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동에서만 60년이 넘은 대장간을 꿋꿋이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 강영기(61세)씨와 아들 강단호(32세)씨. 지난 23일 이들을 만나기 위해 천호동 로데오 거리에서 멀지않은 곳에 위치한 동명대장간을 찾았다. 4평이 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작업에 방해가 될까 봐 이리저리 피해 다니며 오늘날 대장간의 모습을 담아봤다.
농기구, 건설공구 제작 수리
마침 건설 현장에서 인부가 무뎌진 정을 한보따리 들고 와 내려놓는다. 아버지 강영기씨는 재빨리 훨훨 타오르는 화덕에 정을 넣고 요리조리 돌려가며 달군다. 벌겋게 달궈진 쇳덩이를 모루 위에 내려놓자 아들 단호씨가 해머로 두드리고, 아버지는 담금질을 한다. 달구고, 두드리고, 식히는 과정을 수차례 반복해야 하나가 완성된다. 부자의 일하는 모습이 박자가 척척 맞는다. 수십 개의 정을 모두 손질하려면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수리비가 큰 것은 하나에 1500원, 작은 것은 1000원이라니 좀 박하게 느껴진다.
“원래는 농기구, 건설공구들을 만들어 팔았는데, 농사짓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농업이 기계화 되고 공구들은 값싼 중국산이 밀려오면서 지금은 제값 받기가 힘들어요. 궁여지책으로 철물, 기성공구까지 판매 합니다.” 2대 사장 강영기씨의 말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직접 손으로 두드려 만든 공구가 공장에서 나오는 것보다 더 견고하고 오래가지요. 그래서 늘 저를 찾아오는 손님이 끊이질 않는 거구요”
취재하는 도중에도 공구 구입하려는 사람, 식당용 대형 칼을 제작 해 달라는 사람, 건설현장 인부들, 기다란 쇠막대를 본인의 용도에 맞게 구부리고 절단해 달라는 사람, 주말농장에서 쓸 도라지 캐는 농기구 사러 온 사람 등 정말 다양한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100년은 이어 갈 터
대장간은 1대 사장인 단호씨의 할아버지가 1940년 철원에서 시작한 것이 그 시초. 6.25때 천호동으로 옮겨 와 지금까지 이어 왔으니 그 역사가 짧지 않다. 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를 통틀어 유일하게 남은 대장간이라니 그 명맥을 유지하기가 만만치 않았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새벽 6시면 어김없이 무연탄으로 화덕에 불 지피는 일부터 시작한다. 2000도가 넘는 화덕 앞에서의 작업이 쉽지만은 않다. 유난히도 더웠던 올여름 얼마나 뜨겁게 일을 했을까! 겨울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일해야 하니 찬바람을 고스란히 맞는다.
“대장장이는 천한 직업이었습니다. 열네 살에 시작한 이 일을 중간에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지요. 워낙 힘이 많이 드는 일이잖아요? 처음엔 자식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았죠. 직장생활 하던 아들이 내 뒤를 잇겠다고 할 때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식이라 더 든든하고 보람도 느낍니다.” 또 강영기씨는 “건설경기가 살아 나 대장간 일도 더 많아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우물만 파다 보니 올해는 서울시로부터 전통 상업 점포로 지정이 돼 시민들에게 대장간을 홍보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 받고, 컨설팅과 저리로 융자도 받을 수 있게 됐어요. 가업을 이어 온 보람을 느낍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습니다. 솜씨도 있어야 하고, 힘도 좋아야 하며, 눈썰미에 끈기까지 요구되는 직업이죠. 전통방식의 대장간으로 100년을 채우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제가 만든 물건을 쓰신 분이 다시 찾아 주시고 잘 쓰고 있다고 말씀하실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3대 단호씨의 말이다. 힘든 일은 피하려고 하는 요즘, 앳된 얼굴이 영락없는 신세대인 아들 단호씨, 그러나 100년을 이어 가겠다는 목표를 얘기할 땐 대장장이의 우직함이 엿보였다.
해머로 일일이 때려 다듬던 것을 일부분 기계가 대신하고, 한때 5명이 함께 작업하던 대장간에 아들과 단둘이 일 하지만 이들 부자의 얼굴에서 장인정신의 고집스러움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홍주희 리포터 67959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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