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의 명산
얼음골케이블카 타고 영남 알프스에 오르다
해발 1천m를 10분만에 올라 다양하게 이어지는 등산코스
억새가 흐드러지게 핀 가을이다. 등산이라곤 하지 않던 아줌마도 운동화끈 불끈 매고 배낭하나 등에 매면 시시콜콜한 일상은 내려놓고 하늘을 등에 업은 산에 오를 것만 같다. 하지만 동네 뒷산이라면 몰라도 이름난 명산 장거리 산행은 겁부터 덜컹 난다.
이런 초보 등산객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지난 9월 오픈한 밀양 얼음골케이블카. 영남 알프스의 즐비한 명산들을 반은 먹고 들어가는 산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부산해운대에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언양으로 들어가면 얼음골 주차장이 금방이다. 거리는 문제가 아니다. 이미 그 명성에 버거운 인파. 주말은 서너시간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고 평일도 3시간 정도 각오해야 한다.
해발 1천m를 10분만에 올라
얼음골 하부승강장에서 출발하는 케이블카
해운대 신도시에서 뜻 맞는 아줌마 5명이 한 차에 올랐다. 아침 9시 출발. 1시간 30분이면 이동시간은 충분하다. 10시 30분 얼음골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조금 걸어올라 케이블카 하부승강장에 도착했다. 아뿔사~ 역시 대기가 장난이 아니다. 평일도 케이블카 승강장은 만원이다.
일단 표를 샀다. 대인 왕복 9천5백원, 소인 7천원이다. 편도는 대인 7천원, 소인 5천. 대기 시간이 좀 길어도 해발 1020m, 1.8km 선로를 10여분만에 올라간다니 포기할 순 없다.
상부 승강장에 올라가면 상부전망대 정면에 있는 백호바위를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걸어서 10분 정도 가면 하늘정원이 있다. 왕초보 등산객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1시간 산행에 천황산·능동산, 1시간 30분에 재약산·사자평·능동산, 2시간 30분에 백운산·간월산, 3시간에 가지산·신불산 등반이 가능하다니 골라 가는 재미도 쏠쏠할 듯. 우리는 1시간 30분에 가능한 사자평억새가 목표다.
준비해온 간식은 기다리는 동안 다 먹어 버렸다. 드디어 50명 정원에 초당 4m를 이동한다는 케이블카에 올랐다. 승객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지만 설레는 마음에 힘들지 않다. 어린 안내원의 구수한 사투리에 웃음보를 터트리며 해발 1천m를 어느새 다 올랐다. 참으로 기막히게 좋은 세상이다.
영남알프스의 명산을 한눈에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5분정도 거리에 하늘정원 전망대가 있다. 주변산세를 굽어보면서 멀리 가지산과 운문산이 눈앞에 펼쳐진다.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천황봉.
아직 단풍이 채 들진 않았지만 빼어난 산세에 마음을 홀랑 빼앗긴다. 상부승강장 정면에 백운산 백호바위가 뚜렷이 보인다. 정말 하얀 호랑이 한 마리가 밀양시를 향해 걸어내려 갈 듯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산들의 산봉우리가 그림처럼 쭉 펼쳐졌다. 이걸 못 보고 이 가을을 넘겼으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산세는 수려하고 가을바람조차 좋다.
천황산 방향으로 10여분 데크를 걸으면 하늘정원이다. 더 멋진 풍경을 기대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데크 사이사이 동물 모형도 있다. 어린 아이들을 위한 배려(?)일까? 겹겹의 산으로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드넓은 풍경에 인공물의 초라함이 도리어 대조를 이룬다. 누가 좁은 한반도라도 했던가. 이리도 산이 많고 저리도 하늘이 높은데···. 가까운 산빛과 먼 산의 빛이 다름을 불혹이 되어서야 제대로 아는 것 같다. 산은 산대로 좋고 하늘은 하늘대로 아름답다. 해발 1천m까지 케이블카를 놓은 사람의 능력에 감탄하고 올라왔다면 인간의 힘에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자연의 조화에 가슴을 쓴다.
억새밭에서 사진 찰칵, 막걸리도 한 잔
(좌)등산객들이 상부승강장에서 하늘정원으로 걸어가고 있다. (우)하늘정원에서 천황산방향으로 펼쳐진 억새밭
하늘정원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내려다보이는 억새밭에 이끌리듯 내려갔다. 우리의 목표는 사자평억새건만 당장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마음을 다 주었으니 이를 어쩌나?
막 피어나는 억새가 제대로 멋을 부린다. 억새밭으로 들어가 사진 찍는 풍경은 80년대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어째 그 시절 포즈밖에 나오지 않는지. 그래도 꼭 찍고 싶다. 한결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에는 몇십년 시간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나보다.
억새밭을 걷다 5명의 아줌마에게 포착된 간이식당 하나. 이 높은 고원에 널빤지로 대충 만든 주막이다. 온두부에 김치, 시원한 막걸리를 어찌 그냥 지나칠까? 따뜻한 어묵 국물도 빼놓을 수 없다. 평소 술이라곤 못 먹던 아줌마도 막걸리 한잔을 사뿐히 걸친다. 바람이 부어주고 하늘이 마시는 뽀얀 막걸리 한잔도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사자평 거쳐 표충사 가는 길 강추
사자평억새로 갔다 다시 돌아와 하행케이블카를 타자니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12시가 넘으면 하행도 대기가 길다고 한다. 차라리 편도를 타고와 사자평에서 흑룡폭포를 지나 표충사로 걸어가는 것이 좋았겠다. 아쉬움을 달래고 하행케이블카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가슴에 담은 첩첩산과 흐드러진 억새로 마음보따리가 든든하다. 내려가서 차로 1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호박소에나 잠시 들리자고 입을 모았다. 참으로 잊지 못할 깜짝 가을여행이었다.
김부경 리포터 thebluema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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