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실시한 학업성취도평가를 대비해 그간 전국 곳곳에서 파행수업이 자행됐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 중 충남은 84.6%로 파행 수업 비율이 가장 높았고 우려했던 폐단은 도를 넘는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 18일과 19일 양일간 아산시 ㅇ초등학교에서 파행수업뿐만 아니라 비상식적인 체벌까지 벌어졌다. 영어교사가 성취도평가 대비 과정에서 6학년 아이들을 90대씩 때렸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6학년 담임교사도 점수에 따라 아이들을 귀족에서 노예까지 신분을 구분했던 일도 함께 알려져 학부모들을 경악케 했다.
* “학습파행 학교체벌 포함한 인권유린 엄단하라”
일제고사반대 아산지역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27일 3시 아산교육지원청에서 내일신문이 단독 보도한 ‘회초리 90대와 노예 사건’과 관련, 충남도교육청 및 아산시교육지원청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대책위는 “일선학교가 이런 광기어린 폭력을 휘둘렀던 건 일제고사 때문”이라며 “이번 사태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 및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규탄했다. 또한 “김종성 교육감과 김광희 교육장은 학습파행과 학교체벌을 포함한 인권유린을 엄단하라”고 촉구했다.
90대씩 체벌, 담임은 점수로 ''귀족'' ''노예'' 구분 =
이 학교는 성취도 평가 대비를 위해 4월부터 매일 6시 40분까지 남는 파행수업을 실시했다. 6월 들어서부터 강도가 심해져 영어교사는 급기야 학생들에게 90대씩 때리는 체벌을 가했다. 담임교사는 사회교과 신분제를 설명한다는 차원으로 시험점수에 따라 아이들을 귀족 평민 천민 노예 등 신분을 구분 짓는 등급을 나눴다.
아이들은 맞은 이유에 대해 “성취도평가 준비용 프린트물을 안 가져와서”라고 말했다. 영어교사는 “아이들이 공부를 안 하고 말을 안 들어 3월부터 친 시험 중 18회 분량을 한 회당 5대씩 계산, 19일 영어시간에 한 명당 90대씩 때렸다”고 답했다. 영어교사는 최하 15대에서 최고 90대까지 발바닥을 때렸고 한 반 25명 중 대부분 아이들이 이 날 90대씩 맞았다.
담임교사는 시험을 못 본 아이들에게 다른 교사에게 가서 "나는 수학을 못해서 노예입니다"라고 말하게 하고 그 교사의 확인을 받게 했다. 그러나 담임교사는 “나는 수학문제에 사로잡힌 노예입니다. 문제를 못 풀었습니다”라고 시켰다며 “열심히 하는 아이들에게 보상은 해준다”고 해명했다.
교사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아이들은 공부를 못해서 맞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고 심지어 노예와 놀지 말라는 담임 말대로 노예 취급 받은 친구들을 한동안 왕따 시켰다.
자존감을 상실한 아이들, 분노한 엄마들 =
사실을 알게 된 엄마들은 "너무나 기기 막힌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곧바로 학교로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다.
부모들의 항의를 받자 담임교사는 “아이들이 제안해 게임 형식으로 신분을 나눴고 아이들이 즐겁게 받아들였다”며 “아무리 아이들이 원하는 게임방식이지만 신분을 나누는 명칭부터가 잘못”이라고 시인했다. 영어교사 또한 성취도평가 대비를 위해 과도하게 체벌했다고 사실을 인정했다. 일부 아이들 증언에 의하면 “영어교사가 지난해는 200대까지 때린 사실이 있었다”며 “엄마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미정(가명)씨는 “아이가 왜 갑자기 학교 가기 싫어했는지 왜 양말을 두개씩 신었는지 이런 이유라고는 상상을 못했다”며 눈물을 글썽이며 가슴아파했다.
신씨는 믿었던 학교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퉁퉁 부은 아이의 발바닥을 보며 신씨는 오열했다.
더 큰 문제는 아이는 이미 자존감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공부를 못 할까요…. 왜 나는 안 되는 걸까요…."
아이의 울음 섞인 그 말이 신씨를 울분에 쌓이게 했다.
교장은 “사건이 일어나는 날 출장 중이었다”며 “영어교사는 올해 4년차로 열의가 넘쳐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고 담임교사도 아이들 의견을 반영한다는 것이 이런 문제를 낳은 것 같다”고 해명했다. 교장은 학부모들에게 담임교사와 영어교사가 사과하는 선에서 사건을 매듭지었다고 밝혔다.
신씨는 교장이 과연 몰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성취도 평가 대비 극단적 과열 사례” =
아산교육지원청 이미영 장학사는 “강하게 지도하겠다”며 “안타깝고 창피하다”고 말했다. 이 장학사는 일주일 전 리포터가 성취도 평가 대비 과열 양상을 취재하러 갔을 때 “조사 시 파행수업 사례는 없었다”고 답했다.
김광희 교육장은 “성취도 평가는 누적되는 학습결손을 지도해서 학력을 향상시키자는 큰 목적을 가졌다. 교육계나 학부모가 100% 따라온다면 뭐가 걱정이겠냐”며 “사실을 확인해 교사의 의도를 알아보고 책임을 묻겠다”고 답변했다.
일제고사반대 아산지역공동대책위원회 박준영 위원장은 “이번 일은 성적만능, 학벌만능으로 교육을 몰고 갔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학교서열을 위해 아이들을 도구로 사용했고 교사의 비상식적 수준을 아이들에게 기형적으로 습득시킨 사례”라고 말했다. 또한 박 위원장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과 철학 없이 정책을 펼치는 교육관계자들 책임이 크다”며 “방조하거나 따라간 교장과 교사들도 책임이 있다. 방관한 학부모들도 자성할 문제”라고 짚었다.
ㅇ초등학교는 지난 2010년 학력향상중점학교 우수학교로 선정됐으며 지난해는 100대 교육과정 최우수학교로 선정돼 각종 우수사례로 언론에 보도된 바 있다.
노준희 리포터 dooai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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