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졸업 후 온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스무 살 청년 박지환은 낯선 이국땅에서 반벙어리 신세였다. 어릴 때부터 영어에 흥미가 없었던 터라 중고시절 영어 성적은 늘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하지만 미국에 터를 잡기 위해서 영어는 생존의 수단이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영어 공부에 매달렸지요.”
십 년의 세월이 흘러 서른두 살 박지환은 지금 한국에서 영어 공부법을 알려주는 회사 대표가 되었다. ‘영어는 영어로 공부하자’라는 뜻이 담긴 영영공부. 박 대표가 영어를 마스터하기까지 노하우를 고스란히 담은 공부법을 전파 중이다.
듣기, 영영사전에서 찾은 그만의 영어공부법
스무 살 무렵. 미국에서 영어가 다급했던 그는 현지 ELS 강의에 등록했다. “첫 강의에 가보니 20명 정원에 18명이 한국이었어요. 마치 서울의 한 어학원에 다니는 느낌이었죠. 회화 실력도 생각만큼 늘지 않았고요.”
방법을 바꿔야 했다. 우선 한국에서 출간된 영어공부법을 다룬 책을 모두 구해 탐독했다. 여러 권 읽다 보니 듣기에 올인 하고 영영사전으로 공부하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방에 틀어 박혀 영어 테이프를 듣고 또 들으며 받아 적기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리 반복해도 안 들리는 영어 문장의 패턴들이 보였다. 수동태문장, 과거 분사 등 시제 구문, That 절 문장, 전치사와 관사가 들어간 문장이었다. 이 부분을 집중 공략했다. 일단 ‘영어의 소리’에 익숙해지자 단어 암기에 가속도가 붙었다. 모르는 단어는 꼭 영영사전을 찾아보며 어휘의 뉘앙스를 익혔다. “신기하게도 점차 귀가 뚫리고 말문이 트였어요. 어떨 땐 하루 12시간씩 영어만 공부했지요. 3개월이 지나니까 미국인과 의사소통에 막힘이 없더군요.”
미국에서 별별일 다하며 쌓은 사업가 근성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 중이었던 그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학비, 생활비를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영어가 능숙하니 아르바이트를 쉽게 구할 수 있었죠.” 별명이 ‘일개미’였을 만큼 바지런한 그는 편의점, 슈퍼마켓, 레스토랑 웨이터, 바텐더, 옷가게 매니저까지 다양한 직종을 섭렵했다. 수입도 꽤 좋았다.
공부를 마친 후 건축사무소에 취직. 한국인 상사를 잘 만난 덕에 일을 빨리 배웠고 2년 뒤엔 목조주택을 짓는 건축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처음엔 사업이 순조로웠어요. 그런데 돈이 좀 벌리니까 기고만장해졌어요.” 때마침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건축 경기가 바닥을 친 데다 허리디스크까지 악화돼 일을 계속하기 힘들었다.
“나의 20대를 몽땅 돈에 걸었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수중에 남는 돈은 별로 없더군요. ‘아, 돈에 인생을 걸면 안 되는 구나.’ 그때 깨달았어요.”
영어 과외하며 만든 인터넷 영어카페 인기
인생을 리셋하기로 마음먹고 스물아홉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빈털터리였다.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던 중에 지인 소개로 성인 대상 영어 과외를 시작하게 되었다. “십년 전 내가 터득했던 영어공부법 그대로 알려주니까 다들 실력이 는다고 좋아하더군요. 듣기 첨삭에 공을 많이 들였거든요. 그러면서 입소문이 났어요.”
과외 수강생이 늘자 영어듣기 오디오 파일, 수업자료를 공유하기 위해 인터넷 카페(cafe.naver.com/jjohnnyy.cafe)를 열었는데 예상 밖으로 호응이 컸고 회원 수도 빨리 늘었다. 공부법에 대한 문의를 자주 받자 무료 특강도 가끔씩 열며 노하우를 공유했다. 그러면서 그룹 스터디 형태의 영어 강좌가 잇달아 개설되었다.
수강생이 늘면서 사무실이 아쉬웠던 차에 강남청년창업센터에 입주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정부로부터 장지동 가든파이브 내에 사무 공간을 지원받고 마케팅, 홍보까지 체계적으로 컨설팅 받았다. 그러면서 성인 영어 공부법을 코칭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다듬어 1인 창업까지 하게 되었다. 물론 미국에서 치열한 20대를 보내며 쌓은 저력과 근성이 밑천이 되었다.
대학생, 대기업이나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대학교수까지 당장 필요한 비즈니스 영어 때문에 그를 찾는다. 자녀 영어 지도를 위해 문을 두드리는 주부도 꽤 있다. 수업은 5~6명씩 그룹을 지어 듣기와 직청직해 요령과 영영사전을 활용한 어휘력 기르는 방법을 알려준다. “난 영어가 공부가 아니라 ‘레슨’이라고 말합니다. 개인 연습량이 많을수록 빨리 늘죠. 수강생 중에는 듣기 노하우를 터득한 뒤 열심히 연습해 수개월 내에 실력이 부쩍 는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창업센터에서 1년간 사업의 기본기를 닦은 박 대표는 정부 기금을 지원받아 곧 강남에 사무실을 오픈할 예정이다. 차근차근 사업을 키워가고 있는 그에게 창업 준비생들로부터 노하우와 준비 과정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본인의 경험담과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들려준다.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허황되게 욕심 부리지 말고 현실적으로 접근하라고 꼭 당부해요. 창업인끼리 네트워크도 중요하고요. 서로 부족한 점을 보완해 주며 사업의 아이디어도 많이 얻거든요.”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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