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동화책을 찬찬히 읽다보면 영어 특유의 운율감이 살아있는 문장, 위트 있게 배치한 단어 등 작가의 재치가 녹아있는 부분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동화를 ‘책’이 아닌 ‘영어교재’로 접근하다 보니 아이들이 이런 재미를 못 느끼죠. 영어책 읽기를 공부로 생각할 뿐이죠.” 세계동화 작은도서관 정소영 관장이 안타까움을 털어놓는다.
4500권의 장르별 책 갖춘 작은도서관
10월 개관한 방이동의 세계동화 작은도서관은 유아, 초등부터 성인까지 4500권의 영어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학부모들 사이에 ‘영어 학습의 바이블’ 격인 노부영시리즈, 매직트리하우스, 매직스쿨버스를 비롯해 각종 동화책과 소설, 논픽션북 등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요즘에는 구청에서 세운 도서관이 곳곳에 있고 영어동화책도 다양하게 구비되어있는 편이죠. 문제는 인프라는 갖춰져 있는데 아이들의 연령, 성향에 맞춰 적절한 책을 권해주는 사서가 없다는 점이죠. 영어교육을 하면서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제대로 된 ‘영어책 가이드’ 역할을 하고 싶어 도서관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외대 졸업 후 호주에서 응용언어학 석사학위를 받은 정 관장은 오랫동안 아이들을 지도했으며 6년 전부터는 방이동에서 GT리그 영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책벌레’였던 그는 그동안 모은 영어책을 학원생 뿐 아니라 인근의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번에 사립도서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다양한 체험으로 배우는 ‘세계 문화’
개관 기념으로 10월24일부터 26일까지 ‘세계동화로 만나는 이웃’을 테마로 문화체험 행사를 열었다. 대다수 아이들은 영어책을 많이 접하기는 하지만 그 책을 쓴 저자를 직접 만날 기회는 거의 없다. 이 점에 착안해 미국 출신 동화작가 워렌 팀즈를 도서관으로 초청, 아이들과 함께 책을 낭독하고 노래를 부르며 작가의 집필 과정 에피소드를 들려주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송파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함께 일본,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몽골 출신의 다문화 알리미 강사 8명이 도서관을 방문, 각국의 음식과 전통 의상을 소개하며 아시아권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도 가졌다. 어린 시절부터 아이들이 영어 뿐 아니라 ‘아시아권 언어’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다. 이처럼 색다른 문화 체험을 경험한 아이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앞으로 도서관에서는 이 같은 이벤트를 다양하게 진행할 계획이다.
‘영어책 가이드’가 있는 도서관
“영어동화책은 엄마가 선호하는 유형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분명하게 갈려요. 어른들은 영어 교재로 적합한 정형화된 플롯, 교훈적인 내용, 완벽한 문장으로 이뤄진 책을 원하죠. 반면에 아이들은 우스꽝스럽고 상대방을 골탕 먹이는 유머가 담긴 책에 열광합니다.” 정 관장이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는 영어동화책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아이가 좋아할 만한 책을 먼저 권해야 하며 문장 해석에 치중하지 말고 전체적인 줄거리 흐름을 파악하면서 스토리를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자면, 영미 작가 중에 다양한 장르의 책을 낸 ‘오드리 우드’란 저자가 있어요. 처음엔 이 작가가 쓴 책 가운데 그림이 멋지고 문장이 짧은 책을 먼저 보여줘요. 일러스트레이터인 남편이 삽화를 그렸다는 가정사부터 작가에 대한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솔깃합니다. 그 다음은 중세시대 배경의 코믹 스토리북, 판타지 소설로 점점 단계를 높여가죠. 이런 식으로 한 작가의 책을 시리즈로 소개하면 열혈 팬이 되어 그가 쓴 모든 작품을 골라서 읽는 아이들까지 생겨요. 키포인트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길 수 있도록 좋은 책을 재미있게 소개하는 스킬이 필요하다는 거죠.”
정 관장은 이 같은 방법을 영어 수업에 활용해도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책 한권을 정해 돌려 읽기를 했어요. 한명씩 돌아가며 집에서 읽어오게 한 뒤 한줄 감상평을 말하게 했지요. 먼저 읽은 아이가 ‘이 책 완전 재미있어’, ‘이건 별로야’ 솔직하게 소감을 밝히면 다음 순서인 아이들은 귀담아 들어요. 또래가 추천하는 책은 훨씬 집중해서 읽거든요.”
이처럼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쌓은 노하우를 살려 도서관을 운영할 예정이다. 작가별 특징, 그림 스타일, 코믹한 스토리 등 호기심을 가질 만한 화제를 던지면서 아이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한다.
“소소한 일상사를 영어로 5~10분쯤 대화하면 이야깃거리가 금방 바닥나요. 하지만 함께 공감할 만한 책을 소재로 하면 화제가 풍성하지요. 아이들은 공통적으로 내가 느낀 걸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해 하거든요.” 정 관장은 그가 현장에서 쌓은 올바른 영어 독서지도법을 학부모들에게 체계적으로 알려주기 위해 별도의 강좌도 준비 중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운영되는 세계동화 작은도서관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문의 : (02)3012-0582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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