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그 후

지역내일 2012-06-16 (수정 2012-06-16 오후 1:03:38)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그 후


 “엄마, 빨리 좀 가자. 자전거 타야한단 말이야”
아침마다 아들 정헌이가 현관문에 서서 저에게 하는 말입니다. 정헌이가 빨리 가서 자전거를 타려는 곳은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자리잡은 ‘고양우리학교’입니다. 3년 전 생긴 전교생 16명, 교사 3명의 작은 학교에서 정헌이는 1학년으로 다니고 있죠. 등교 시간은 9시. 넓은 마당이 있는 양옥집이 학교 건물입니다. 요즘 정헌이는 학교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친구들과 자전거부터 탑니다. 친구 성현이가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걸 보더니 자기도 보조바퀴를 떼고 연습하고 있다더군요. 그러더니 이젠 두 발 자전거를 타고 학교 옆 뚝방길을 따라 달릴 수 있게 됐습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일과가 시작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아이의 옷은 땀으로 젖어들기 시작합니다. 쉬는 시간20분, 점심시간 2시간. 시간만 나면 저렇게 열심히 뛰어노니 밤엔 세상 모르고 꿈나라로 가는 거겠죠. 아이의 밝은 모습을 보자 돌아서는 제 기분까지 가벼워지지만, 처음 이 학교에 온 날은 무거운 걱정거리만 가득 안고 돌아갔었답니다.


유별남이 주는 불안과 바꾼 아이의 행복
  사실 저희 부부는 정헌이가 7살이던 작년 상반기였을 때만 해도 대안학교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두 아들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 대안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많이 봐왔으면서도 대안학교 하면, ‘특별한 생각을 가진, 특별히 용기 있는 사람들만이 선택할 수 있는, 참으로 유별난 학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지요. 대안학교에서 주는 ‘특별함’ 내지는 ‘유별남’이 편치 않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두 아들 역시 평범하게, 남들처럼 사는 게, 최상은 아니지만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초등학교 입학이 몇 달 앞으로 다가오자 조금씩 갈등이 생기더군요.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길 바란다고 늘상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행복이란 걸 좋은 대학과 사회적인 성공이라고 은연중에 믿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어떻게 해야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하고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랄수 있을지...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조금씩 대안학교에 관심이 가고 있었지만 아직 확신이 없었던 저희 부부는 일단 고양우리학교에 원서부터 내보기로 했습니다.
  원서를 낸 후 면접을 보던 날. 친근하고 가족적인 분위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대안학교를 선택한 사람들이 특별하거나 유별난 사람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아이가 더 행복하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대안학교를 선택한, 그래서 약간의 용기는 있다고 인정할 수 있을 정도의 부모들이었습니다. 선생님들 역시 신생 학교의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히 중심을 잡아주고 계신 믿음직한 분들이었죠. 이런 부모들, 그리고 선생님과 함께라면 큰아이 정헌이, 그리고 둘째 정민이까지 맡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으로 들더군요. 어쩌면 그때 저희 가족이 면접에 참석했던 건, ‘그래, 대안학교는 우리랑은 다른 종족의 사람들이 다니는 유별난 곳이야. 역시 엑스, 안 돼!’라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만 ‘여기라야만 하겠다’는 확신이 덜컥 생겨버렸으니... 수많은 과제를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막상 대안학교를 보낼 경우, 우리 사회의 큰 물줄기를 거스르는 마이너의 길을 가야할텐데, 현실 순응주의자인 우리  부부가 잘 해나갈 수 있을까? 정헌이 본인은 또 어떤가. 이곳에서의 배움으로 거친 세상을 당당히 헤쳐갈 수 있을 것인가? 초등대안학교를 보낸다면 이후 중고등학교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학교를 처음 생각했을 때 가졌던 고민들이 이번엔 더 무겁게,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 모든 고민에도 불구하고 고양우리학교를 선택할 수 있었던 분명한 이유는 학교에서 지내는 6년 동안만큼은,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 그것이었습니다.


함께 나눠먹는 비빔밥 같은 학교 
  3월 1일 입학식 날. 다른 학교에선 볼 수 없는 소박하면서도 참 따뜻한 입학식이 있었습니다. 일부러 공휴일에 입학식을 잡아 전교생과 전가족이 참석해 신입생 9명을 위한 특별 공연까지 펼쳐주었고, 식이 끝나자 각자 싸 온 야채로 밥을 비벼 나눠먹었지요. 밥을 해서 함께 나눠 먹는 사이, 우리는 그렇게 이미 식구가 돼 있었던 겁니다. 망망대해에 홀로 선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식구가 내 옆에 있다니, 따뜻하고 든든해지더군요.
  입학식 후 집에 오신 어머니께선 이 낯선 학교가 영 마음에 차지 않는 기색이셨습니다. 가방 안엔 책 한 권 없이 달랑 필통 하나만 들어 있고 딱히 학교에서 뭘 배우는 것 같지도 않으니, “책도 없는 학교가 세상에 어디 있냐”며 혀를 끌끌 차시더군요. 요즘도 이 이상한 학교에서 뭘 배우고 있는지 시험하기 위해 정헌이를 잡아놓고 이 글씨, 저 글씨를 읽거나 받아 써 보게 하시는데요. “만날 개구리 보러 간다, 물고기 잡으러 간다, 그러더니 그래도 공부를 가르치긴 하는가 보더라. 정헌이가 읽고 쓰는 건 다 한다.”하십니다. 물론 여전히 왜 영어는 안 가르치느냐, 숙제가 왜 이리 적으냐며 못마땅해 하시는 점도 있으십니다. 
  그리고 저희 역시 여전히 처음의 고민을 모두 해결한 건 아닙니다. ‘그래, 아이들은 저렇게 마음껏 놀면서 자라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흔들리고 불안할 때도 종종 있습니다. 아마 이런 고민과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요. 하지만 그러면서 배우고 깨닫게 되는 것들은 아이와 함께 우리 부부를 성장시키는 힘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도 신나게 놀면서 자라는 아이를 보며 중얼거려 봅니다.
   ‘자라라, 자라라~ 아들아, 그리고 멈춰 버린 내 마음의 키야’



글쓴이


 무지개 (학교에서 불리우는 별명)
 고양우리학교 학부모.
 아침마다 학교 가자고 조르는 큰아들 정헌이와
 내년에 신입생이 될 둘째 정민이, 두 아들을
 키우며 바쁘게 살고 있다.


문의 070-7661-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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