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마다 달리는 사람들 ‘일산일요마라톤’

같이 뛸래요? 일요일 새벽 호수공원 한 바퀴

지역내일 2012-07-08

일요일마다 달리는 사람들 ‘일산일요마라톤’
같이 뛸래요? 일요일 새벽 호수공원 한 바퀴


일요일 새벽 6시, 달콤한 잠에 푹 빠져 있을 그 시간에 호수공원을 달리는 사람들이 있다. 마라톤 동호회 ‘일산일요마라톤’ 회원들이다. 2005년 8월에 창단해 올해로 7년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일요일 새벽 약속을 오랜 시간 지켜오고 있는 것은 저마다 간절한 약속을 하나씩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삼형제가 보스턴 마라톤에 나가자는 약속
강한주 씨는 두 형들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다.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삼형제가 함께 나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보스턴 마라톤대회는 연령별 기록 기준이 있다. 1959년생인 강 씨는 3시간 35분대에 풀코스를 완주해야한다. 그의 기록은 아직 3시간 50분대에 머물고 있다.
“10월 춘천마라톤대회때 열심히 해서 기록을 만들고 내년에는 가보는 것이 목표예요. 마음은 굴뚝같은데 기록이. 허허.”
갈 길은 멀고 마음은 바쁘다. 생업에 몰두하다 보면 몸 관리가 소홀해 지기도 한다. 그에게 일요일 새벽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도와주는 소중한 시간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두 형과 함께 달리겠다는 약속이, 일요일 새벽 그를 호수공원으로 나오게 한다.


건강을 되찾겠다는 약속
조광진 씨는 지난해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진단 받고 혼자 호수공원 둘레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산일요마라톤 회원들을 우연히 마주쳤고 곧 동호회에 가입했다. 평일은 혼자서, 일요일은 동호회 사람들과 함께 달렸다. 전에는 딱히 운동을 하지 않았다. 업무와 잦은 술자리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도 바쁘다고 여겼다. 그러나 건강이 걸린 문제였기에 절박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달리기 시작한 지 3달 만에 고지혈증을, 6달 만에 고혈압 약을 끊었다.
대회에도 참가했다. 올해 2월에 열린 고구려 마라톤대회에서 2시간 57분 59초를 달렸고, 한 달 뒤 동아마라톤대회에서 1초를 앞당겼다.
“저한테는 인생의 반환점이 됐어요. 운동 하다 보니 표정도 밝아지고 술을 마셔도 다음 날 아침에 10km 달리고 땀 흘리면 정상으로 돌아와요.”
그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다. 돈도 들지 않고 시간이나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고, 반바지에 운동화만 입으면 어디서든 달릴 수 있는 마라톤의 매력에 푹 빠졌다. 사람들에게는 ‘4시간 달리는 남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가족을 위해 생명을 지키겠다는 약속
황경환 씨는 6년 전 간암 초기 판정을 받은 후 일 년 동안 항암 치료를 받았다. 머리카락이 빠질 만큼 힘든 치료에도 운동은 놓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호수공원 서 너 바퀴 뛸 동안 그는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나 암과의 싸움에서 점점 지쳐갔다. 동료 직장인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것을 본 후 우울증마저 찾아왔다.
“나도 저렇게 죽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어요. 어차피 한 번은 죽는 건데 포기해 버릴까, 죽고 싶은 심정도 들고.”
항암치료도 힘들었지만 여자들만 앓는 줄 알았던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도 부끄러워 대놓고 치료를 받으러 갈 수도 없었다. 그래도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치료를 계속했다.
항암 치료 마지막 즈음 인천대교를 지나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결승점에 들어올 때 눈물이 흘러내렸다.
“뛰어 들어가면서 울었어요. 가족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거, 그 고마움을 내가 느낀 거지.”
포기했으면 그만인 마라톤 대회가 그에게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생명을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병원만 다녀도 힘든 항암 치료 기간에 인천대교를 달렸다는 자부심과 가족에 대한 소중함은 가슴에 남아 있던 우울증까지 씻어갔다. 그는 완치 판정을 받은 지 5년이 되어간다.


나를 기다려준 친구와 함께 달리겠다는 약속
동호회 활동은 혼자서 달리는 일과 다르다. 가장 큰 점은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다. 일산일요마라톤에는 부부 회원이 많다. 전금란, 김순란, 최춘옥 씨도 남편을 따라 동호회에 나왔다. 2년 전, 그이들은 날마다 호수공원에서 달리자는 약속을 했다. 힘들면 걷더라도 날마다 만나자고 했다. 혼자라면 선뜻 일어나기 힘든 날도, 기다리는 친구가 있으니 이불을 박차고 나서게 됐다.
중년 여성의 몸이 갑자기 달리기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조금씩 자신에 맞게 훈련하는 것이 필요했다. 김순란 씨도 처음에는 100m부터 달렸다. 500m에 도전하고 나니 1km를, 다음엔 10km를 달릴 수 있었다.
“처음 100m 달릴 때 죽을 거 같이 힘들었죠. 1km 넘기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조금씩 넘어가면서 하면 돼요.”


마라톤은 곧 삶이라는 깨달음
이해영 씨는 일요일 새벽 3시부터 호수공원을 달린다. 7번째로 참가하는 울트라마라톤대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다.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는 100km를 달린다. 42.195km를 달리는 일반 마라톤대회의 두 배를 훌쩍 넘는 길이다. 일반 마라톤대회를 나가다 울트라마라톤대회에 나간 어느 날, 70km를 넘어가던 지점에서 문득 깨달음이 왔다.
“이제 30km 남았다고 생각하니 다 온 것 같은 거예요.”
달리면서 힘들기는 10km나 20km 때나 다를 게 없다. 그러다 결승점이 되면 얼마 안 남았다고 힘을 내게 된다. 100km를 달려도 똑같다는 것을 느낀 후, 그는 삶에서 긍정적인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일요일 새벽 6시, 호수공원 2주차장으로 나가면 일산일요마라톤 회원들을 만날 수 있다. 회원 30여 명으로 조촐하지만 모임을 불릴 생각은 없다. 다만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는 ‘부인 회원’들을 합류시켜 부부들이 함께 달리는 동호회로 내실을 기하는 것이다. 매달 한 번은 심학산 둘레를 달린다.
문의 cafe.daum.net/ilsansunmarat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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