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에 합창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남자의 자격’을 보며 누구보다 향수에 젖었던 이들이 있다. 1980년 아마추어 합창단으로 시작해 1981년 전국합창경연대회에서 당당히 대상을 받았으나 해체의 아픔을 겪었던 대전합창단의 단원들이 그들이다.
시간과 추억, 합창으로 승화 =
대전합창단은 1981년 당시 심대평 대전시장이 오찬석상에서 ‘전국대회 1위에 오를 경우 시립으로 창단할 것을 약속’함에 따라 대전시립합창단으로 거듭났다. 그해 전국합창대회에서 대통령상을 거머쥔 것이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아마추어 합창단의 기적 같은 이변이었다. 그러나 시립합창단원으로 영입된 단원들과의 불협화음과 IMF 경제 위기 악재가 겹치면서 끝내 해체라는 비극을 맞았다.
테너 파트를 맡고 있는 송형래(45) 사무국장은 “해체 기간 동안 늘 노래와 벗이 그리웠다”고 회상했다.
그가 대전합창단에 몸담았던 시기는 열정 가득한 고교 시절이었다. 1997년 해체의 아픔을 겪을 때까지 송 사무국장에게 대전합창단은 정신적 휴식처였다.
송 사무국장은 15년 만에 다시 모여 합창을 하니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나는 느낌이란다.
그는 “4개 파트가 하나의 목소리를 낼 때, 우리는 ‘엑스터시’라 부르는데 그땐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짜릿짜릿 하죠. 합창은 중독성이 강해서 맛을 알면 빠져 나오기 힘들어요”라고 쾌활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15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모인 단원들이 어느덧 35명. 신입단원과 원년 멤버가 보기 좋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소리를 갖고 놀다’ =
대전합창단 지휘를 맡고 있는 박창헌(57)씨는 하모니를 잘 끌어내기로 정평이 나있다. 박창헌 지휘자의 합창 수업은 ‘열정’과 ‘웃음’, 두 단어로 응축할 수 있다. 발성 연습과 음악 이론 수업도 빠지지 않아 여느 성악 전공 학과의 수업에도 뒤지지 않는다.
“노래를 하는 사람은 소리를 갖고 놀아야 해요.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나오니 ‘나 하나쯤이야’하는 마음으론 합창을 할 수 없어요. 소리만큼 정직한 게 없거든요.”
박창헌 지휘자는 대전합창단을 ‘마음의 위안을 얻는 곳’이라 말했다. 취업과 생업에 지쳐 고단했던 삶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악보를 담당하고 있는 윤혜경(49·소프라노)씨도 박창헌 지휘자와 같은 생각이다. 결혼 후 합창을 잠시 그만둔 시점에서 합창단 해체 소식을 듣고 친정이 없어진 것 마냥 그렇게 허전할 수 없었다. 다시 만난 합창단은 이런 윤 씨에게 월요병 발병 요인이 돼 버렸다.
“연습이 월요일 오후 7시에 있거든요. 월요일만 기다려서 월요병이에요.”
맑은 종처럼 울리는 윤 씨의 웃음 속엔 합창에 대한 열정이 녹아 있었다.
이들 합창단은 내년 2월에 있을 ‘재창단 연주회’ 무대를 목표로 오늘도 노래를 한다.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지금 그들은 즐기고 있다.
문의 : 010-4293-0077
안시언 리포터 whiwon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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