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水原)’은 지명에서 알 수 있듯 물이 풍부한 곳. 그리 크지 않은 면적임에도 불구하고 수원천을 비롯해 황구지천, 서호천, 원천천이 유유히 흘러간다. 이들이 우리네 삶과 가장 밀접했던 하천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수원천은 답답하게 콘크리트에 덮여 있던 부분을 활짝 걷어냈다. 갖가지 수초와 꽃들이 자라고, 구불구불 물이 흐르는 자연하천으로 거듭 나고 있다. 자연과 사람이 물을 따라 하나가 되는 수원천을 걸으며 그 천변풍경에 취해 본다.
권성미 리포터 kwons0212@naver.com
▷광교저수지에서 첫 걸음을 떼다
수원천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장안구, 팔달구, 권선구를 걸쳐 흘러가고 있어 지도만 봐서는 그 길이가 어마어마할 것 같다. 광교저수지에서 발원해 대황교동의 황구지천 합류지점까지 16km에 이른단다. 평소 늦은 걸음으로 전생이 ‘거북이’였다고 놀림 받는 터라 슬슬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마음을 다 잡고 수원천의 시작점인 광교저수지에서 첫걸음을 뗐다.
광교저수지의 둑길에는 벤치가 늘어서 근심어린 마음을 아는지 쉬어가라며 붙잡는다. 벤치에 몸을 맡기니 그 앞에 아련히 펼쳐지는 저수지의 풍경은 위안을 준다. 시원스레 물줄기까지 뿜어내고 있는 호수에, 고개를 돌려 보니 초록의 산이 다가온다. 오늘의 긴 여정을 잠시 잊고 그저 머물고만 싶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인 것을…. 둑 아래의 광교공원으로 향하며 드디어 본격적인 수원천 걷기를 시작한다.
tip 쉬어가요 - 광교공원
쭉쭉 뻗은 나무와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그 위에 텐트를 치거나 자리를 펴고 쉴 수 있다. 정자, 물레방아, 시냇물이 흐르는 동화 속 개울은 아이나 어른 모두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노래하는 음악분수는 광교공원의 백미. 시간이 정해져 있어 시간확인은 필수다.
▷자연의 미, 생태하천을 걷다
광교 공원 끝자락. 돌계단 아래로 떨어지는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풀어내는 응원의 함성을 뒤로 하고 길을 서둔다. 도심 속의 하천이지만 세련된 도시가 주는 인공적인 멋은 없다. 무성한 풀들이 정돈되지 않은 채 자라고 있어 영락없이 시골 냇가가 연상된다. 그에 걸맞게 95종의 다양한 식물들과 논우렁이·게아재비 등의 수서곤충, 피라미·송사리 등의 토종어류가 수원천을 제집으로 삼았다는 안내표지판에 눈길이 간다. 두루미나 청둥오리 등의 새들도 찾아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그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산책하고, 운동기구에서 운동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바람을 가르고, 정답게 담소하는 사람들을 수원천은 넉넉한 모습으로 지켜주고 있었다. 이름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자태를 뽐내고 있는 꽃들과 수변식물들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걸음이 자꾸 뒤쳐진다.
▷화홍문, 방화수류정과 복원된 남수문, 동남각루까지 수원천에서 만나다
40여분 정도 걸었을까. 멀리 반가운 풍경이 눈에 들어선다. 수원화성의 수문 화홍문과 그 옆에 있는 방화수류정이다. 화홍문에 올라 신을 벗어 두고 잠시 쉬어본다. 지나온 길과 앞으로 가야할 길이 앞뒤로 펼쳐진다. 방화수류정 앞의 용연도 들여다본다. 역시 수원천이 있기에 자신의 아름다움을 빛낼 수 있었으리라.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은 북수문과 동북각루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다. 북수문은 최근에야 잃었던 짝을 찾았다. 바로 10여분쯤 걸으면 만날 수 있는 남수문. 1922년 대홍수로 유실된 것을 올 6월 드디어 복원했다. 남수문은 화홍문뿐만 아니라 동남각루에게도 더 없이 좋은 벗이 되고 있다. 동남각루에서 뚝 끊겨버렸던 성곽이 남수문으로 이어졌다. 팔달문까지 완전히 연결될 화성성곽의 모습을 성급하지만 그려본다.
tip 쉬어가요-동남각루
남수문 옆의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동남각루에 이른다. 그 앞으로 자리 잡은 벤치는 훌륭한 전망을 선사한다. 복원된 남수문과 주변의 시장들, 멀리 팔달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tip 쉬어가요-통닭거리와 지동순대타운
한참을 걸었다면 배가 출출해질 듯. 남수문에서 멀지 않은 ‘통닭거리’와 지동시장 내의 ‘순대타운’을 찾아보자. 통닭거리의 커다란 가마솥에서 튀겨지는 통닭에 군침이 돈다. 후라이드와 시골통닭은 1만3천원, 양념통닭과 반반통닭은 1만4천원이면 먹을 수 있다. 전국적으로 명성이 드높은 ‘순대타운’에서는 순대국 6천원, 순대곱창볶음 8천원이면 맛있는 식사가 해결된다.
▷ 새 역사를 쓰는 복개구간 800여 미터
남수문을 지나면 갑자기 왁자지껄해진다. 주변으로 수원 최대의 시장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활기찬 사람들의 모습에 수원천도 미소를 머금은 듯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 한껏 부풀어 올라 있는지도 모른다. 94년 콘크리트에 덮였다 최근에 와서야 속살을 햇살 속에 드러낼 수 있었다.
새로 만든 난간, 다리에는 다시 만난 수원천을 축하하는 그림들이 걸려 있다. 많은 이들이 수원천의 복원을 소망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새로 조성된 건축물들은 인위적인 면이 강하게 전해온다. 곳곳의 다리 아래에는 쉴 수 있는 계단들이 있고, 만들어진 징검다리는 이쪽저쪽 쉽게 건너가게 하지만 왠지 자연스럽지 못하다. 세월이 어서 흘러 그 어색함이 사라지기를 바래본다.
▷사람과 소통하며 물은 아래로 흘러간다
아래로 내려오면 한결 넓어진 수원천과 많은 다리들(세천교~세류대교)을 만난다. 다리 밑으로는 어김없이 벽화가 그려져 있다. 하천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꿈들이 형형색색 그려져 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계절마다 있는 갖가지 축제나 행사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은다. 세천교 부근은 겨울이면 썰매장으로 변한다. 겨울 아이들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봄(4월)에는 이 길을 따라 튤립축제가 열려 눈부신 꽃길을 선사했다. 얼마 전에는 무궁화 축제도 열렸다.
쉬며 가며 3시간 정도 걸었을까. 조금 지쳐갈 쯤 한하운의 시비를 발견했다. 그의 대표작 ‘보리피리’가 새겨져 있다. 1949년 세류동의 정착촌인 하천가에 살았던 그를 기억하기 위함이란다. 수원천도 천형의 고통으로 인한 그의 피맺힌 울음을 기억하고 있을까?
멀리 도로가 보이고 버스 지나는 소리가 들려온다. 세류대교가 눈앞에 섰다. 등나무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내는 돌계단에 앉아 지나온 길을 되짚어 봤다. 광교저수지에서 시작해 세류대교까지 10km가 넘는 길을 걸어왔다. 그 동안 수원천은 자연과 사람이 물을 통해 하나가 되고 길이 열렸음을 넌지시 전해 주었다. 그러하기에 수원천은 사람들 옆에서 흘러야 함을 다시금 속살거린다.
tip 쉬어가요-수인선세류공원
세류대교를 넘어 세류중학교 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옛 수인선 철로 자리에 만들어진 수인선 세류공원이 나온다. 수목터널이 쭉 널어선 길을 따라 곳곳에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운치 있는 경치가 걷기로 쌓인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서호천
장안구 파장동에서 시작해 권선구 장지동에서 황구지천으로 합류하는 하천이다. 총 길이 11.5km. 하천가에 갯버들과 갈대를 심고 산책로를 만드는 등 생태도심하천으로 조성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원천천
하동의 신대저수지에서 시작되어 대황교동에서 황구지천과 합쳐진다. 총길이는 10km. 수변 산책로는 자연친화적으로 정비돼 영통구와 권선구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황구지천
의왕의 왕송저수지에서 발원하여 권선구 당수동·금곡동·장지동·대황교동을 거쳐, 서남부에서 서호천·수원천·원천천 등을 받아들이면서 서해로 흘러간다. 총 길이는 18.15km.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살아있어 생태계 관찰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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