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구는 연이어 두 번째 여성 구청장이 당선되었고 올 총선에서는 2곳의 지역구에서 여성 국회의원을 배출시켰다. 덕분에 ‘여성 정치 1번지 송파’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7월 여성주간을 맞아 박춘희 구청장과 박인숙, 김을동 국회의원 세 여걸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치색은 ‘쏙 빼고’ 곡절 많았던 각자의 인생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로 친숙한 신율 명지대교수가 순발력 있는 말솜씨로 세 여자를 쥐락펴락하며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도록 분위기를 유도했다. 송파여성문화회관에서 지난 26일 열린 토크쇼를 토대로 박춘희, 박인숙, 김을동 3인의 스토리를 재구성해 보았다.
‘인생 역전, 10년 노력하니 되더라’ _ 박춘희 송파구청장
홀로 남매를 키우는 싱글맘. 30대 중반 무렵 그의 자화상이었다.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홍대 앞에서 분식집을 하며 억척스럽게 돈을 벌었다. 자식들을 번듯하게 키워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가 버팀목이 되었다. ‘대학원까지 나와서 왜 그렇게 사느냐’ 가족들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떡볶이를 팔았다. 나름 돈 버는 재미도 쏠쏠했다. 하지만 전 남편이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데려간 뒤로 허탈감이 몰려왔다.
인생의 루저가 되고 싶지 않았고 전환점이 필요했다. 38살. 가장 어렵다는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맘먹고 신림동 고시촌에 짐 싸들고 들어갔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연거푸 시험에 낙방하면서 자괴감에 휩싸였다. 하루 18시간씩 독하게 공부, 11년 만에 합격하면서 인생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9전10기’를 이루게 한 ‘지독한 끈기’가 그 뒤 박춘희 구청장의 인생 나침반이 되었다. 최고령으로 합격한 뒤에 사법연수원 최초의 여성자치회장을 맡으며 젊은이들 틈바구니 속에서 주눅 들지 않고 특유의 뚝심을 발휘했다. 그 뒤 변호사, 겸임교수, 구청장 등 자신의 삶을 다채롭게 디자인하며 살고 있다.
“인생을 60년쯤 살다보니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걸 깨달아요. ‘하찮은 이 일을 꼭 해야 할까’ 하며 꾀가 날 때가 많지요. 그래도 꾹 참고 하세요. 훗날 좋은 보상으로 돌아옵니다. 내 삶이 그랬습니다.” 박춘희 구청장의 진심이 담긴 한마디였다.
나를 키운 힘은 ‘지금 당장 하자’ _ 박인숙 송파(갑) 국회의원
경기여고, 서울대 의대 졸업. 수재였던 그는 줄곧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언니가 엄마처럼 그를 살뜰히 챙기며 각종 공연장에 데리고 다녔다. 언니의 ‘예술 조기교육’ 덕분에 문화에 대한 안목도 일찍 트였다. 어릴 때부터 배운 피아노 실력은 수준급이며 고전무용도 출줄 안다. 아산병원 시절, 심장병 어린이와 미혼모 돕기 자선음악회에 ‘피아노 치는 의사’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팔방미인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곱게 자란 ‘의사 선생님’이 바로 그다. 울산의대학장을 지낸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직선 여성의대 학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며 서울아산병원 소아심장과 교수와 선천성 심장병 센터장도 지냈다. 현재 한국여의사회 회장직도 맡고 있을 만큼 화려한 스펙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의사들 세계에서 늘 튀는 존재였던 박인숙. 화려한 경력을 한풀 벗겨보면 ‘관행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며 자청해서 힘들게 산 개인사가 엿보인다. 성차별 심한 의사 세계에서 내숭떨지 않고 할 말은 꼭 하면서 ‘늘 일을 저지르며 살다보니 이 자리에까지 왔다’고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딸만 셋 둔 그는 일에 미쳐 ‘방목’하며 아이를 키웠지만 친정과 시댁의 도움과 희생 덕분에 워킹맘으로서 당당히 살 수 있었다는 고마움도 덧붙인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혼신을 다해 심장병 걸린 아이를 간호하는 젊은 엄마를 볼 때 마다 뜨거운 모성애에 감동 받았고 그들을 꼭 돕고 싶었다는 ‘엄마 의사’로서의 속내도 털어놓는다.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세요. 왜냐면 오늘이 남은 인생 중에서 가장 젊은 날이잖아요.”라며 박의원 특유의 쿨한 답변이 돌아왔다.
배짱 있게 도전하라 _김을동 송파(병) 국회의원
할아버지는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 아버지는 주먹왕으로 훗날 국회 오물투척 사건의 주인공인 김두환 의원, 아들은 배우 송일국. 화려한 가계도의 주인공이 김을동 의원이다. ‘남들도 나를 여성으로 안 봤고 나 스스로도 여성임을 자각하지 못한 채 살았다’는 고백처럼 그는 장부 스타일이다.
젊은 시절 ‘화려한 아버지’ 덕분에 맘 고생을 많이 하고 자랐다. “평생 ‘김두환’ 명의의 재산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머니가 삯바느질로 생계를 책임지며 나를 가르쳤죠. 내가 28살 무렵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눈물이 단 한 방울도 나지 않을 만큼 아버지는 내게 아버지가 아니었죠.”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서슬 퍼런 독재정권 아래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공인 김두환’의 진가를 그 스스로 국회의원이 되어 보니 알겠다는 고백을 덧붙인다.
연예인을 지망하는 자녀 때문에 속앓이 하는 가정이 많다며 탤런트 출신으로 또 배우를 아들로 둔 어머니 입장에서 조언 해달라는 요청을 받자 아들 송일국의 사연을 털어놓는다. “미술을 전공한 우리 아들은 용돈 벌려고 탤런트를 시작했어요. 숫기가 없는데다 소질도 보이지 않았죠. 그러면서 4~5년의 무명시절을 꾹 참고 견디더니 숨은 끼가 보이고 지금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연예인은 되기도 어렵지만 데뷔 후에 경쟁은 더 치열합니다. 끼와 근성이 필수죠.”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