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스에서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하는 일이 즐거울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자신을 가다듬고 마음에 쉼표 한번 찍는 여행은 어떨까.
2012년 절반이 지나간 시점. 리포터도 심기일전하고자 백범 김구 선생이 1년 동안 수행했던 곳으로 알려진 공주 마곡사의 템플스테이에 참여해 봤다.
마곡사는 풍마동 장식이 있는 보물 제 799호 5층 석탑이 있다. 무르익은 신록이 싱그러운 마곡사는 절 앞뒤를 감싸듯 흐르는 계곡도 있어 찾는 이의 마음도 씻어줄 것 같은 청량감이 가득한 절이다.
* 솔바람길 포행
천년고찰에서의 하룻밤 =
템플스테이는 크게 두 가지다. 방해받지 않고 여유로운 휴식을 즐기고 싶다면 휴식형, 사찰의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체험형을 선택하면 된다.
아산에서 온 이효순(49)씨는 아내와 함께 오랜만에 보는 세 딸들을 데리고 마곡사를 찾았다. 모처럼만에 여유를 누리기 위해 가족여행을 왔다고.
'솔바람길 포행’이라는 산행은 십승지(삼재팔난을 피하는 땅)의 하나로 알려진 마곡사에서도 가장 지기가 강하다는 '군왕대’를 기점으로 돌아 내려왔다. 산행 내내 딸들과 정담을 나누는 이효순씨의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저녁공양 후 정강스님의 설명에 따라 한 명씩 범종을 치는 기회를 가졌다. 커다란 종을 직접 쳐볼 수 있다는 것도 새롭고 가까이서 듣는 종소리는 뭔지 모를 아우라가 온몸에 전해졌다. 그래서일까. 종을 치고 내려오는 체험객들의 얼굴이 점점 환해졌다.
첫날 가장 강도가 센 체험은 뭐니 뭐니 해도 108 염주 꿰기. 절 한 번 하고 다시 무릎 꿇고 앉아 염주 한 알 꿰고…. 그렇게 땀에 흠뻑 젖도록 108배를 마쳤다. 다들 힘들어 했지만 정신이 맑아진 듯 하나같이 개운한 기색이다.
사람과의 사이에서 무척 마음 상한 일이 있었다던 최진주(31·평택)씨가 “아직 그 사람이 이해는 안 되지만 108 염주 꿰기를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며 고운 미소를 지었다.
딱히 힘들 것도 없어보이던 일정은 하나하나 거쳐 갈수록 인내와 깨달음을 주려는 매운 맛이 느껴졌다.
그윽한 밤이 되자 체험객들을 모두 천년고찰 마곡사의 품에 안겨 깊은 잠을 청했다.
* 발우공양
산사만의 깊은 맛, 새벽예불과 발우공양 =
다음날 새벽 4시 새벽예불시간. 산사의 기운 때문인가. 신기하게 평소에는 어림도 없는 시간에 눈이 떠졌다. 꼭 이 시간에 해야 하는 이유는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음의 기운이 양으로 바뀌기 때문이라고.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된다. 템플스테이의 장점은 강요하지 않는 것. 단, 예불 참여 시간과 공양 시간은 시켜야 한다. 예불 후 아침에 다시 행한 108배는 흐트러진 심신을 가다듬기 좋았다.
정옥분(40·청주)씨는 새벽예불을 드리기도 전에 일어났다. “어둠속을 거침없이 흐르는 계곡을 조용히 바라보자니 그간 힘들었던 일이 싹 씻겨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며 “오길 잘했다”고 홀가분해 했다.
산사 체험으로 발우공양을 빼놓을 수 없다. 발우는 승려들의 밥그릇을 일컫는다. 호선스님의 가르침 아래 발우공양 하는 시간은 엄격함이 배어있었다. 공양이 끝나면 숭늉으로 발우를 닦아 남김없이 그 물을 마시고 다시 ?천수’라는 물로 발우를 헹궈냈다. 체험객들은 자신의 마음을 닦듯 음식 먹은 그릇을 정성들여 닦았다.
체험객 중 유일한 청소년인 김건우(17·미국 뉴욕)군은 “한국에 올 때마다 아빠가 한국을 잊지 않게 이런 곳에 데려 오신다”며 “색다른 체험이라 생소했지만 재밌었다”고 말했다.
내 마음 비우기는 내가 하는 것 =
모든 일정을 마치고 헤어지는 시간이 왔다. 체험객들은 1박 2일이지만 한 곳에서 만난 인연이 소중하다며 시작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생기 있는 표정으로 아쉬운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하루 더 머무르겠다는 부부가 있었다. 경기도 과천에서 온 김영대(42)씨와 전영지(42)씨다. 그들은 큰맘 먹고 한 달 휴가를 내 템플스테이 전국투어를 하는 중이었다.
부부는 산사의 고즈넉함을 두루 경험하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살기 바빴는데 몸도 마음도 쉴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통해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고. “아직 의문을 가지고 있다”며 “템플스테이투어를 마칠 무렵 내 안에서 답을 구하지 않겠냐”고 김영대씨는 잔잔히 대답했다. 아내를 바라보며 지그시 미소를 보내는 그의 얼굴은 어느새 산사를 닮아있었다.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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