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들- 서린낙지&호박넝쿨 대표 강주희
지금은 쉼표, 여자 강주희로 도약할 날을 꿈꾸며!
그저 낙지가 좋았을 뿐이다. 무교동 낙지를 사다가 한두 달이고 밥에 비벼먹을 정도로 끔찍한 낙지사랑이었다. 솜씨가 있는 것도, 사업운영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1990년 서린낙지는 그렇게 첫 단추를 뀄다. 강주희 사장의 말을 빌자면 아마도 운명이었지 싶다. 도통 억척스런 아줌마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천생 여자 강주희. 어떻게 23년이란 세월을 보냈을까, 한숨 돌리고 보니 어느덧 그는 자기성찰의 길목에 서 있다.
사장 강주희_ 좋아하던 ‘낙지’로 잘 나가는 ‘서린낙지’대표가 되다
‘낙지집 한번 차려봐.’ 친정오빠의 툭 던진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남편, 시댁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살림만 하던 애가 뭘 하겠느냐며, 차리자마자 망할 게 뻔하다며 말렸다.
“말도 못하게 내성적이었어요. 큰아이 낳고 키우는 동안 정말 집밖에 나가본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목소리도 엄청 작았었는데, 그나마 요즘 조금 커진 거예요.” 리포터가 듣기엔 강주희 사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직나직하고 우아한 사모님 태가 난다. 그런 그가 뭔가에 홀린 듯 남편에게 사정사정해 당시 지번도 없던 법원사거리 근처에 ‘서린낙지’를 오픈했다. 허허벌판에 달랑 건물 하나였던, 비가 많이 오면 잠기기 일쑤였던 수원의 외곽지역에서 그는 그저 하루 20만원만 팔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서툴렀던 그때, 오죽 뭘 몰랐으면 오는 손님 다 받다가 동이 튼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얘기다. 그래도 그리 오래지 않아 식당을 조금 넓힐 수 있게 됐고, 작은 가게에 세무조사를 나올 만큼 손님들로 북적대는 수원의 대표적인 ‘서린낙지’가 됐다.
“경영마인드 같은 건 없었어요. 인복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라고 부를 정도로 고마웠던 주방장 덕분에 낙지양념도 배우고, 이후에 매뉴얼도 만들 수 있었어요. 정말 요리솜씨는 없었지만, 미각과 후각, 시각이 발달해서 음식을 보기만 해도 맛을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도 도움이 됐고요.” 남자로 오해받을 만큼 짧은 커트머리에 앞치마 질끈 두르고 주방과 홀을 오가며 다부지게 일만 했다. 오랜 단골손님들은 강 사장이 주인인 줄 몰랐다고 한다. 그는 그냥 아줌마이고 싶었다. 사장, 경영인이라는 호칭 때문에 손님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는 게 싫었다. 많은 말을 나누진 않았지만, 자신과 손님 간에는 인간적인 만남과 교류가 있었던 것 같다고 그는 말한다.
엄마 강주희_ 아이들의 삶에 누가 되지 않는 엄마이고파~
엄마 강주희에게 육아는 전환점 없는 가파른 쉼표 찍기였다. 20대,30대,40대에 9살, 6살 터울로 아이 셋을 낳았다. 그러다 보니 늘 배가 불러있었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어느 날은 단골손님이 ‘이제 아기 다 낳았느냐’며 늙은 호박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아직도 육아 중이잖아요. 아들이 귀한 집안에 늦둥이를 낳아서 감사하긴 한데, 막내아들한테 제일 미안해요. 나이 많은 엄마에, 공감대 형성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요즘 때에 맞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지 절실하게 깨닫고 있어요.”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아이에게 보탬이 되는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엄마직업란에 절대 ‘장사’를 쓰지도 못하게 했다. 장사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 때문에 생활이 무질서하다는 얘기를 들을세라 가정교사를 두면서까지 아이들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아이들은 잘 자라줬지만, 세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담대함을 키워주지는 못했다. “어느 날 보니 내가 슈퍼우먼이 되어있더라”는 강 사장은 ‘엄마가 없으면 안 돼’를 부르짖는 아이들을 볼 때 미안하면서도 한없는 자책감이 든다고. 엄마로서는 아쉬움이 남을지 모르지만, 경영인으로서는 성공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굳이 성공했었다, 과거형을 고집한다.
“재작년 낙지 먹물 중금속 사건도 그렇고, 프랜차이즈 낙지집의 등장, 주5일제 수업의 여파로 지금은 과도기도 아닌,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죠. 육아도, 가게도 해답은 없지만,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으니 조금씩 세상이 들어오고, 진짜 강주희가 보이기 시작해요.”
여자 강주희_ 마음과 생각 비우기, 자신을 위한 진정한 삶
막연히 꿈꿔왔던 퓨전한정식 ‘호박넝쿨’은 지난해 문을 열었다. 아늑한 공간에서 부담 없는 가격으로 엄마가 아닌 여자로 편안하게 즐기고 가길 원했다. 덜 벌더라도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든다는 생각은 호박넝쿨에서라고 달라질 리 없다. 맛과 요리의 가짓수에서 손님들은 상당히 만족해한다. 주변에선 맛집에 도전하라고 권유도 하지만, 그건 절대 반대. 100%라고 자신할 수 없다. 결여되어가는 자신감, 내 것을 다 소진한 것 같은 기분, 요즘 그의 삶은 ‘자기성찰’로 점철돼 있다.
“지금껏 장사하면서 실패한 적이 없다 보니까, 천년만년 잘될 줄만 알았죠. 모든 게 내게 주어진 거라 생각하고, 잘잘못을 따질 겨를도 없이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이해와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순응하며 살았고요. 어쩌면 그건 저의 교만이 아니었나 싶어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보게 만들어줬고, 생활이 되어준 ‘음식’이란 도구에 고마워하면서도 정작 여자 강주희에 대한 설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지나온 세월 덕분에 롤모델로서 TV나 정치 쪽에서 러브콜 제안을 받지만, 여자 강주희로 돌아보니, 스스로에게 당당하지 못한 느낌이랄까. 그래도 빈손으로 온 인생을 생각해보면 이만함에 감사를 아로새긴다. 지금까지 올 수 있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남편도 새삼 고맙다.
“환갑 때까진 장사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하죠. 그 때까진 부끄럽지 않게 서린낙지, 호박넝쿨을 운영할 생각이에요. 그런데, 요즘 귀차니즘이 커져서 큰일이에요. 이제 자기반성 그만하고, 본연의 강주희로 돌아와야 할 텐데…(웃음).” 강 사장은 훌쩍 지나가버린 음식과 함께 한 23년의 세월을 조심스레 추스린다. 쉼표가 잠깐의 휴식일지, 긴 호흡이 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사장, 엄마이자 아내, 여자로서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며 해답을 찾아갈 줄 아는 현재의 그는 가장 사랑스런 이름의 ‘강주희’다.
오세중 리포터 sejoong7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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