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제로, 중1ㆍ초4학년 남매 키우는 소신 맘 김지혜씨

지역내일 2012-07-15 (수정 2012-07-15 오후 11:16:05)

학원 보낼 돈 모아 넓은 세상 보여주고 있어요






첫 만남은 우연이었다.
용인시청에서 열린 고교 평준화 공청회 장소였으니 말이다.
토론이 막바지를 향해 가던 무렵, 참석한 학부모들의 발언시간에 차분하지만 다부진 어투로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논하던 그녀.
중 1학년, 초등 4학년 남매의 엄마이자 사교육 광풍 시대에 학원문턱을 밟지 않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소신 맘 김지혜(40ㆍ용인 신갈동)씨다.
학원 한 두 개쯤 보내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뭐가 그리 대수냐 싶지만, 대한민국에선 이미 일반적인 공식에서 벗어나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
하지만 현재가 행복한 아이가 미래에도 행복한 사람이 될 거란 믿음과 아이들 인생 최종 고지가 대학이 아님을 부드럽지만 강한 어조로 전하는 그녀. 열혈 맘 김지혜씨의 소신 교육 보고서를 들여다 보았다. 




학원대신 아이들과 해외 배낭여행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엄마가 키워야 된다는 생각에 어린이집도 안 보냈어요. 대신 집 근처 주말농장에 가서 매일 채소 키우고 흙 만지며 놀게 했죠.”
당시엔 남편이 해외 근무 중이라 언제고 해외 이사 짐을 꾸릴 생각에 옷이며, 책이며 모두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골라 입히고 읽혔단다.
똑같은 책을 마르고 닳도록 읽으며 나중엔 새로운 이야기도 만들어내고 글씨도 저절로 깨친 아이들.
그렇게 아이들 스스로 필요한 때가 되니 배움의 과정이 자연스레 일어나고 물꼬가 트이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동갑인 남편과도 교육관이 비슷했다. 조기교육이나 보습학원 대신 넓고 다양한 세상을 보여주는 것에 투자를 했다. 큰아이 3학년 때는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해외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5학년이 되던 해에는 김 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과 방콕, 마카오 등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여행사를 끼지 않은 가족 단독의 배낭여행이었다.
가장 저렴한 호텔을 찾아다녔고 경비를 아끼기 위해 늘 걸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었지만 아이들은 무거운 짐을 메고 하루에도 몇 시간씩 걷는 여행에 불평 없이 잘도 따라와 주었다. 
“제가 대학 1학년 때 처음으로 일본 배낭여행을 혼자 다녀왔는데 그때 문화적 충격이 굉장히 컸어요.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많은 것들이 저에게 큰 자극이 되었죠.”
그때의 기억에 아이들에겐 넓은 세상을 일찌감치 보여주고 싶었다는 김 씨.
“아이들 옛날 일기장을 보면 여행 가기 전과 갔다 온 후에 글씨체가 달라져 있는 거예요. 심리가 변하면 글씨체가 달라진다는데 여행이 치유의 효과를 주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웃음”




여행, 운동, 책…아이들을 키운 8할
여행과 운동, 그리고 책. 김 씨가 학원 대신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의 성장 밑거름이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한 남매는 생각도 야무진 편. 아이들의 일기장은 평소에도 2페이지가 넘어갈 만큼 표현력이 좋다. 물론 엄마가 옆에서 늘 책 읽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도 한 몫을 했단다.
여기에 보태 학교시험 전날까지도 출석 도장을 찍어야 할 만큼 운동을 좋아하는 남매.
중1학년 딸은 아직도 쉬는 날 없이 태권도장으로 향할 만큼 열성적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팁. 남매는 저녁 8시 30분이면 잠자리에 든단다. 일찍 잠을 자니  그만큼 일찍 일어나 아침시간을 활용한다.
“저는 아이들 시험지 풀리고 엄마가 공부시켜주지 말라는 주의에요. 아이가 학교 공부만으로 80~90점을 맞아오면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아이죠. 그런데 엄마가 억지로 끼고 훈련시켜 점수를 만들면 초등학교 땐 엄마가 만든 성적, 중학교 땐 학원에서 만든 성적이죠. 결국 아이는 스스로 공부할 기회도 없는데다 정작 자기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무얼 좋아하는지 모르고 경주마처럼 대학만 목표로 달리죠. 그러고도 대학에 가서 또 헤매는 거예요.”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딸은 중간고사 첫날을 망치고 돌아와 한참을 울더니 그 힘으로 다음날 늦게까지 공부를 하더란다.
지켜보는 엄마 마음도 편하진 않았지만 스스로 역경을 극복하는 법도 이런 과정이 쌓여 얻어진다고 김 씨는 믿는다. 중학교 땐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 자기만의 공부 스타일을 만들고 고등학교 때 그 노하우로 진짜 진검승부를 하게 되리라는 것을.




목표는 대학이 아닌, 행복한 아이
“아이들 학교 선생님이 학원 안가는 아이들은 특징이 있다는 거예요. 짜증을 안내고 화를 잘 안낸다는 거죠. 여러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특징이래요.”
학교와 학원으로 늘 쫓기며 사는 요즘 아이들. 스트레스나 분노조절이 어렵고 학교 폭력이나 게임중독으로 나타나는 게 어른들의 욕심에서 비롯되지는 않았나 자문하게 된다는 김씨.
이렇듯 다부진 소신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 엄마들의 공세(?)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어떤 엄마들은 저더러 방임을 넘어 방치한다고 나무라곤 해요. 아이가 나중에 원망할 거란 말도 하고요. 그런데 그게 다 부모들의 기대 같아요.”
이 지점에서도 김 씨는 여지없이 단호하다.
“아이는 아이 인생을 사는 거예요. 아이가 원하지 않을 땐 그저 아이 하는 대로 지켜봐 주는 것. 그것이 아이 안에 있는 성장 원동력을 키워주는 일인 것 같아요.”
매 순간 물 흐르듯 놔두다 보니 아이들이 저마다 질서를 찾아갔고 좀 더 일찍 독립적인 아이들이 되어 감을 느낀단다.
“목표가 대학이 아니라서 할 수 있었어요. 대학을 가던, 못 가던 아이들이 행복하게 저희들의 길을 갈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 모든 배후에는 학교가 있다. 김 씨가 소신 있게 유지해온 학원에 보내지 않고 학교 공부만으로 충분한 교육. 그것이 가능하려면 학교가 제대로 서야한다.
아이들 학교운영위원으로 3년째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 그동안 공모제 교장선생님도 초빙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학교 문턱을 오갔다.
아이들이 다 컸을 때 학원으로 떠밀지 않아 고맙다고 말해주면 그 걸로 족할 것 같다는 김씨.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는 학원에서 배울 수 없음을 일찌감치 깨달았기 때문일까. 다부진 의지가 묻어 나오는 김지혜 씨의 미소에서 남매의 행복한 웃음이 겹쳐 보였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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