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머무는 마당 깊은 집, 한옥에서의 휴(休)
맹렬히 존재를 알리며 매미의 울음이 깊어가던 여름.
은은한 소나무 향으로 고단한 도시민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한옥 ‘효종당’을 찾았다.
이제는 과거 고향의 모습이 사라진지 오래인 용인 동백.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촌에서 불과 2~3분 거리에 거짓말처럼 자리하고 있는 한옥.
집성촌을 이루고 살던 밀양 박씨 문중의 터를 지키고자 10여 년 전부터 선산 일대에 집을 짓기 시작한 박천희(65)씨의 오랜 공력으로 완성된 집이다.
그 역시 나고 자란 고향마을을 떠나 도시민으로 살던 시절, 고향 땅이 개발이라는 이유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아내를 설득해 귀향을 결심하게 됐단다.
그리고 조상의 묘가 내다보이는 산자락 밑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한옥을 짓겠다는 소박한 출발이 동력. 터를 닦고 백두대간 금강소나무와 천연황토를 구해 서까래를 올리면서 10여년에 걸친 대공사로 이어졌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일상에 지친 도시민에게 위로와 쉼을 주는 그곳, 효종당의 한옥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우리 땅에서 자생한 소나무, 효종당을 이루다
찾아가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네비게이션을 믿고 출발했다가 엉뚱한 고속도로에서 헤맨 후였다.
그런데 막상 제대로 찾고 보니 눈앞에 펼쳐진 한옥이 꿈인 듯 새삼스럽다. 빽빽한 아파트촌에서 불과 2분 거리임에도 깊은 산중에 펼쳐진 도량 같다. 마치 미아자키하야오의 영화처럼 터널을 지나니 다른 세상이 펼쳐진….
동백에 이런 깊은 산중이 숨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주변 산세에 병풍처럼 둘러싸인 한옥의 위용에 한 번 더 놀란다.
주인장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선 효종당은 바람결에 실려 온 은은한 소나무향으로 리포터의 긴장을 일순간 모두 풀어놓아 주었다.
“후딱후딱 짓는 퓨전식 한옥이 아니라 옛날 전통 방식 그대로 집을 짓고 싶었어요. 우리 땅에서 자생한 소나무로 지어야 얼과 혼이 담긴 한옥이 될 거라 생각했죠.”
한옥에 문외한이던 주인장 박천희씨. 강원도와 경북 일대 소나무 산지를 돌면서 틈틈이 한옥 공부를 했단다. 그러다 어렵게 인연이 닿아 마음이 맞는 도편수(고건축 분야 최고 장인)를 만나면서 그가 원하던 한옥의 모습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수원행궁의 80%를 복원한 장인이었는데 그분이 꼭 국산 소나무여야 하겠냐고 몇 번을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렇다고 대답하니 어렵겠지만 해보자고 승낙하셨죠.”
현실과 타협이 안 되는 성정이 닮아서였을까. 1999년에 허가를 받아 시작한 집짓기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나 비로소 상량식을 했다. 입주를 하고도 장독대며 연못, 주변 정리를 하다 보니 10년이 지나서야 얼추 한옥의 틀이 완성됐다.
# 도심의 한옥, 자연의 소박함을 담아내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는 걸 집 지으면서 실감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 걸 미리 알았으면 아마 못 지었을 거예요.”
하지만 힘든 만큼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종중 행사나 문중 제사를 치루며 한옥의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효종당이 알려지면서 세상에 하나뿐인 전통한옥을 가족끼리만 공유하면 아깝지 않느냐며 주변 지인들이 옆구리를 찌르기 시작했다.
때마침 한국방문의 해를 맞아 한옥 게스트하우스가 상승세를 타고 있던 터. 내 집과 접목되리란 생각을 못했던 주인장의 마음이 돌아선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지난해 9월 16일. 한국관광공사의 전통한옥체험농가로 지정받아 게스트하우스로 첫 선을 보이게 되었다.
“당초에 계획을 갖고 지은 집이 아니라서 아직도 준비해야 할 것이 많고 숙박하시는 분들의 불편 사항을 개선하는 것도 제 숙제입니다. 그래도 도심 가까이에서 한옥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귀향을 준비하며 고집스럽게 전통방식의 한옥을 지었고 양봉을 주업으로 성실히 꿀 농사도 지었다. 안주인 역시 텃밭에 곰치며 취나물 오이순 등 산나물을 기르고 장독마다 된장과 고추장을 담갔다.
쌀밥에 고깃국이 으뜸이던 시절이 지나고 산나물과 집 된장으로 끊인 시골밥상이 대접받기 시작했다. 주인장 부부가 꾸려오던 소박한 삶이 시대 흐름과 자연스럽게 맞아진 것.
“효종당에 오시는 손님들도 그런 소박한 밥상을 원하면서 안식구가 내어준 상차림을 많이 좋아해 주시죠. 제가 농사지은 꿀도 손님들에게 알릴 수 있으니 그것도 덤이고요. 웃음”
# 살수록 더 좋아지는 집, 한옥의 매력 속으로
효종당의 게스트하우스는 안채 건너편 사랑채와 행랑채에 마련돼 있다.
조금 널찍한 사랑채에는 15명 정도가 머물 수 있어 소규모 단체의 워크숍이나 세미나 등도 가능하다. 행랑채는 7~8명 정도로 가족이 쉴 수 있을 정도의 공간.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간 다녀간 손님 중에는 인근 분당과 수지 죽전 뿐 아니라 민속촌이나 에버랜드를 방문하기 위해 올라온 지방 손님들도 상당수다.
“번잡하지 않으면서 조용히 쉬어가기 좋은 곳이라고 평가들을 해주십니다. 또 멀리 가지 않고도 한옥을 만날 수 있으니 반갑다고 하시고요.”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어도 높은 천장과 소나무의 습도조절로 자연 시원함을 얻고, 겨울엔 참나무 장작으로 뜨끈한 아랫목 체험을 할 수 있는 한옥의 장점을 그대로 살렸다.
안마당 곳곳에 피어난 양귀비, 백합, 금강초롱 등 들꽃들을 감상하는 것도 눈의 호사. 처마와 마당 농기구 곳곳에 알을 놓고 새끼를 기르는 부산한 새들의 먹이 나르기를 구경하는 것도 진귀한 볼거리다. 효종당을 둘러싼 멋스런 향나무와 가지런히 정돈된 장독대를 둘러보며 산책을 하는 것도 쉼을 주기에 충분. 내친김에 누가와도 짖을 줄 모르는 견공 누렁이와 눈을 맞추며 담소를 나누는 것도 즐거운 놀이가 된다.
“소나무 송진은 세월이 지나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나무의 중심을 더욱 단단하게 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한옥이 더욱 견고해지는 이유죠. 소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솔 향의 은은한 기운도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요. 살수록 더 좋아지는 집. 한옥이 주는 매력을 체험해 보시려면 많이들 놀러오세요. 하하하”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효종당 이용 tip
* 사랑방(솔실)-15명 내외로 소규모 단체, 세미나, 워크샵 가능 (복합기와 프로젝터 준비될 예정 / 주중: 12만원 / 주말: 15만원)
* 행랑방(향실)-작은방 2개로 나뉘어 있음. 6~7명 내외 가족 단위 가능 (주중: 10만원 / 주말: 13만원)
* 객실 내 편의시설- 다기구(차), 무선인터넷, 화장대
* 식사: 효종당에서 직접 담근 된장, 고추장, 청국장과 직접 농사지은 농산물,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 그리고 용인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이용한 신선하고 건강한 로컬푸드 한식 : 1인당 1만원 (숙박 예약 시 함께 예약)
* 유의사항-화장실은 안채에 있는 공동화장실과 샤워시설 이용. 취사시설은 따로 없고 바비큐 통, 야외용 테이블, 의자, 마루는 준비되어 있음.
* 찾아오는 길-네비에 용인 동백동 세인트폴 어린이집 검색. 조금 더 지나 터널 진입 후 전방 300m
* 예약문의-031-282-6779 / 011-717-6106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