커녕 해준 게 없어 미안할 뿐이라는 할아버지의 쓸쓸한 얼굴이 마음 아팠어요. 독거 어르신을 만날 때마다 우리 엄마, 아빠 얼굴이 오버랩 되며 부모님께 잘해드려야겠다 다짐하게 되요.” 장양의 눈가가 붉어진다.
투병생활 후 부쩍 성장
따스하고 반듯한 성품과 재기 발랄함이 느껴지는 그에게 중2 겨울방학은 어려운 고비였다. 갑자기 가슴팍에서 진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멈추지 않았다. 간간이 피까지 섞여 나왔다. 종합병원을 찾아 소아청소년과, 여성의학과를 돌며 온갖 검사를 다 받았지만 병명을 찾지 못했다. 뾰족한 치료법도 없었다. 진물이 멈추지를 않자 불안감에 휩싸였다.
이리저리 수소문 끝에 전주의 한의원을 찾았다. 그 뒤 평범한 여중생의 일상을 올 스톱하고 아예 전주에 집까지 따로 얻어 한방치료와 식이요법에 매달렸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숨고르기를 하는 시간이었어요. 공부, 우정 등 10대의 모든 걸 내려놓았죠. 틈날 때마다 근처 모악산을 오르며 건강을 되찾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죠.” 다행히 병세는 호전되었고 몇 달 뒤 일상으로 복귀했다.
초등 교사 꿈 향해 뚜벅뚜벅
“공부 공백이 컸어요. 특히 수학은 공포감마저 느꼈어요. 기초가 부실하니 요령 위주로 공부 하게 되고 잘못된 공부법은 고1 때까지 이어졌죠.” 수학 공부에 좌절감이 몰려오자 학교 수학선생님께 SOS를 보냈다. “매일 A3 용지 앞 뒷장 가득 수학문제를 풀어 오라하셨어요. 내 나름의 풀이법을 깨끗이 적고 새로 알게 된 개념까지 써서 검사를 받았죠. 선생님께서는 꼼꼼히 채점한 뒤 틀린 부분을 고쳐주셨어요.” 1년간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노력이 쌓이면서 수학 열등감에서 점차 벗어났다. “끙끙대며 문제 푸는 과정에서 추론 능력이 길러졌어요. 자신감이 생기니까 성적은 오르더군요.”
예비 고3인 요즘, 총학생회장 활동 때문에 소홀히 했던 공부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내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입니다. 사랑으로 아이들을 품어주며 학생도 나도 함께 성장하고 싶거든요. 연륜이 쌓이면 산골 오지에 학교를 세울 거예요.” 장양은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꿈을 당당하게 말한다.
“내 최고의 멘토는 엄마예요. 뭐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할 수 있는 저력을 길러주신 분이죠.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세요. 50대인 지금도 낙엽 줍고 밀가루 반죽 하며 집에서도 즐겁게 수업 준비하며 아이들 가르치는 일 자체를 즐기세요. 그런 엄마의 긍정 에너지가 내 꿈의 자양분이 되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장양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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