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탐방길-고창 선운사 꽃무릇길
선운사 도솔천에 비친 애절한 임을 향한 잔상
지상 화원, 선운산 꽃무릇에 넋을 빼앗기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이 가을이 배가 부를대로 불렀다. 들판은 누런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산과 들에 맺힌 과실들이 소임을 다하고 거둬줄 차례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가을은 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 배가 부를 수밖에.
그래서 가을은 넉넉하고 여유로운 계절이라 했던가?! 하지만 곡식과 열매 말고 꽃으로도 풍요로움을 더하는 곳이 있으니 여인의 마음이 아니 설레일 수 없다.
봄이면 백설위에 동백이, 또 가을이면 붉은 꽃무릇으로 일상에 찌든 사람들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고창 선운사(문화재 관람료 성인 3,000원)로 떠나본다.
* 꽃무릇
다시 봄이 찾아온 듯 꽃길 열린 선운사
전주역에서 1시간 반가량 산길과 들길을 달려 도착한 선운사는 이른 시간임에도 몰려든 관광객들과 사진작가들로 꽃무릇의 인기를 실감케 한다.
선운사는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선운산 도립공원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로 이른 봄 한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병풍처럼 사찰을 감싸 안는 동백숲과 가을이면 사찰 진입로부터 계곡을 따라 붉은 융단을 깐 듯 그 화려함을 자랑하는 꽃무릇 군락으로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운산 선운사라 알고 있을 터인데 일주문에는 도솔산 선운사라고 쓰여 있다. 선운사가 있어 선운산이라 널리 불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본디 산이름은 도솔산이라고 한다.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을 가리키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으로 모두 불교와 관련있는 이름이다.
전국 최대의 꽃무릇 군락지인 고창 선운사에 꽃무릇이 만개하면서 경내가 장관을 이루었다. 꽃무릇이 활짝 핀 것을 보니 가을이 왔음은 확연하고 더불어 선운사의 단풍이 은근히 기대되기도 하지만 꽃무릇은 자신의 붉은 자태를 단풍과 섞고 싶지는 않은가 보다.
* 도솔천에 반영된 매혹적인 꽃무릇 군락
매혹적인 꽃무릇의 선과 빛깔이 황홀경이라!
땅과의 무릎정도의 간격을 두고 아래는 연둣빛, 위로는 진한 붉은빛을 발산하는 꽃무릇은 세상에 전해지는 가슴 찡한 사연 그대로 사모하는 임과 사랑을 맺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그들처럼,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는 애잔한 전설속의 꽃이다.
사람들은 보통 꽃무릇을 ‘상사화’라고도 부르는데 ‘상사화’와는 차이가 있다. 상사화는 봄에 잎이 난 후 꽃은 여름에 피고 꽃색은 주로 분홍빛이다. 반면 꽃무릇은 초가을에 꽃이 핀 뒤 잎이 나며 꽃의 색깔도 붉은 색을 띄고 있다. 이처럼 꽃이 시든 후에 잎이 나와 겨울을 나는 것이 꽃무릇이다. 꽃무릇은 ‘석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석산’은 ‘돌마늘’ 이란 뜻으로 땅속의 구근(비늘줄기)이 마늘과 닮아 지어진 이름이며, 꽃이 무리지어 난다해서 ‘꽃무릇’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꽃무릇은 붉은 꽃잎사이로 굵고 진하게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수술이 인상적인데, 이 수술은 마치 마스카라로 치켜 올린 여성의 속눈썹 같다. 꽃무릇은 주로 도솔천 주변에 흐드러지게 피는데 계곡물에 반영된 붉은 빛과 연등의 색상이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 마애불좌상
선운사에서 도솔암에 이르는 꿈의 산책로
리포터는 오늘 선운사에 이르러 고찰을 둘러보는 것보다 도솔산 일주문 부근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산길을 따라 도솔암까지 올라본다. 이 길은 본디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나 초가을 양갈래로 늘어서 있는 꽃무릇을 벗삼아 거닐어 보는 것도 좋다.
일주문에서 도솔암까지는 약 4km로 걸어서 약 1시간 반정도 싸드락싸드락 걸으면 가을의 정취를 만끽 할 수 있다.
계곡을 끼고 거니는 덕에 시원한 물소리와 함께 골짜기 시원한 물이 꽃무릇과 어울려 한폭의 그림과 같아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또 때 아닌 등산객들의 비명?소리도 들을 수 있는데 마치 여고시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친구들과 물장난을 치는 아낙들의 마음은 아직도 십대인 듯 싱그럽다.
도솔암에 오르는 길목에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중생구제를 위해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일산 수도한 곳으로 전해지는 진흥굴과 그 옆에 수명이 600년도 더 되었다는 장사송, 하도솔암에서 상도솔암에 이르는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도 만날 수 있다.
여느 사찰에서 어렵지 않게 꽃무릇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유가 리포터는 정말 전해져 내려오는 젊은 스님과 여인의 전설 때문이라 여겼는데, 본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무릇의 비늘줄기의 녹말을 이용해 불경을 제본하고 탱화를 표구하는 데 사용했기에 꽃무릇을 주로 절에서 재배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그래서 하동 쌍계사나 영광 불갑사 등의 여러 사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꽃이 꽃무릇인 그 이유다.
매년 초봄이면 빨간 동백꽃들이 피어났다가 뚝뚝 떨어져 땅을 붉게 물들인다 하여 유명세를 타는 선운사, 봄이면 화사한 벚꽃과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 계곡과 함께 어우러져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데.
찬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이 초가을, 애절함을 뿜어내는 가냘픈 자태와 붉은 빛깔로 넋을 빼앗아 가는 꽃무릇의 유혹에 넘어가고 싶구나!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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