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인] 정신여고 3학년 하은주

사회복지사 꿈꾸는 ‘봉사 달인’

지역내일 2012-09-04

고3 막바지라 심신이 지친 요즘도 에너지가 넘치는 하은주양을 보고 친구들은 시샘어린 질문을 던진다. “뭐가 그리 신나니?” 그를 반듯하게 지탱해 주고 있는 힘은 ‘봉사’다. “대학에서는 물론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겠죠. 컴퓨터 실력을 도사 수준까지 높여서 UCC 교육 콘텐츠를 능수능란하게 만든 뒤 SNS로 보급할 거예요. 복지 선진국인 독일과 핀란드에 가서 그들의 복지 시스템을 속속들이 배우고 싶어요.” 대학 합격한 뒤의 버킷리스트가 그의 입에서 술술 나온다. 미래 인생의 나침반 역시 ‘봉사’에 맞춰져있다.
 ‘경험이 공부다’는 분명한 교육관을 가진 엄마 덕분에 은주양은 어릴 때부터 학원 대신 집근처 청소년수련관에서 살았다. 농구, 탁구 등 각종 스포츠를 배우고 캠프, 온갖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랐다. 덕분에 마당발 사교성과 기획력은 자연스럽게 길러졌다. 


볼리비아 9살 소녀에게 받은 감동
 “어릴 때부터 ‘리더십이 있다 ’, ‘적극적이다’ 등 내 능력 이상의 과분을 칭찬을 많이 받고 컸어요. 그런데 중3 무렵 지독한 사춘기를 겪었죠. 친구들은 외고, 과고 등 분명한 목표를 정하고 매진하는 데 나는 적성도, 진로도 오리무중이었어요. 다만 또래에 비해 경험치만 다양할 뿐이었죠.”
 아픈 성장통을 겪던 중 우연히 국제봉사단체인 컴패션을 알게 되었고 부모를 잃은 볼리비아 9살 소녀 예니와 편지후원을 시작했다. “의례적이고 가식적인 내 편지와 달리 ‘사랑한다, 기도해 주겠다’는 꼬맹이 소녀의 진정성 담긴 글귀가 위로가 되더군요. 그 후 봉사에 참여하는 내 태도가 진지해졌고 결국 ‘사회복지사’라는 인생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볼리비아 소녀와는 아직까지도 편지를 주고받는다. 그 후 하양은 본격적인 자원봉사자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많은 사람 만나며 ‘세상 공부’하다
 수서청소년수련관 동아리에 가입해 지적장애인 복지관을 찾아가는 놀이치료 봉사를 시작했다. “봉사팀이 방문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천진난만하게 반겨주는 장애인들을 보며 감동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어요. 놀이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는 여럿이 서점,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으며 많은 공을 들이며 만들었지요.” 2년간 꼬박 복지관을 다니며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일방통행식 놀이치료가 아니라 장애인과 이심전심 소통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이곳 외에도 중증장애인이 모여 사는 마을로 자원봉사를 나가고 청소년수련관에서 마련한 바자회에서는 피자를 만들어 판 수익금으로 불우청소년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한국컴패션 청소년홍보대사로 대한민국 청소년박람회 참여해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팔망미인 자원봉사자로 활약했다.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학교 친구들도 국제 기구인 컴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반 친구들이 힘을 모아 컴패션 UCC 동영상을 만들고 후원에도 동참했다. “우리 반 전체가 후원하는 아이티에 사는 6살 꼬마 사진이 교실 칠판에 붙어있어요. 함께 남을 돕는다는 묘한 유대감과 기쁨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아요.”

루게릭병 앓는 ‘구두닦이 목사님’의 가르침
정신여고에서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노래봉사 동아리 활동을 하양은 고교시절 최고의 추억으로 꼽는다. 매일 아침 7시까지 등교해 쉬는 시간, 점심시간, 방과후까지 1학기 내내 42명 단원이 똘똘 뭉쳐 노래연습을 했다. 지도 교사의 매서운 질책, 엄한 규율 때문에 단원들끼리 갈등도 많았지만 제각각의 음색이 고운 화음으로 맞춰지는 과정에서 다들 색다른 경험을 했다.
 “노래 지옥훈련을 마친 뒤 일주일 동안 서울에서 전라도 장흥까지 요양원, 군부대, 교도소 등지로 순회공연을 다녔어요. ‘아빠 힘내세요’ 합창을 듣고 눈물을 쏟는 중년의 재소자들, ‘고향의 봄’을 따라 부르며 아련한 추억에 잠기는 요양원 어르신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어요.” 이처럼 ‘음악이 훌륭한 소통 도구’라는 깨달음,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배운 ‘세상 공부’는 하양의 사고를 넓고 깊게 확장시켜주었다.
 특히 ‘구두 닦는 목사님’으로 유명한 김정하 목사와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구두 닦아 번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며 아름다운 삶을 사세요. 루게릭병에 걸린 지금도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라고 평온하게 말씀하시는 목사님을 보면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습니다.”

 꿈을 향해 매순간 최선을 다해 경험의 폭을 넓히며 보낸 고교시절이 그는 무척 소중하다고 말한다. “사회복지사가 장래 희망이라고 말하면 주위 어른들은 한결같이 ''뭐 먹고 살려고 하니?''라며 걱정하세요.(웃음) 하지만 내 목표는 변함이 없고 ‘지금’의 복지와 ‘미래’의 복지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생각해요.” 19살 여고생에게서는 ‘자기 삶의 기획자’로서 옹골진 의지가 느껴졌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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