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선사시대 마연토기 재연하는 윤정훈 도예가
“폭넓은 스펙트럼으로 오묘한 우주의 시간대 포착”
선사시대 마연토기를 현대로 옮겨 … 16일부터 대전 모리스갤러리에서 전시회
<나비는 날개가 가장 무겁고, 목수는 망치가 가장 무겁고, 화가는 붓이 가장 무겁다.
그러나 가장 무거운 것을 가장 가볍게 다룰 때 비로소 나비는 나비이고, 목수는 목수이고,화가는 화가이다.
나는 흙이 무거운가? 손이 무거운가? 맘이 무거운가?>
-윤정훈 작가노트 중에서
윤정훈(52)작가는 유약을 사용하지 않는 무유 도기에 색과 빛을 이용한 ‘색면추상’들을 담아낸다. 윤 작가는 선사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토기의 기법 중 마연소성 토기에 주목한다. 기물의 기능이 부여되던 처음 시점의 토기, 그중에서도 마연토기의 단계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작가는 “그 전의(역사이전) 창조는 기존의 것들에 무언가를 하나 더하는 것이다. 공주· 부여 박물관에 가서 토기를 보면 검은색(탄소)에 역사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계룡산 동학사 근처에 조선시대 가마터가 있는데 ‘철화분청사기’라는 조선의 특이한 도자기 역사를 담고 있어 도자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윤 작가는 작업이 막히면 조선의 도공을 떠올리며 가마터를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 옛날 토기들을 보며 그 시대 작가와 만난다. 시대를 이어주는 공감이 있다는 것. 윤 작가는 한반도에서 익숙하게 체화시킨 그 무엇이 반복되어 왔다고 생각한다.
정신에서 멈춰야함을 판단하는 결단의 순간이 중요하다 =
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조형에서 ‘기’로 돌아왔다. ‘마연토기’를 재연하는 쪽으로 공부를 더했고, 기물에 충실한 주제를 선택해서 장식요소를 색과 불로 한정시켰다.
윤 작가는 “단순함은 극도의 정교함이다. 쳐 낸다는 것은 ‘물(物)’이 아니라 ‘정신’에서 오는 것이고 불가능한 극도의 것”이라며 “단순한 것이 제일 어렵다”고 말한다.
윤 작가는 몇 해 전 작고한 고 이종수 도예가를 자주 생각한다. 고 이종수 도예가가 얘기한 ‘작가는 머리에서 어느 시점에 손을 놔야할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아니라 정신에서 멈춰야함을 판단하는 결단의 순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윤 작가는 토기 작업을 하면서 결과물에 대해 이외의 즐거움을 만나 재밌다. 손에서 떠난 작품이 불로 완성되고, 이 순간이후엔 수정이 불가능하다. 경험에 의한 감이 있다. 그럼에도 자유롭지 않다. 조절과 의외성이 ‘토기’의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윤 작가는 “작품을 가지고 있을 땐 모르는데 선보일 땐 벌거벗겨지는 느낌이 든다. 거기서 끝나면 좋은데 내장까지 내보이는 생각이 들어 겁이 나기도 한다”며 전시에 대한 속내를 말한다.
생활자기, 심성을 바꿀 수 있다 =
음식을 먹는 것과 끼니를 때우는 것은 다르다.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이 그 사람의 심성을 바꾼다. 윤 작가는 “밥상머리에서 색과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며 “아이에게 좋은 식사 습관과 이야기를 통해 인성을 키우고, 정성이 담긴 음식을 도자기에 담아서 주면 아이의 심성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깨지지 않는 그릇을 사용하며 시간에 쫓겨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고 있는 우리네 음식문화를 바꿔야 한다. 조심조심 깨지지 않게 아끼고, 찬찬히 지켜보는 관심의 손길이 절실하다.
요즘 대학에서는 수요가 없어 도자기 관련학과를 만들지 않는다. 응용미술과 순수미술과의 차이가 있다. 윤 작가는 “뉴욕 알프레드 요업대학에서는 미래에 대한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며 “표현의 자유를 돈으로 판단하지 않고, 질 높은 작품에 대한 토론을 계속해 나가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다”라고 강조한다. 우리지역에서는 도자기를 전공하려면 목원대 도자학과가 유일하고, 그 외에 부여에 전통문화대학교가 있다고 전한다.
유년의 기억을 담은 도자 색, 예술적 감성으로 =
윤 작가의 도자기에서는 그릇의 입체감보다 색으로 인한 입체감이 먼저 느껴진다. 그 색이 빛으로 표현되고 깊이를 느끼게 하는 빛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무한한 우주를 꿈꾸게 한다.
“농익은 주황계열의 붉은색은 차라리 색이 아니라 빛이라 불러 마땅한 자연에서 꺼낸 빛깔이다. 그것도 채도가 다른 계통색이 한 기물 안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펼쳐내며 오묘한 우주의 시간대를 포착해 낸다.”
최공호(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미술평론가) 교수의 작품 색에 대한 평이다.
윤 작가의 도자 색은 유년의 기억을 담고 있다. 그는 “어찌 보면 내 생애에 걸쳐 예술적 감성에 영향을 줄 만큼 신통한 ‘트라우마’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한다. 논산시 등화동이 고향인 윤 작가는 어릴 적 서향의 시골집 들마루에서 바라보던 성동뜰의 찬란한 저녁노을을 잊지 못한다.
윤 작가의 작품에서는 여름의 뜨거운 해가 뜨고 진다. 아침 해보다 석양이 붉은 빛으로 불타고, 붉은 노을에 잠자던 감성도 따라 일렁인다.
윤 작가는 미국작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색면추상에 넋을 놓았다. 그것도 실제 그림 앞에서가 아닌 화집을 통해서. “화집을 뜯어 내, 책상 앞 벽에 꽂아놓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면 희열 같은 느낌보다 눈물이 났다”며 “찬란하지만 어둠이 깃들어 있고, 모노톤의 어둠에도 실낱같은 희망이 바람의 속도로 지나가는 느낌을 보았다”고 회상한다.
노을이 지던 강과 들을 담은 기물에 옷을 입히는 수작업. 토기는 자연에 던져 놓는다. 그 자연은 불이다. 토기의 매력은 기물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윤 작가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 유년의 기억을 덧대어 조형과 기물로 빚어냈다.
천미아 리포터 eppen-i@hanmail.net
윤 작가는 흙은 생명을 낳고 생명을 죽여 다시 생명을 낳는 생출의 근본이며, 그 모두를 생명으로 껴안고 식혀가는 세월의 기록 그 자체라고 말한다. 옛날 토기로 거슬러 올라가 그 당시의 마연토기를 재연하려 애썼다. 작품의 이름은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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