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무더위에 내 몸이 지쳐갈 때,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수같이 심신을 시원하게 적셔줄 그 무언가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차!”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얼음동동 띄운 과일화채도 아니요, 쫄깃쫄깃한 떡과 제리를 잔뜩 넣은 팥빙수도 아닌 ‘차’가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다고?
차가운 듯하면서도 따뜻하고 뜨거운 듯하면서도 포근히 감싸주는 올곧은 성정을 가져 시시비비가 없다는 차를 찬양하는 ‘만가은 다락회(다락지기 오은경)’를 만나 차에 대한 미담을 나누어본다.
차는 만남이요, 인연을 이어주는 마음의 길
대부분의 사람들이 첫 만남에서 차를 사이에 두고 서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만나서 차를 주고받으며 찻자리를 함께하다보면 어색한 마음이 한풀 꺾이고 깊고도 깊은 삶의 이야기들을 토해내곤 하는데.
요즘은 세상의 이익에 눈이 멀어 소중한 인연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다락회원들은 오로지 ‘차’라는 그 매개체 하나로 끈끈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다락지기 오은경씨는 “10년 넘게 다원을 운영하다가 5년 전부터 만가은에서 다도를 배우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모임을 만들게 되었어요. 다락회를 거쳐 간 이도 꽤 되지만 현재 13명 정도의 회원들은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다락회는 봄학기, 가을학기로 나뉘어서 개강하는 차 문화원과는 달리 학기제 없이 다만 차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 운영되는 모임이다.
일년에 다섯 번 정기모임(1월 신년회, 3월 봄꽃맞이, 5~6월 발효차 녹차 덖기, 9월 염색, 12월 송년회)과 소소한 모임 등으로 세월없이 살며 회원들은 두터운 친분을 쌓아가고 있다.
마음씨, 솜씨까지 고루 갖춘 신사임당표 여성들의 집합소
다도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겁게 생각하는데 차 마시기는 마음을 다스리는 일과 같다. 누구나 건강하려면 먼저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 그래서 다락회원들은 심신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 차를 나눈다.
다락회는 차 한 잔으로 시작한 인연이지만 시기질투하는 이도 없고, 잘난 척 하는 이도 없이 오로지 받기보다 주려고 하는 마음이 크다. 피를 나누진 않았지만 자매와 다름없이 마음을 나눈다는 그들은 고운 마음씨 못지않게 하나같이 솜씨들도 대단하다.
어떤이는 정말 떡을 잘 만들고, 또 어떤이는 퀼트를, 그리고 수를 놓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이와 사진, 오카리나, 춤까지 다방면에서 뛰어난 솜씨를 자랑하는 이들이 모였다.
“회원 중 소안(호)의 바느질은 수준급이예요. 제가 회원들에게 차를 가르치면 소안은 회원들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품종류나 찻잔 받침 등 다양한 생활용품에 수놓기를 가르쳐 줍니다.”
이렇듯 내가 가진 것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서로 나누려고 하는 마음과 주부의 모습으로 살아온 그 세월속에서 습득한 솜씨들이 바로 다락회원들의 재산인 셈이다.
늙어 내 집의 내 방 하나 내어주며 같이 늙고픈 다우(茶友)들
남편이 서점을 운영하다 뒤늦게 도예공부를 다시 시작하면서 남편의 작업장을 물색하던 중 전주에서 조금 떨어진 완주 비봉에 촌가를 구입하고 차를 가까이 하게 된 오은경씨.
아이들 뒷바라지 하느라 여념이 없던 젊은 시절, ‘자식들 장성하면 나만의 취미하나는 꼭 가져야지!’하고 다짐했던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차는 상처주고 않고 온화하게 감싸주며 언제나 변함이 없지요. 저는 차로 인해서 많이 가지런해지고 평화로와졌어요. 지천명에 이른 저에게 차는 제 친구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차는 혼자마실 때도 좋지만 마음 맞는이랑 같이 마시는 것이 더 좋다.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으면 같이 차를 나누는 다락회는 그래서인지 마음도 얼굴도 모두 닮았다.
마지막으로 오은경씨는 “나이들면서 여자가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은 바로 차 생활을 가까이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세월 앞에 미인(?) 없다지만 얼굴에 분칠하지 않아도 예뻐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차라고 하니 리포터도 내심 구미가 당긴다.
가족은 아니지만 회갑을 맞이하는 회원들과 기념여행이나 행사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오은경씨. 입버릇처럼 “같이 살고 싶다!”는 회원들을 위해 늙어 내 집의 방하나 기꺼이 바쳐 양노당으로 쓸 용의가 있음을 밝히는 그는 세상의 그 어떤 여성보다 아름답다.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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