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화이트 감독의 영화 ''사랑의 침묵''이 전주에서 상영 중이다. 봉쇄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수녀들의 일상을 담은 영화다. 봉쇄수도원이라고 하면 도심과 떨어진 외딴 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 수도원은 영국 런던의 쇼핑가 ''노팅힐''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시종 침묵으로 일관하는 영화는 마지막에 노팅힐 시가지 한가운데 자리한 수도원을 오랫동안 비춘다. 감독은 소음 가득한 대도시 한복판에서 침묵이 갖는 의미를 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감독은 수녀에게 질문한다. "수도원 생활은 현실도피 아닌가요?" 수녀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수도원에서는 자기 자신을 직시해야 합니다.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인을 흠모하는 이유 중 하나가 치열한 자기 직시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초연함 때문이다. 어디 종교인 뿐인가. 자신을 안다는 것은 대단히 강력한 힘이 된다.
최근 걷기 열풍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자본과 경쟁, 성공에 대한 열망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리며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은 뒤로 미루었다. 걷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도보여행가 김남희는 "시속 4㎞의 속도는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속도"라고 말한다.
전북에선 지난 11월 1일부터 욕심을 버리고 자유로 향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2012 세계순례대회가 그것이다.
11일까지 열흘 동안 펼쳐지는 세계순례대회는 일단 그 희귀함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순례문화연구원과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 불교 4대 종단 지도자와 신도들이 참석하는 보기 드문 행사이기 때문이다. 첫 날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주 풍남문을 출발해 240km에 달하는 순례대장정에 올랐다. 이 순례대회는 전주~완주~김제~익산에 걸쳐 조성된 ''아름다운 순례길'' 덕분이다. 지난 2009년부터 조성된 이길은 4대 종교와 관련된 기적 같은 스토리가 담겨있는 길이다. 한국인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머물렀던 익산 나바위성지,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미륵사지석탑, 1893년 호남 최초로 설립된 서문교회, 신라 말기에 창건된 송광사, 단 한번도 전란을 입지 않았다는 만덕산 원불교 성지 등이 순례길 곳곳에 앉혀 있다. 대회 전부터 1만 명 이상이 매년 이 길을 다녀가고 있다.
아름다운 순례길의 특징을 꼽자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 다른 종교가 모여 상생과 화합의 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4대 종교 뿐 아니다. 백제 때는 미륵신앙을, 구한말에는 동학사상을, 일제강점기에는 보천교가 등장했던 곳이 전북이다. 왜 전북 땅에서 신흥종교가 태동했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학자들의 몫이겠지만, 이런 독특한 공간을 걷는 자체도 의미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4대 종단이 흔쾌히 마음을 모아 주었다는 점이 대회를 빛나게 한다. 단일종교를 따라가는 순례길은 나라마다 더러 존재하지만, 이처럼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순례길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순례길은 고행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이다. 벚꽃유람이나 단풍구경과는 그 출발부터가 다른 것이다. 때론 목마른 구도자처럼, 때론 고행의 방랑자처럼 그렇게 가야 하는 길. 하지만 순례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과 휴식을 위해 그동안 땀 흘려 길을 정비하고 안내시설과 휴게시설을 만들었다. 각 종단의 적극적인 협조로 템플스테이, 처치스테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성지마다 종단 지도자들이 나와 순례객을 맞이하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오는 10일에는 순례어울림한마당이 열리고 마지막 날에는 순례국제포럼이 열린다. 세계종교학의 권위자인 미국의 머빌 위라세케라 교수, 불교학자인 인도의 빼마친조르, 세계종교인평화회의 공동대표인 이오은 교무, 로마교황청 순례특사인 조셉 칼라리 대주교가 참석하여 순례와 종교화합, 세계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 세상 어디에나 길은 있지만, 걷고 싶은 길은 많지 않다. 지금 현대인에게 필요한 길은 어떤 길일까? 감히 말하건대, 그것은 성찰과 평화의 길일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자에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자에게 미래는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전라북도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순례길로 각광받기에 충분하다. 길이란 걸어본 자의 입소문에 의해 뻗어나가는 법. 이번 순례대회에 참가한 수만 명의 순례객들에 의해 전라북도의 아름다운 순례길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평화와 상생의 길로 뻗어나가길 기대해 본다.
이현웅
전라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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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수녀에게 질문한다. "수도원 생활은 현실도피 아닌가요?" 수녀는 단호하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수도원에서는 자기 자신을 직시해야 합니다. 자신을 직시할 수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인을 흠모하는 이유 중 하나가 치열한 자기 직시와 세속에 물들지 않은 초연함 때문이다. 어디 종교인 뿐인가. 자신을 안다는 것은 대단히 강력한 힘이 된다.
최근 걷기 열풍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자본과 경쟁, 성공에 대한 열망 때문에 앞만 보고 달리며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은 뒤로 미루었다. 걷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도보여행가 김남희는 "시속 4㎞의 속도는 자기 자신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속도"라고 말한다.
전북에선 지난 11월 1일부터 욕심을 버리고 자유로 향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2012 세계순례대회가 그것이다.
11일까지 열흘 동안 펼쳐지는 세계순례대회는 일단 그 희귀함에서 주목받고 있다. 한국순례문화연구원과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 불교 4대 종단 지도자와 신도들이 참석하는 보기 드문 행사이기 때문이다. 첫 날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전주 풍남문을 출발해 240km에 달하는 순례대장정에 올랐다. 이 순례대회는 전주~완주~김제~익산에 걸쳐 조성된 ''아름다운 순례길'' 덕분이다. 지난 2009년부터 조성된 이길은 4대 종교와 관련된 기적 같은 스토리가 담겨있는 길이다. 한국인의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머물렀던 익산 나바위성지, 불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미륵사지석탑, 1893년 호남 최초로 설립된 서문교회, 신라 말기에 창건된 송광사, 단 한번도 전란을 입지 않았다는 만덕산 원불교 성지 등이 순례길 곳곳에 앉혀 있다. 대회 전부터 1만 명 이상이 매년 이 길을 다녀가고 있다.
아름다운 순례길의 특징을 꼽자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 다른 종교가 모여 상생과 화합의 길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4대 종교 뿐 아니다. 백제 때는 미륵신앙을, 구한말에는 동학사상을, 일제강점기에는 보천교가 등장했던 곳이 전북이다. 왜 전북 땅에서 신흥종교가 태동했는지를 연구하는 것은 학자들의 몫이겠지만, 이런 독특한 공간을 걷는 자체도 의미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4대 종단이 흔쾌히 마음을 모아 주었다는 점이 대회를 빛나게 한다. 단일종교를 따라가는 순례길은 나라마다 더러 존재하지만, 이처럼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순례길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순례길은 고행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이다. 벚꽃유람이나 단풍구경과는 그 출발부터가 다른 것이다. 때론 목마른 구도자처럼, 때론 고행의 방랑자처럼 그렇게 가야 하는 길. 하지만 순례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과 휴식을 위해 그동안 땀 흘려 길을 정비하고 안내시설과 휴게시설을 만들었다. 각 종단의 적극적인 협조로 템플스테이, 처치스테이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성지마다 종단 지도자들이 나와 순례객을 맞이하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오는 10일에는 순례어울림한마당이 열리고 마지막 날에는 순례국제포럼이 열린다. 세계종교학의 권위자인 미국의 머빌 위라세케라 교수, 불교학자인 인도의 빼마친조르, 세계종교인평화회의 공동대표인 이오은 교무, 로마교황청 순례특사인 조셉 칼라리 대주교가 참석하여 순례와 종교화합, 세계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 세상 어디에나 길은 있지만, 걷고 싶은 길은 많지 않다. 지금 현대인에게 필요한 길은 어떤 길일까? 감히 말하건대, 그것은 성찰과 평화의 길일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 자에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자에게 미래는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전라북도의 아름다운 순례길은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순례길로 각광받기에 충분하다. 길이란 걸어본 자의 입소문에 의해 뻗어나가는 법. 이번 순례대회에 참가한 수만 명의 순례객들에 의해 전라북도의 아름다운 순례길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평화와 상생의 길로 뻗어나가길 기대해 본다.
이현웅
전라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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