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새로 만들며 뚜벅뚜벅 걷다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한지인형 작가 김선미. 값싼 중국산 때문에 우리나라 핸드메이드 공예품 시장이 폭삭 주저앉았을 때도 포기하지 않았다. 20년간 한지인형과 동고동락하며 한 우물을 판 그에게 올해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대한명인회로부터 ‘한지인형 부문 명인’으로 선정되었고 경기도 관광상품대전에서 상을 받은 뒤 여러 지자체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게다가 그가 운영하는 다올코리아는 서울시로부터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되었다. 둥근 얼굴에 푸근한 인상이 그가 빚어내는 인형과 꼭 닮은 김선미 작가를 작업실이 있는 롯데월드 화랑에서 만났다.
-인형 종류가 다양합니다.
“금관을 쓴 신라왕과 여왕, 사모관대 입고 족두리 쓴 신랑과 각시, 궁궐의 수라간 나인들처럼 ‘전통 의상’을 테마로 각양각색의 인형을 만들었어요. 최근에는 명성황후, 정약용, 광개토대왕 등 역사 속 위인시리즈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역사는 고증이 필수이기 때문에 틈날 때마다 복식사를 공부하고 인터넷이나 영상 자료를 검색하죠. 소재는 무궁무진해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스케치를 하며 작품을 구상합니다.”
-한지인형 특허까지 갖고 있네요.
“모든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다 보니 인형 하나 완성하는데 3~5개월씩 걸렸어요. 전선줄로 뼈대 만든 다음 한지를 둘둘 말아 머리, 몸통 만들어요. 여기에 다시 한지를 한 겹씩 붙이며 얼굴 표정을 잡고 옷을 만들어요. 그런데 기껏 인형을 완성해 놓고도 잘못 말려서 종이가 울거나 곰팡이가 나서 버릴 때도 많았어요. 성질 급한 한국인들에게 한지 인형 제작을 보급하려니까 한계에 부딪혔어요. 궁리 끝에 플라스틱으로 인형의 몸체를 미리 만들어 놓은 다음 여기에 한지를 붙여 원하는 인형을 완성할 수 있도록 했지요. 이 방식으로 문화센터, 학교 등지에서 인형 만들기 수업을 하니까 아이들도 2시간 이면 뚝딱 완성해요. 2006년 특허를 받았어요. 당시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지요.”
-20년 한지인형 인생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30대까지 딸 둘 키우는 현모양처로 살았죠. 타고난 손재주가 있어 취미로 종이공예를 배우다 한지를 만났어요. 부드러운 한지의 감촉이 나와 궁합이 딱 맞더군요. 때마침 김영희 작가의 닥종이 인형이 반향을 일으키던 때였어요. 그때부터 전문가 찾아다니며 본격적으로 배웠죠. 쌍꺼풀 진 눈, 빼빼 마른 바비인형 스타일이 아닌 동글납작한 얼굴형에 정감 가는 표정. 닥종이 인형의 매력에 푹 빠져 온갖 인형을 만들었지요. 그런데 국내 공예시장을 중국산이 잠식해 들어오자 동료 공예가들이 하나 둘씩 전업을 하더군요. 그런데 나는 돈벌이가 아니라 인형 만들기가 좋아 시작했기에 꿋꿋하게 버티었죠.
-재력이 뒷받침 되었나요?
“전혀요. 전국 각지로 강의를 다녔어요. 수강료 받아 재료비 충당하려고. 몸은 고되었지만 그때 가르친 교육생들 덕분에 전국구 인맥을 쌓았고 인형 보급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전시공간과 교육장이 필요해 2009년 무리를 해서 잠실 롯데월드 화랑에 터를 잡았지요. 물불 안 가리고 뛴 덕분에 전주 한지문화제 등 전국의 유명 축제와 박람회에 참가할 수 있었고 신지식인 대상, 국제 여성 발명대회 은상 등 꽤 많은 상을 탔어요. 인생에 ‘한방’은 없어요. 어려워도 꾹 참고 끈질기게 새로운 걸 시도하는 ‘시간과의 싸움’이 꼭 필요합니다. 내 철칙 하나가 한지는 반드시 괴산 신풍의 무형문화재 선생이 만들 걸 쓰는 거예요. 그분은 닥나무를 직접 키워 수작업으로 한지를 뜨는데 인고의 시간 끝에 완성된 한지는 촉감과 색감이 최고예요. 중국산 보다 몇 곱절 비싸지만 ‘장인’끼리의 텔레파시가 있거든요.”
-작가, 사업가 1인2역을 소화하시네요.
“작품에만 올인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입니다. 하지만 한국적 미를 살린 인형을 우리나라 대표 관광 상품으로 키워보고 싶은 욕심도 크죠. 경기도 특산품으로 만든 다산 정약용, 명성황후 한지인형을 보고 여러 지자체에서 문의가 잇따르고 있어요. 인형을 활용하면 지역의 특징을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내기 쉽거든요. 또 어린이들에게 한지인형 만들기를 널리 보급하고 싶어요. 성질 급하고 산만한 말썽꾸러기가 꾸준히 인형을 만들면서 차분하게 바뀌는 걸 많이 경험했습니다. 요즘에는 외국인 관광객도 한지인형을 만들러 많이 와요.”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몇 년 전에 전시회를 앞두고 여러 달 공들여 만든 인형이 있었는데 동남아 관광객들이 찾아와 날더러 자꾸 팔라고 하더군요. 딱 잘라 거절했는데도 간곡히 부탁해요. 알고 보니 미얀마 영부인 일행이었어요. 소중히 간직하라며 그냥 선물로 주었지요. 그걸 계기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한지인형을 만들어 전 세계에 선보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어요. 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오리엔탈리즘 열풍’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줄 거라 믿어요. 며칠 후면 홍콩에서 데뷔 무대가 마련되죠(웃음).”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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