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터가 간다] 25박26일간 유럽 10개 도시를 돌다

''바람난 가족''의 좌충우돌 유럽배낭여행기

지역내일 2012-10-16

복닥거리는 일상에 문득문득 회의감이 몰려들었다. 일단 모든 걸 올스톱하고 우리 부부와 6학년 딸, 세 식구는 로망으로만 간직하고 있던 유럽 배낭여행을 감행했다. 25박26일간 유럽 10여개 도시를 다니며 그들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두 번이나 소매치기 당할 뻔했고 기차를 잘못 타 이산가족 직전까지 가는 등 황당한 에피소드를 곳곳에 뿌리며 보낸 유럽 좌충우돌 여행기를 살짝 공개한다.


큰 맘 먹고 떠나는 한 달간의 여행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가 필수. 여행가이드북 섭렵은 기본이고 눈에 불을 켜고 인터넷을 검색했고 20여 차례 유럽을 다녀온 여행마니아의 배낭여행 소모임까지 찾아다니며 정보를 모았다.


꼼꼼하고 알뜰하게 여행계획표 짜다
여행지는 유적지가 많고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대표 관광지와 함께 그 나라의 ‘생얼’을 생생하게 볼 수 있는 중소도시도 골고루 안배했다. 숙박지는 현지인 민박과 한국인 민박, 호텔, 유스호스텔까지 골고루 경험해 보고 싶었다. 또한 버스, 지하철, 트램 등의 대중교통을 골고루 이용하면서 도시 구석구석을 체험해 보기로 야심차게 마음먹었다. 이렇게 해서 체코의 프라하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지로 정했다. 유럽에 사는 지인이 ‘유럽의 보석’인 로마를 먼저 보면 다른 도시의 유적지가 시시해진다는 조언을 떠올리며 맨 마지막 여행지로 아껴두었다. 


눈은 ‘호사’ 몸은 ‘개고생’
부푼 꿈을 안고 15시간을 날아 도착한 유럽. 이상과 현실을 다르다 했던가?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보디랭귀지로 버티며 낯선 도시를 헤매느라 몸은 무수한 ‘개고생’을 했지만 눈은 호사를 누렸다. 중세의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는 프라하에서는 700년 전 ‘체코의 세종대왕’격인 카를 4세의 멋진 리더십을 만날 수 있었다. 프라하 부흥의 기틀을 닦았던 그는 정교하면서 거대한 프라하성을 비롯해 카를교 등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매력적인 도시 인프라를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국운을 좌지우지하는 ‘리더의 자질’을 그의 동상을 보며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
스위스 알프스산의 만년설과 눈부신 초록빛 풍광을 보니 입이 딱 벌어졌다. 해발 3000m가 넘는 유럽 최고봉 융프라우요흐까지 산악 열차를 놓고 산 곳곳에 트래킹 코스와 화장실 등의 관광 편의시설을 기가 막히게 잘 갖춰놓은 스위스인들의 꼼꼼함과 깔끔함은 감탄스러웠다.
르네상스를 꽃피운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레오나라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천재를 길러낸 메디치가의 350년 걸작들을 우피치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었다. 미술사에 문외한인지라 미술관 가이드의 주옥같은 설명은 귀에 쏙쏙 들어왔다. 미술을 전공한 후 이탈리아로 이민, 화가로 활동 중인 한국인 가이드는 수천 점의 예술품 중에서 주요 작품만을 골라 예술적 가치, 감상 포인트를 콕콕 집어 설명해 주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주요 미술관은 다소 비용이 들더라도 꼭 전문 가이드와 동행해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
조상을 잘 둔 이탈리아는 복 받은 나라다. 2천 년 전 콜로세움부터 천재 미술가 미켈란젤로의 주옥같은 작품들, 수많은 유적지를 고스란히 간직한 덕분에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밀려든다. 하지만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는 무척 인색했다. 지하철과 도로는 지저분하고 간혹 더운 날씨에 냉방이 안 되는 버스도 다녔다. 레스토랑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손님은 왕’인 우리나라의 친절마인드에 익숙해진 우리 식구는 여러 번 당황했고 불쾌한 경험도 많았다. 다만 옛 것을 몽땅 갈아엎는 우리와 달리 다 쓰려져 가는 유적이라도 세심하게 보수해 가며 원형을 간직하려는 그 정신만은 본받을 만 했다.


세 식구, 길 위에서 세상을 배우다
여행을 마칠 무렵 우리 식구는 ‘길 찾기 달인’이 되어 있었다. 하루 10시간 넘게 걸어 다니는 강행군의 연속이었고 아침은 스위스, 저녁은 이탈리아로 이동하는 노마드족 생활이 몸에 배는 동안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넓어졌다. 물론 세 식구가 24시간 내내 붙어있다 보니 크고 작은 다툼도 많았지만 덕분에 ‘미운 정’은 많이 쌓았다. 여행을 통해 에너지를 얻고 싶은데 망설이는 분들께 ‘강추’하고 싶다. 돈, 시간 때문에 재지 말고 건강할 때 얼른 떠나라고. 



[리포터가 맘대로 뽑은 베스트 유럽 명소]
 
체코 프라하성
1100년 역사를 간직한 성비트 성당, 소설가 카프카의 집이 있는 황금소로, 구왕궁, 정원 등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어 ‘프라하 관광1번지’로 꼽히는 곳이다.
특히 900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완성된 성비트 성당은 100m 높이의 거대한 첨탑, 섬세하게 장식된 성당 외관이 근사하다. 무엇보다 성당 창문마다 화려하게 장식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가족 여행객이라면 저렴한 패밀리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다.
높은 절벽 위에 위치한 프라하성에서 내려다보는 시가지 전망은 최고다. ‘건축 박물관’으로 불릴 만큼 중세풍의 예쁜 건물이 많은 프라하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맛이 일품인 체코 맥주를 챙겨가 풍경을 감상하며 마시는 것도 운치가 있을 듯.


오스트리아 빈 쉔브룬 궁전
오스트리아 일대를 지배한 합스부르크가의 궁전으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1400개가 넘는 방에는 여걸 마리아 테레지아를 비롯, 비운의 마지막 황후 시씨와 요제프 황제의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당시 황제가 사용하던 집무실 집기, 침대 등의 생활 소품 등이 정갈하게 보존되어 있다. 특히 절세미인이었던 시씨가 관광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시씨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 요제프 황제와 ‘세기의 러브스토리’를 엮으며 결혼하지만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무정부주의자의 칼에 찔려 생을 마감한 비련의 여주인공이다.
음악 신동 모차르트가 6살 때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연주하고 동서냉전을 허물기 위해 케네디와 흐르시초프가 악수한 역사적인 장소도 바로 이곳이다. 여의도 면적의1/4 크기로 잘 가꿔진 드넓은 정원도 색다른 볼거리다.
쉔브룬궁전은 친절하게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서비스가 되기 때문에 한 시대를 쥐락펴락했던 합스브르크가의 흥망성쇠를 상세한 설명과 함께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스위스 알프스산 트래킹
알프스의 관문 인터라켄은 관광객을 산꼭대기까지 편안하게 실어 날라주는 산악열차를 탈 수 있는 곳이다. 융프라우 등 주요 지점까지 등산 열차를 타고 전망대에서만 경치를 감상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시간을 내서 꼭 푸른 초원을 거닐며 트래킹을 해볼 것을 추천한다.
알프스산은 산악열차, 케이블카, 곤돌라 등의 교통수단이 트래킹코스와 잘 연결되어 있다. 1~6시간 등 코스도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고 경사도 완만해 등산 초보자라도 가볍게 산행하기 좋다.  
또한 패러글라이딩, 밧줄을 타고 800m를 날듯이 내려오는 플라이어, 페달이 없는 산악자전거 등 색다르게 즐길 수 있는 레포츠도 많다. 관광안내소마다 산악열차시간표와 트래킹지도가 잘 구비되어 있고 등산화를 무료로 빌려주는 것도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미술관
르네상스를 꽃피운 메디치가문의 방대한 소장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메디치가의 마지막 상속녀 안나 마리아 루이자가 모든 예술품을 정부에 기증해 마련되었다. 레오나르도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 회화 컬렉션으로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기 때문에 늘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든다.
최고의 걸작으로는 화가 보티첼리가 비너스, 큐피트 등 신화를 주제로 최초로 그린 <라 프리마베라>와 미의 여신 비너스가 조개에서 탄생하는 모습을 그려 르네상스 시대 최초의 누드를 매혹적으로 표현한 <비너스의 탄생>을 꼽는다.
미술사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을 들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사전에 전문 가이드 투어를 신청, 함께 작품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메디치가문과 미켈란젤로 등 거장들간에 다양한 에피소드, 작품 제작에 얽힌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도 함께 들을 수 있다.
미술관 바로 앞 광장에는 신화 속에 나오는 거대한 조각상들을 만날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상 복제품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
세계 건축사에 엄청난 영향을 준 판테온은 로마의 모든 신을 모시는 신전으로 1900여년 전에 만들어 졌다. 철근이 들어가지 않는 콘크리트 돔으로는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크다. 입구에 세운 16개의 큰 기둥들은 모두 통짜 화강석이다. 돔 천장에 설치한 지름 9m의 큰 구멍으로는 비가 들이치지 않았는데 이는 실내에서 덥혀진 공기가 구멍 밖으로 배출되면서 비를 밀어내는 과학적인 원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미켈란젤로가 ‘천사의 설계’라며 찬탄을 했으며 르네상스시대의 또 다른 천재화가 라파엘로도 이곳을 많이 아꼈다고 한다. 한밤에 돔 구멍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신전 대리석 바닥에 은은하게 반사되는 모습을 보며 작품의 영감을 얻기도 했던 라파엘로는 아쉽게도 30대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그의 유언대로 무덤은 판테온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신비한 돔 건축물과 라파엘로의 무덤을 보기 위해 판테온은 늘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는데 입장료를 따로 받지 않는 것도 이곳이 더욱 매력적인 이유이다.  


로마 바티칸 박물관
역대 교황들의 수집품을 소장한 보물창고. 라파엘로의 그림 <아테네학당>을 비롯해 <라오콘군상> <토르소> 등 우리에게 친숙한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미켈란젤로가 33살 때 그리기 시작해 4년여 만에 완성한 <천지창조>와 그가 말년에 그린 <최후의 심판>을 보기 위해 벽화가 그려진 시스티나 소성당은 관람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작품 감상을 마친 후에는 성베드로 성당을 둘러볼 수 있다. 특히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애절한 모습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만날 수 있다. 그가 24살 때 완성한 이 조각상을 보면 미켈란젤로를 왜 천재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된다. 김기덕 감독이 영화 <피에타>를 찍기 전 2번이나 와서 영감을 얻었다는 바로 그 작품이다. 



[경험에서 배운 유럽 여행 팁]


유용한 인터넷 사이트는?
유랑(cafe.naver.com/firenze). 유럽여행에 필요한 온갖 알짜 정보가 다 있는 여행정보의 보물창고. 부킹닷컴(www.booking.com). 한국어로 서비스되는 숙소 예약사이트. 이용후기가 충실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1일 전까지는 수수료 없이 예약 취소가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유레일패스 꼭 필요할까?
26살 이하로 유럽의 여러 도시를 둘러보려는 여행자에게는 유용하다. 하지만 주요 도시를 집중적으로 볼 계획이라면 구간별로 티켓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다. 유럽의 기차표는 미리 예약하면 정상가의 1/3 가격에도 구입할 수 있다.


도시카드 사야할까?
주요 관광지 마다 ‘교통권+유적지 입장권’을 통합한 카드를 판매한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카드는 운텐베르크산 케이블카를 타려는 여행자라면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교통요금이 비싼 스위스에서 산악열차 VIP카드는 열차, 케이블카 등을 맘껏 이용할 수 있어 유용하다. 로마에 3일 이상 머무른다면 로마카드 구매를 권한다.


장기여행을 위한 먹거리 준비는?
빵, 피자, 파스타를 질리도록 먹자 ‘밥’이 그리웠다. 현지 마트에서 쌀을 손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간단한 조리도구를 준비해 가면 밥을 해먹을 수가 있다. 김, 포장 김치, 라면 등을 넉넉히 준비해 갔는데 특히 고추장이 요긴했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다 고추장만 풀면 얼큰한 찌개가 뚝딱 완성된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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