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은 ‘독진경’. 한번 시작한 일은 무조건 끝을 보는 성격인데다 뭐든 지독스러울 만큼 열심히 하는 그를 보고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도진경은 공부벌레다. 다들 한숨 돌리는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그는 수학문제를 푼다.
뇌종양 수술 후 몸도 마음도 아팠던 1년
이렇게 독하게 공부하는 이유는 ‘잃어버린 1년’ 때문이다. 고등학교 입학한 뒤부터 진경양은 자주 머리가 아팠다. 평소 스포츠를 즐기는 건강 체질이었던 터라 가족들은 공부스트레스 때문에 그렇다며 별스럽지 않게 여겼다. 게다가 늘 영재소리 듣고 자란 한 살 터울 오빠한테만 부모님의 관심이 쏠리자 진경양은 사춘기의 묘한 반항심까지 겹쳐 아파도 꾹 참았다.
하지만 영어단어를 아무리 외도 금방 잊어버리고 먹은 걸 위액까지 다 토해내는 날이 잦았다. 약을 먹어도 별 차도가 없자 여름방학 무렵 병원을 찾았고 MRI를 찍고 나서야 뇌종양인줄 알았다. “뒷머리 쪽에 8cm 가량의 종양이 발견됐어요. 이틀만 늦게 알았어도 시신경이 끊어져 시력을 잃고 수술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급박한 상항이었데요.” 그는 담담하게 2년 전 이야기를 들려준다.
갑자기 찾아온 병마. 열일곱 진경양은 뇌종양의 심각성을 모른 채 수술만 잘 끝내면 훌훌 털고 예전 생활로 돌아올 줄 알았다. 그러나 수술 후유증은 감당하기 버거웠다. 수술직후 우울증이 찾아왔고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어 혼자서는 잘 걷지도 못했다.
뇌과학자를 꿈 꾸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진경양. 특유의 ‘독기’로 희망의 끈을 꼭 부여잡고 뇌종양과 맞섰다. 재활치료부터 차근차근 시작, 상태가 점점 좋아졌고 지금은 고된 고3 수험생활도 별 무리 없이 소화하고 있다.
“발병 원인도 잘 모르고 수술 외에는 별다른 약도 없는 병이 뇌종양이에요. 얼마나 아프고 두려운 지 너무나 생생하게 겪었던 터라 나도 한번 ‘뇌’의 미스터리를 푸는데 한번 도전해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도진경양의 장래 희망은 뇌과학자.
뇌, 생명공학 관련 책을 찾아 읽고 뇌와 관련된 각종 강연회를 쫓아다녔어요. 뇌과학 올림피아드대회에 참여해 이 분야 권위자들을 만나보며 궁금증을 하나씩 풀어나갔다. 뇌 구조, 신경전달 과정부터 뇌종양, 우울증, 뇌졸증 등 뇌 질환의 종류와 원인, 뇌파를 이용한 치료법, 다양한 진단기기 등을 폭넓게 배웠다. 그러면서 MRI의 원리를 설명한 책을 읽으며 환자가 저렴한 가격에 손쉽게 뇌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거나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계와 뇌의 관계를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뇌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공부가 재미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신비로운 뇌 학문은 앞으로 연구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점도 매력적이었고요. 게다가 내가 죽을 만큼 아파보았기 때문에 이 분야를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들었죠.” 뇌종양 환후 카페에 가입해 소아 뇌종양 어린이들과 놀아주거나 행사 진행을 돕는 봉사활동도 틈틈이 펼치고 있다.
책을 통해 만났던 동물학자 제인구달, 나이팅게일, 슈바이처 박사, <그 청년 바보의사>로 잘 알려진 故 안수현의 인생을 되짚어 보며 그는 ‘남을 돕는 삶’의 밑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이 악물고 공부, 떨어진 성적 다시 올리다
진로는 뚜렷해졌지만 1년여 투병기간 중 공부는 손을 놓은 터라 진도를 따라잡기가 버거웠다. 다들 전력질주 중인데 혼자서만 멈추어 섰다는 불안감, 조바심이 엄습했고 뚝 떨어진 성적 때문에 좌절도 겪었다. “힘들 때마다 ‘왜 하필 나한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 원망도 많았고 스스로를 멍청이라고 비하하며 들볶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남과 비교하지 말고 훗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안해 졌어요.”
그의 일상은 단조롭다. 아침 5시30분 기상, 곧바로 EBS 언어, 영어 지문을 공부한 후 등교. 방과후 수업, 학원 수강 마친 뒤 독서실에서 자습 한 뒤 12시쯤 귀가해 잠자리 들기. 똑같은 일상을 스케줄 표 써가며 빈틈없이 실천한다.
“수업 시간엔 집중해서 들으며 기본 개념 다지기, 학원에선 심화 학습, 그리고 혼자 공부하며 내 것으로 만들기. 공부는 이 과정의 반복이죠. 성적은 참 정직해요. 공부한 딱 그만큼 나와요.” 현재 도양은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진경이는 집념이 대단해요. 뇌종양이 완치 된 게 아니라서 늘 건강상태가 늘 염려되는 상황인데도 공부에 대한 열정이 한결 같아요.” 담임을 맡고 있는 이은파 교사의 칭찬이다.
“아프고 난 뒤 뭐든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라고 말하는 도양. “부모님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늘 성화세요. 하지만 뇌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분명한 목표가 고3의 힘든 터널을 지날 수 있는 힘이 되고 있어요.” 다부지게 말하는 그를 보며 ‘포기하면 절망하고 시도하면 도약한다’는 어디선가 읽은 구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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